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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이정순]'꽃차를 만들며'이정순/수필가/길 위에서 저자/거제수필문학회 회원

                       꽃차를 만들며  
                                               이정순                     

사람과의 관계는 참으로 어렴고도 묘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진실게임이 분명해 지고 지켜야할 예의나 배려도 약하다. 이로 인한 상처와 후회에 대한 치유는 순수했던 젊은 날보다 훨씬 어려워진다. 즉 상대로부터 진실과 거짓이 선명하게 보이고부터 사람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동물과의 공존은 개인 취향에 안 맞지 않으니 사물이나 식물 쪽으로 관심을 갖게 된다.
  주변에서 손쉽게 접했으면 좋겠고 생명력이 있어야 하고 물욕이나 소비가 아니어야 하는 게 내 기준이다. 이는 순수한 호기심이기보다 세상에 대한 애정이 깔려 있어야 한다. 사물은 어디에나 있고 종류로 볼 때 헤아리지 못할 만큼 많으니 꽃차에 관심과 열정을 갖기로 마음을 결정했다.
  오염이 덜된 꽃을 체취하기 위해 인적이나 차량이 드문 지역을 찾는다. 철따라 피는 작고 여린 꽃을 따서 상처가 없도록 씻기도 하고 그냥 덖기도 한다. 계절에 따라 붉거나 노랗게 피어나는 꽃송이를 체취하며 눈이 가장 먼저 호강을 한다. 덖는 동안 다른 빛깔로 변해가는 과정을 꽃빛은 한 번 죽어 생을 마감하는 게 아니고 다시 윤회의 덕을 받는 축복을 본다.  
  각양각색의 꽃마다 각기 다른 꽃말을 떠올리며 혀로 맛보기보다 눈으로 보는 차다. 주로 원산지가 국내지만 더러는 귀화한 꽃을 만나며 참으로 멀리도 왔구나 싶어 애처롭기도 하다. 꽃의 성장 배경과 잘 자라는 토양이나 숲과 날씨에까지 관심을 갖게 된다. 덖는 과정에서 뜨거운 열과의 만남으로 짙게 더 짙게 몸 색깔을 바꾼다. 꽃마다 다른 은은한 향이 집안에 퍼질 때의 성취감은 크고도 고결하다.
  작고 소박한 차실에 앉는다. 꼭 찻잔을 예열 할 필요도 없는 게 꽃차이니 다도 법과는 달리 간소한 편이다. 붉은 물을 토해낸 찻잔을 손바닥에 올리고 맛보다 시각의 미를 느끼며 덖는 고장에서 얻은 충족함과 더불어 아픈 마음의 상처에 치유를 받는다. 꼭 말을 하는 인간이 아니더라도 스토리를 만들어 주는 자연적 향과 모양새가 그렇다.
  그리고 찻잔을 구매하러 여기저기 다니고 따뜻하게 전해오는 차 온도에서도 만족도가 높다. 주부라면 늘 만지는 게 밥사발이나 그릇이지만 찻잔은 그 의미가 다르다. 배고픔을 충복 시켜주는 영역을 담당하는 밥그릇에 비해 여유와 정신적 영역을 채워준다. 잔이라는 도구 성을 넘어 우려내는 시간을 기다리며 사물을 조용히 관망하는 차분함을 배우게 해 준다.
  나이 탓인지 모르겠지만 꽃차를 하고부터 그릇이나 옷마저도 많은 게 필요 없음을 느낀다. 꼭 필요한 것 외에는 탐욕이 없어지면서 주변에 나누어 주거나 내다 버리는 게 일상화 된 것이 참 다행스럽다. 그러다보니 살림살이나 옷이 해마다 줄어든다. 보태기보다 있는 옷을 활용하는데 아무런 불편을 안 느낀다. 화려하기보다 나와 오래 함께할 사물에게 정이 가고 사람도 마찬가지다. 내게 잘해 주는 사람이 좋긴 하지만 쉬이 변하거나 배반하지 않을 성향을 찾게 된다.
  인간도 사물화 되고 사물도 전시용이 늘고 있는 세상이다. 자기가 어렵고 힘든 일은 남도 어려운 법이다. 본인은 못하면서 상대에게만 끝없이 바라는 것은 그 사람을 이용해서 본인이 쉽게 가려 하거나 목적이 가벼운데 있다고 본다. 사람 관계나 사물이나 상대적 관점을 무시하는 문제는 분명 문제가 있다. 그 문제를 바로 직시했을 때 상처를 덜 받는 중요성을 지금에 와서야 알게 되었으니 나도 참 느린 걸음이긴 하다. 찻잔에 고운 빛깔의 차물이 우려 나기까지 고요히 기다려야 되듯이 더불어 고요히 늙는 법을 죽는 그날까지 익히며 낡아 가는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싶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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