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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수필:박찬정] 서 있는 배박찬정:서울 출생/거제대학 평생교육원수필창작반수료/계룡수필문학회동인/《수필과 비평》등단(2016)/눌산문예창작교실수강

등대로 가는 길. 숨 가쁘지 않을 만큼 경사가 완만하여 나직하게 이야기 나누며 걸어도 좋다. 왼편엔 야산을 끼고, 오른쪽 아래로는 바다와 나란히 걷는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은 해송 사이를 빠져나오며 한결 부드러워진다. 그 길은 휴일이 되면 산책하는 사람이 더러 있을 뿐 평소에는 인적이 드물다. 바다로 쭉 뻗은 길 끝에 태평양을 마주하고 서 있는 서이말 등대가 있다.

오늘도 등대에서 바라보이는 바다에 여러 척 선박이 떠 있다. 바다는 거리 감각이 무디어 얼마나 떨어진 거리에 서 있는지 가늠키 어렵다. 수천 톤은 되어 보인다. 같은 자리에서 지난주에도 보았고 지난달에도 보았다. 조선소를 지나며 건조중이거나 수리하는 큰 선박을 많이 보아 온 터라 바다에 떠 있는 배가 신기할 것은 없다. 하늘은 맑고 바다는 푸른데 서 있는 배를 바라보는 마음은 답답하다. 배는 그의 처지와 닮은꼴처럼 겹쳐져 보인다.

공이 벽에 튕기는 소리가 코트 밖에서도 들린다. 그는 오늘도 답답한 마음을 털어내듯 혼자 벽치기를 하고 있다. 남편과 내가 코트에 들어서자 반가움과 멋쩍은 기색이 얼굴에 드러난다. 치열한 사회생활을 경험하지 않은 그는 수줍어하는 색시처럼 인사를 한다. 그에게 이런 취미라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낯선 그가 어느 날 테니스코트 밖에서 기웃거렸다. 학교 다닐 때 테니스를 치다가 군대 입대하느라 라켓을 놓았는데 복학해서는 공부 따라가랴, 취업 준비하랴, 라켓 다시 잡을 여유가 없었다고 한다. 현재 그의 신분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취업준비생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군복무도 마쳤으니 자연스럽게 취업으로 연결되어야 하는데 그는 두 해째 주춤거리고 있다.

자의로 취업을 거부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웬만한 취직자리는 마음에 차지 않아서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 같지도 않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그의 전공분야는 어렵지 않게 취업했다. 먼 객지로 떠나지 않고도 취업할 수 있는 것이 그 학과를 선택한 동기일 수도 있는데 조선 경기 침체와 맞물려 취업의 길이 막혔다. 취업을 포기하고 가업에 합류할까 했는데 부모님이 만류했다고 한다. 당신들은 궂은일을 해도 자식은 남 보이기 근사한 직업을 갖기 바라는 게 보통의 부모 마음이다. 자식 공부 뒷바라지 해 놓으면 바로 취직하여 제 앞가림 하리라 여겼던 그의 부모님 속앓이는 오죽할까. 그가 시험이나 면접을 보러 도시에 다녀오고 나면 핸드폰의 벨 소리를 높여 놓고 공을 친다. ‘취직이 되어 평일에는 공을 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라는 말 듣기를 기대하는데 아무런 말이 없다. 내색은 안 해도 애태우고 있다. 그런 마음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취직에 대해서는 모두가 함구한다. 그 혼자의 고민이 아니라 거제도 많은 사람이 겪고 견디는 문제라서 서로 이해하고 위로한다.

예전부터 거제도는 궁핍한 섬은 아니다. 바다의 풍부한 어족자원과 넓은 농지는 반농반어를 할 수 있었고, 레저 문화가 우리 생활에 자리 잡으며 해안 곳곳 해수욕장은 각광받는 피서지다. 여름 한 철 벌어 한 해 살기에도 부족하지 않은데 혹한이 없고 비경이 많은 거제도는 사철 휴양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사십여 년 전 장평만과 옥포만에 조선소가 들어섰다. 인재와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도농의 차가 심하던 칠십 년대, 거제도에 있는 직장을 선호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초창기 조선소가 속해있는 두 그룹사에서 거제 조선소로 발령 나면 가족은 도시에 두고 단신부임 하였다가 일이 년 만에 사표 쓰고 떠나는 이가 많았다고 한다. 조선소는 세월이 흐르며 부침(浮沈)이 있기는 했지만 규모와 기술면에서 세계적인 조선소로 발돋움 했고 거제도의 상당 부분을 이끌어 갔다.

내내 호황일 것 같던 조선 경기가 몇 해 전부터 급격히 어려워졌다. 세계적인 불황, 해운업 침체, 내부적 요인까지 보태어져 조선과 해양의 수주 물량이 현저히 떨어졌다. 그동안 양대 조선소에 크게 의존해 왔던 거제도의 경제는 풍랑주의보 내려진 바다처럼 출렁이고 있다. 위축된 조선 경기에 흔들리고 조선소 일을 떠나는 사람들의 빈자리로 흔들린다.

등대 앞바다에 서 있는 배는 엎치고 덮친 어려운 거제와 조선업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화려한 진수식을 마치고 박수를 받으며 바다에 띄워졌지만 대양으로 나가지 못하고 등대에서 보이는 그 자리에 닻을 내리고 멈췄다. 선주사가 잔금을 치루지 못해서 인수해 가지 못 하고 있는 배, 선적할 화물의 양을 채우지 못하여 기다리는 배, 도크 정박 비용을 줄이려고 근해에서 대기하는 배. 선박마다 다양한 사정이 있지만 서 있어야 하는 이유가 배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취업 재수를 하는 그를 보는 심정이나 항해할 준비가 다 되어 있어도 먼 바다로 나가지 못하는 배를 바라보는 심정은 바다 밑에 내려진 닻만큼이나 무겁다. 등대 앞바다에 서있는 배가 기다림을 끝내고 출항 고동을 울리는 날은 언제일까. 그리고 그 젊은이가 테니스 코트 대신 직장으로 출근하는 날은 언제일까. 어깨를 펴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먼 바다로 나아가는 그날이 어서 오기를 기다린다. 비록 거센  파도, 냉혹한 기성 사회에 부딪힐지라도.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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