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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수필:곽호자] '각산 부두에서'곽호자::거제 출생/전) 초등교사/거제대평생교육원수필창작수료/수필과 비평신인상등단/계룡문학회원/눌산시창작교실수료

                              산 부두에서
                                                         곽 호 자

거제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가다 보면 긴 막대 같은 부두가 보인다. 유난히 길고 한적하다. 작

은 어선 몇 척이 매여 있을 뿐 갈매기조차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쓸쓸한 부두이다. 이 부두와 맞물려 있는 것이 각산이다. 각산과 부두가 한 몸인 셈이다. 각산은 작은 언덕을 이룬 동산이고 그 끝에서 부두는 바다로 이어져 있다. 각산 꼭대기에서 연기라도 피어올랐다간 흡사 할아버지 곰방대를 연상하게끔 생겼다.
발밑으로 바닷물이 출렁인다.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살이 출렁대며 밑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인다. 기름 냄새라고는 배이지 않은 시골의 부두엔 소금기 머금은 잔잔한 바람이 분다. 김장철이면 배추를 절이기 위해 이 근처 을 선창이란 갯가를 찾았던 사십여 년 전의 기억도 새롭다.
경사진 선착장에서 맨손으로 김장 배추를 씻을라 치면 밀물에 둥둥 떠내려가는 배추포기들이 매번 골탕을 먹였다. 간 먹은 배추를 바닷물이 쓸어 갈까 봐 정강이까지 차오르는 바닷물을 겁낼 수도 없었다. 욕지도에서 고구마 배가 들어오는 날은 더욱더 신산스러웠다. 짚단과 고구마를 물물교환을 하는 날이 되었다. 행상이 한 바퀴 골목을 누비며 “욕지 고구~마” 하고 외쳐 대면 짚단을 이고서 부두 옆 선착장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었다. 나 역시 어머니를 졸라 볏짚 몇 단을 묶어 머리에 이고 내달려야 했다. 보풀하고 달콤한 욕지도 고구마 맛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부두의 끝자락에는 그 옛날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게 변했다.
 이 부두로 한 시절에는 여객선 광제호가 뭍으로 왕래했다. 육지로 드나드는 유일한 관문은 성시를 이루었다. 통영 장이 서는 날이면 연노랑 생모시 저고리에 까만 갑사 치마가 어울리던 어머니는 하얀 코고무신을 신고 부두를 내려 가셨다. 그날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마중을 나가야 했
다. 빈손으로 오실 리 없는 어머니를 잘 알기에 그랬다. 각산 언덕에서 저녁나절 내내 또래들과 엉덩이에 황톳물이 배이도록 미끄럼을 타다 보면 뱃고동이 울렸다. 통영 장에 가신 어머니를 태운 배가 돌아오는 것이었다. 대숲 개 모퉁이를 돌아서 멀찍이 나타나면 심장이 벌렁거렸다. 부두 끝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짐꾼들도 달렸다. 누구라 할 것 없이 배가 들어오면 달려야 했다. 반갑고 그립고 보고 싶은 것이 선물처럼 쏟아지는 부두. 그 아득한 기억은 세월에 묻히기보다 지금에 와서 더욱 선명해지기만 하다.
 1971년 견내량 다리가 설치되었다. 이곳의 문화도 물결을 탔다. 거제라고 해서 시대의 흐름을 외면당할 리 없었다. 그러자니 성시를 이루던 뱃길도 뚝 끊겼다. 그 대신에 거대한 교각 위로 자동차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길이 열린 것이다.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가 세워짐으로 해
서 거제도가 육지화된 것이다. 다리로 인해 문물의 교류는 조류와도 같았다. 모든 것이 빨랐다. 반농반어의 시골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엄청난 탈바꿈이 시작되었다. 바로 조선 산업이었다. 경제 성장은 곧 삶의 질을 향상시켰다. 21세기 글로벌 시대의 주역이 되는 도시로 거듭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시 찾은 지금의 부두는 허전하다. 기억을 더듬는다. 가슴 한 가운데를 헤집는 아픔이 온다. 그리운 것들이 아우성치며 달려올 것만 같았는데 지금 여기에는 아무도 없다. 각산이 사라졌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옛것에 미련을 두는 내가 고리타분한 것인지 모르겠다. 온데간데없는 각산 그 자리에 아파트가 버티고 섰다. 공연한 트집은 아니지만 부조화로마주한 콘크리트 덩치가 낯설기 짝없다. 곰방대는 유년의 추억이나 될 성싶다. 사람이 한 평생을 어린 시절을 상기하며 산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손가락 터치로 세상을 여는 시대인데 이제 객이 된 난 입을 다물 수 밖에 없다.
낙조가 깔린 부두를 빠져나온다. 느닷없이 갈매기가 끼룩거리며 머리 위를 선회하더니 어선에 앉는다. 갈매기가 존재하는 거제만灣. 학창시절 친구들이 떼를 지어 ‘별이 빛나던 밤에’를 목이 터지라 부르던 부두에는 황량한 바람만이 들락거린다. 바닷물인듯 별빛인 듯 각산부두가 눈앞에 전개된다. 환생하는 모든 것이 요동친다. 그리운 것 기리 어깨를 감싸고내 옆으로 와 귓속말을 한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변화된 것이니 울적해 하지말고 왈츠나 한번 추실까요”

각산부두
거제면 서정리에서 쭈욱 내려가면
외조부님 곰방대 닮은 각산이 있었다.
그 밑으로 길게 뻗은 부두에
여객선 광제호의 고동 소리가 길게 울릴 적에
갈매기가 자지러지고
거제 만灣이 들썩였다.
통영 장에 가시는 울 엄니
생모시 저고리 까만 갑사 치마 입으시고
동백기름 발라 반짝이던 머릿결로
장에 다녀오시던 날
짐꾼 사이를 비집고 헐레벌떡 달려가면
뱃전에 나와 손 흔들어 주시던 엄니 모습
어제던가 그제든가.
엄니가 있는 곳
어디라도 달려갈 수 있건만
이제는 어디에도 없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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