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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이정순] 내 몸에 맞추기이정순/수필가/길 위에서 저자/거제수필문학회 회원

                                                   내 몸에 맞추기

                                                                                                           이 정 순
  

외모 꾸미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렇다고 타인의 패션을 비난하거나 옷을 아무 스타일로 막 입는 편은 아니다. 나름 나에게 맞는 옷을 고르는 데에 상당히 까다롭기도 하다. 그래서 고르지 못하거나 고르는데 기간이 너무 길어져서 별로 맘에 들지 않는 옷을 그냥 사기도 한다.

어쩌면 나에게 맞는 옷이 무엇인지 잘 찾지 못하는 패션 감각이 아주 부족한 쪽에 속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거나 입어도 잘 어울리는 모델 핏이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다. 젊을 때는 펜슬 스커트에 블라우스가 기본 복장이었다. 오랜 시간 탐색 끝에 나에게 제일 잘 어울리는 오피스룩이라고 생각했기에 늘 고정된 스타일대로 옷을 입었다. 그런 옷을 고집하고 입느라 정작 캐주얼한 옷들은 통 관심이 없었다. 청바지 차림이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으로 운동화를 신고 발랄하게 거리를 할보한 기억조차 없다. 그런 차림은 그저 1년에 한두 번 야외활동 차림쯤으로 알고 기피했다.   이런 나에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몸이 비대해지면서부터 새로운 패션을 시도했다. 몸을 다 덮는 펑퍼짐한 지누시 차림으로 변신한 지 20년째다. 이제는 이 차림이 바꿀 수도 바꿀 마음도 없다. 내 취향을 제대로 만난 듯 두건까지 뒤집어쓰고 나면 자신감이 붙고 자유롭다. 주변에서 온라인 쇼핑을 하며 교환과 환불의 악순환을 보면 나는 정신마저 혼미하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몸이 비대해진다. 옷에 몸을 구겨 넣다시피 하기보다 차라리 큰 몸을 인정하고 사니 편하다.

인생도 이와 같이 나에게 맞는 옷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화려하고 좋아 보이는 일을 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 일이 진정 내 일은 아닌 무언가 불편하고 억지로 몸을 구겨 넣은 느낌이다. 인생의 진로에서 맞지 않은 것은 과감히 버리는 용기도 필요하다. 한 때 펜션을 운영한 적이 있는데 하는 내내 불편하고 답답했다. 남들이 보기엔 수입 좋아 보이고 번드르르해 보일 수 있지만 인간관계가 수시로 숨이 막히고 위축되었다. 결론은 내게 장사가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들에게 나만의 고유성을 드러내면 그것이 내 옷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날까 봐 위축되었다. 손님들이 하는 말에 공감하며 싫은 내색 못하고 좋아 하는 척하는 위선이 점점 당연해졌다. 펜슬 스커트를 입고 그 옷이 타인에게는 좋아 보였을지언정 나에게는 허리를 조여야 하는 탓에 만성 소화불량을 일으킨 것과 다름없었다.  일을 하고 있지 않은 지금의 나는 화려한 옷이나 꽉 조이는 옷은 입지 않는다. 입을 필요도 없다. 덕분에 소화불량은 말끔히 사라졌다. 물론 그렇다고 패션을 멀리할 생각은 없다. 나에게 맞는 옷을 찾아서 예쁘게 입어 보려 노력하는 중이다. 어쨌든 화려하거나 몸을 조이는 옷이 내게 맞지 않았듯이 늘 긴장된 장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이 너무 좋다,

나에게 맞는 옷과 맞지 않는 옷을 구분하며 나에게 맞는 일과 맞지 않는 일을 구분할 줄 아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남들이 보기에 멋지고 화려한 일일지라도 나에게 맞지 않는다면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용기를 가진 내가 자랑스럽다.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한 삶이 그토록 싫었던 사실에 대하여 장사를 하여 경제가 풍요롭던 시간보다 조금 모자라지만 지금이 훨씬 만족스럽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진에 찍힌 자신의 모습이 진짜라고 여기지만 그것조차도 왜곡되고 진짜가 아닌 경우가 많다. 마음의 모습은 더욱 그렇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거울도 없을뿐더러 마음의 눈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이 없다. 처음부터 나에게 맞지 않는 일이란 걸 좀 더 일찍이 깨달았더라면 지금보다는 좀 더 발전된 모습으로 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이란 산다는 건 걸음마를 배우는 것과 같다. 하여 내일은 또 어떤 모습으로 길을 헤매고 있을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생각이 자랐을 것이고 앞으로 나아갈 길도 만들었을 것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은 삶이 올 것이라 여기면서 자판기 전원을 껀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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