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인자 수필]② '영화 오아시스를 보고'

②영화, 오아시스를 보고
심 인 자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한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장애가 아니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마음의 장애는 생각지 못하고 눈 먼 사람 한쪽다리가 없는 사람 화상을 입어 얼굴이 일그러진 사람 등 육체적으로 불안정한 그들에게만 유독 장애인이라는 멍에를 씌운다.

육중한 철문이 열리고 건달 같아 보이는 한 남자가 걸어 나오고 있다. 교도소 정문 앞에는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눈길이 제 각각 찾아야 할 이들을 향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방금 막 출소하여 나오는 이들을 향해 포옹을 한다. 그러나 건달 같은 청년에게는 누구 한사람 반기며 달려드는 이가 없다.

복장이 눈에 들어온다. 한 겨울에 여름 난방셔츠 차림이다. 이 장면만 보아도 짐작이 간다. 사고무친이 아니면 하도 교도소를 들락거려 내놓은 자식이며 형제일 게다. 그러나 껄렁한 행동과는 달리 여자 옷을 사는 것에 또 아리송한 마음이 든다.

흘깃거리며 지나치는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반소매 차림으로 어딘가를 향해 간다. 찾고자 하는 곳을 가지만 이미 이사를 하고 없다.

역시 건달 특유의 뻔뻔한 기질이 나온다. 식당에서 음식을 시켜 먹고는 돈줄 사람이 올 거라며 연신 전화질만 한다. 결국 교도소에서 나온 지 하루도 되지 않아 다시 파출소에 붙잡혀 간다. 󰡐그러면 그렇지, 내 짐작이 틀릴 리가 없지.󰡑

주인공 홍경두는 전과 3범으로 뺑소니 과실치사에 강간범이었다. 연락이 되었는지 동생이라는 자가 찾아와 해결한다. 가족도 있고 집도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내 생각이 달라진 것은 없다. 구차한 살림이 한눈에 들어온다. 방은 큰아들 내외가 쓰고 있고 부엌 겸 마루방에는 노모가 궁색한 모습으로 앉아있다. 건달이 들어서자 노모는 한달음에 뛰어가 포옹한다. 아까 그 옷의 주인공은 어머니였다. 큰아들 눈치 보며 나중에 입겠다지만 건달의 성화에 마지못해 입고서는 내심 좋은 표정이다.

주인공 홍경두는 형이 소개하는 중국집 배달원으로 일한다. 성실하지 못하여 쫓겨나 결국 형 가게에 얹혀 살며 소파에서 새우잠을 잔다. 형의 눈에는 건달이 탐탁지 않다. 건들건들한 모습이 건달 티를 벗기 힘들게 생겼다. 영화를 보는 나 역시 건달에게 반푼 어치의 동정도 가지 않고 자꾸 미운 생각이 든다.

어느 날 건달이 과일 바구니를 들고 어떤 집을 찾아가지만 문전에서 박대를 당한다. 뺑소니로 죽게 한 피해자 집에 사죄하려 왔던 것이다. 그 곳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 사지가 뒤틀려 흉한 모습의 장애를 가진 여인을.

건달은 그 여인을 생각하며 궁금해한다. 꽃 배달원을 가장하여 찾아가 보니 오빠 내외는 동생의 장애를 빌려 좋은 집으로 이사를 하고 여자 혼자 있다. 열쇠를 어디에 두는지 알아낸 건달은 다시 찾아온다. 그는 여자에게 호감을 가진다. 여자의 집 거울에 자신의 연락처를 끼워놓는다. 그런데 그만 예전 버릇이 나온다. 제 몸 하나 건사 못하는 여인을 강간하려 한 것이다.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여자는 버둥거리다가 혼절한다. 놀란 나머지 줄행랑을 치지만 마음은 약한가보다. 여자를 그렇게 한 것에 자책한다.

여자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온 몸이 뒤틀려 제대로 앉지도 못한다. 그녀의 이름은 공주다. 󰡐한 공주, 이름이 예뻐서 육신은 엉망인가.󰡑 그녀가 건달에게 전화를 한다. 두 남녀는 만난다. 그 때부터 그녀의 집에 몰래 들어가 얼굴을 씻겨주고 불편함을 대신하여 챙겨준다. 옥상에 올라가 햇볕도 쪼이게 한다. 공주에게 있어서 태양은 단순한 따뜻함이 아니다. 밝음이고 환희다. 지금껏 음침하고 차갑고 어두운 세상에서 시체같이 살아야 했지만 건달로 인하여 오늘 진정한 빛을 보았고 저 넓은 세상을 향해 두 팔을 뻗어 심호흡을 한 것이다. 지하철의 불편함도 그들에겐 장애가 아니다. 휠체어가 무거웠지만 정상인이 바라보는 무거운 시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건달은 형수의 지갑에서 돈을 슬쩍하는 사고뭉치이긴 했지만 따뜻한 가슴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를 위해서 한 나쁜 짓이었다. 갑자기 이 건달이 밉지 않다. 아니, 홍경두에게 정이 간다. 사실을 알고 보니 과실치사 전과는 형 대신 뒤집어 쓴 것이다. 이제 보니 동생의 전과를 빙자하여 자신의 죄를 대신하게 한 형답지 못한 사람이었다.

홍경두는 한공주를 데리고 친척이 모여 있는 자리에 나가지만 무시당한다. 공주의 떨리다 못해 몸부림치는 포커 든 손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이 밉다. 나도 모르게 격분한다. 이미 나는 공주고 경두다. 오아시스라는 영화 속에 내가 들어간 것이다.

한 공주는 홍경두를 만나서 인간이 되었다. 그 전에는 시체였다. 살아 있어도 죽은 몸이었다. 건달 아니, 홍경두를 만나 처음으로 넓은 세상 아름다운 바깥을 본 것이다. 비록 휠체어에 기댄 몸이지만 마음은 두 다리, 두 팔을 활짝 펴 온 세상을 뛰어 다니고 있었다. 정상인이 되어 홍경두와 마주하는 장면은 나를 놀라게 했다. 기적이 일어났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그러나 공주의 간절한 바람이었다는 걸 알고 마음이 찡했다. 오죽 정상인이 되고 싶었을까. 정상인이 되어 홍경두와 포옹하며 진한 입맞춤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공주는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을 가져 달라고 한다. 둘의 사랑은 애절했으며 성스러웠다. 통속적이지도 않았고 한 치의 추함도 없었다. 어떤 의식 그 자체였다. 그러나 무심하고 자신 밖에 모르는 오빠내외가 그 순간마저 훼방을 놓았다. 동생의 장애를 팔아 자신의 배를 채우는 파렴치하고 인정머리 없는 이들은 홍경두를 강간범으로 몰아세운다. 공주의 행복한 순간의 표정을 극심한 공포로 착각한 어처구니없는 처사였다. 이십 몇 년을 함께 하면서도 동생의 표정하나 간파하지 못한 오라비였다. 그들은 오로지 돈밖에 모른다. 온전치 못한 동생은 제쳐두고 합의금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이제 공주는 두려하지 않아도 된다. 창가에 비치는 가로수 가지를 홍경두가 모두 잘라버렸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가지가 공주의 잠을 방해했으며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공주는 늘 오아시스가 그려진 그림을 보곤 한다. 불모지 사막 한 가운데에 샘물이 솟고 주위에는 태양을 가려줄 나무가 우뚝 서 있다. 공주는 행복하다. 무섭지 않다. 그녀가 살아가기에 세상이 너무 험하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삶이었지만 비로소 오아시스를 만났다. 그녀의 손이 되고 다리가 되어줄 홍경두가 바로 오아시스이기 때문이다.

홍 경우는 지금 감옥에 있다. 타인들에 의해서. 그러나 그는 공주와 만날 날을 기다리며 편지를 쓴다. 그를 기다리는 여인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공주는 뒤틀린 몸으로 청소를 한다. 그러나 힘들지 않다. 오아시스를 만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이기 때문이다.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트윗하기

박춘광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