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공정거래 위반 소지"… 주요국 한곳만 승인 안해도 사업 못해
 현대중공업이 31일 노조의 방해를 뚫고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가까스로 통과시킨 '물적 분할'안은 고사(枯死) 직전의 한국 조선업을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정부의 방침에 따른 결과라고 조선비즈가 1일 보도했다.

이날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해 글로벌 점유율 21%의 매머드급 조선사로 출범할 첫 단추를 끼웠지만 난제는 쌓여 있다. 합병 진행 과정에서 노동계의 거센 반발을 해결해야 하고, 자국 소비자와 산업 보호를 내세우는 EU(유럽연합)·중국·일본·미국 등 각국 공정거래 당국의 견제를 뚫어야 한다. 이 중 한 나라의 승인을 받지 못해도 합병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문재인 정부 제안으로 시작된 합병
이날 오전 11시 10분 울산대 체육관으로 급히 자리를 옮겨 열린 현대중공업 임시주총에선 국민연금을 포함한 참석 주주 99.8%가 찬성해 9분 만에 물적 분할안이 가결됐다. 이처럼 압도적 찬성을 받은 것은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문재인 정부의 제안으로 시작된 사실상 정부안(案)이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이 노조와 지역 정치권의 반발을 무릅쓰고 회사를 물적 분할한 것도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제안한 인수 방안을 따른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산업은행 관리하에서 20년간 10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수혈받았지만 경영 정상화가 요원했다. 게다가 사실상 공기업인 대우조선해양이 국제 수주전에서 저가(低價) 수주에 나섬으로써 국내 업체끼리 출혈 경쟁을 벌이는 일이 적지 않았다.

결국 지난해 8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을 비공개로 만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제안했다. 현대중공업 측은 막대한 인수 자금 우려로 부정적이었다. 한 달 뒤 산은 측이 "중간지주사를 만들면 산은이 대우조선 지분을 현물 출자하겠다"는 안을 제시해 현대중공업이 받아들임으로써 지난 3월 인수 계약이 체결됐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 임시주총을 앞두고 현대중공업 노조가 주총장을 불법 점거하고, 경찰을 폭행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는데도 사실상 수수방관했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정부가 막후에서 합병을 지휘해 놓고도 막상 최대 지지 세력인 노조가 강하게 반발하자 '꿀 먹은 벙어리'처럼 뒷전에 숨었다"고 했다.

점점 거칠어지는 노동계 반발
앞으로도 노동계 반발은 풀어야 할 난제다.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한국조선해양의 재고 자산, 수주 선박 건조 진척도 등을 확인하기 위한 현대중공업 측의 옥포조선소 현장 실사를 저지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이미 대우조선 노조는 거제 옥포조선소 출입문을 지키며 현장실사단 진입을 감시하고 있다. 향후 노조의 반대 투쟁도 더 극렬해질 전망이다. 이번에 장소를 옮겨 주총을 개최한 것을 두고 민노총 금속노조는 원천 무효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EU 등 공정거래 당국의 승인 받아야
합병이 순조롭게 이뤄진다면 한국조선업은 제2의 도약을 할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합병사는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VLCC(초대형 유조선) 등 고(高)부가가치 선박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각 60%, 70%를 넘게 된다. 저가 수주 경쟁도 완화될 수 있어 대형 조선소들의 수익성이 개선되고, R&D(연구·개발) 역량이 높아져 수소 추진 선박 등 미래 선박 개발에서도 앞서갈 수 있다. 이제명 부산대 교수는 "이번 합병은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고 조선업 경쟁력 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경쟁국들의 견제가 집요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를 무대로 하는 한국조선해양은 각국 공정거래 당국으로부터 '합병으로 인해 자국의 소비자와 산업에 공정거래상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취지의 합병 승인을 얻어야 한다. 하지만 글로벌 조선 시장에서 경쟁국인 이들의 승인을 얻는 게 쉽지 않다. 특히 EU 공정거래 당국은 이미 '독과점 우려'를 표명한 상태다. 가장 큰 경쟁국인 중국이 딴지를 걸 가능성도 크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해외 기업 결합 승인 과정에서 난관이 예상되지만, 철저한 준비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합병을 완료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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