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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인자 수필]③ '인연'심인자/수필가/수필과비평 작가회 전 거제지부장/수필과빕평작가상수상

                            인  연
                                                       심인자

 

이름: 모하메드, 나이: 12세, 초등학교 6학년의 남자아이, 국적: 방글라데시, 열악한 환경에서 네 식구가 힘들게 살고 있음. 
  위의 내용이 내가 아는 전부다. 그 아이와 인연을 맺은 것은 칠 년 전이었다. 텔레비전을 무심히 보다가 잔뜩 부른 배와 비쩍 마른 팔 다리, 까만 피부에 초점을 잃은 눈동자를 가진 아이들에게서 시선이 멈추었다. 낯설었으며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방글라데시라는 나라의 아이들이었다. 빈민가 거리에는 굶주림과 전염병이 만연해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손 써볼 틈도 없이 죽어가고 있었다. 수도시설이 되어있지 않은데다 식수가 모자라 균이 득실거리는 지저분한 물을 마시고 병이 들어 빈민가 사람들 태반이 목숨을 잃어가고 있었다. 면역이 약한 아이들은 더 그랬다.

  열악한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차별을 받았다. 아내는 남편을 하늘처럼 받들어야 하고 이유 없이 쫓겨나도 말없이 내몰려야 했다. 심지어 남편의 모진 매에 꼽추가 되어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하는 참상에 같은 여자로서 가슴이 아팠다. 한창 사랑 받아야할 아이들은 공부는커녕 일을 해서 살림에 보탬이 되어야했다. 그보다 더 어린아이들도 부모의 보살핌을 받는 것을 포기했는지 흙바닥에서 놀다가 그대로 잠들었다. 파리 떼가 아이 얼굴이며 몸에 붙어도 손을 내젓기조차 귀찮은 듯 쫓지를 않았다. 

  텔레비전을 보게 된 당시에 나는 둘째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힘들게 아이를 가졌는데 80%는 유산될 것 같다는 의사의 말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다행히 아이는 열 달을 버티고 무사히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다. 가족들의 축복 속에 잘 자라나 싶더니 한 달이 지나면서 토하기 시작했다. 힘들어 잠깐 눈을 붙이다가도 일어나 보면 아이는 새파랗게 질린 채 숨을 쉬지 않았다. 친정어머니와 교대로 아이 곁을 내내 지키며 힘든 하루하루를 보냈다. 병명은, 유문(幽門)의 기능이 미약해서라고 했다. 음식물을 삼키면 괄약근이 닫혀 역류를 막아주고 장 아래로 내려가게 하는 것인데 그 기능이 정상이 아니었다. 의사는 약을 먹여보고 그래도 낫지 않으면 수술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늦게는 첫돌이 되어야 정상으로 돌아온다더니 반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토하는 것을 멈추었다. 병원 문턱을 수시로 드나들었고 눈물도 꽤나 흘렸다. 아이가 아팠을 때의 심정은 캄캄했다. 저러다 죽지 않을까 하고.

  사실, 방글라데시의 참상은커녕 그런 나라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내 나라도 아니고 형제도 아닌 먼 나라 일이니 상관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 아이는 애지중지 보살핌 속에 잘 크고 있는데 그 아이들은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간다니 너무 가엾었다. 테레사 수녀의 말이 떠올랐다. 큰일을 하려고 계획을 세우는데 시간을 보내기보다 작은 일을 지금 당장 시작하라는 것이었다. 뭔가 도움이 되고 싶었다. 방글라데시의 한 아이를 도와주기 위해 작은 금액이었지만 매달 보내기로 했다. 그 돈으로 한 아이를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많은 의인들이 하고 있는 선행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위로가 되었다. 내 아이에게만 사랑을 베푸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덜어지고 또 마음이 조금은 편해질 것 같아서.  그렇게 시작되어 칠 년을 이어 온 것이다. 

  아이가 보내온 편지에는 사진이 들어 있었다. 쌍꺼풀진 검은 눈과 오뚝한 코, 곱슬머리의 소년으로 이름은 모하메드였다. 딸아이에게 오빠라고 했더니󰡐검은 오빠는 싫어󰡑라며 도망을 쳤다.  그러던 아이가 사진을 또래 친구들에게 보이며 오빠라고 자랑을 했다. 
  해마다 모하메드는 사진과 편지, 카드를 보내왔다. 영어 실력이 좋지 않아 정확히 해석은 할 수 없었지만 감사하다는 말과 우리 가족들이 축복 받고 내내 행복하길 빈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보내온 사진 속의 아이는 해가 지날수록 의젓해지고 어린 티를 벗어났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꿈이라고 했다. 장성하면 가난하고 척박한 땅을 옥토로 만들고 많은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모하메드가 될 것이라 믿는다. 그 아이의 강한 눈빛에서 느낄 수 있었다. 

  2년 전, IMF가 오면서 모두들 어려운 시기를 보낼 때였다. 남편은 직장에서 소년가장을 도와준다며 기부금을 떼고 봉급을 가져왔다. 상여금도 일부 받지 못하는데다가 이중으로 나가는 기부금액은 나를 시험하고 있었다. 작은 금액의 기부금은 아이들 교재비를 견주고 급식비를 견주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나아지면 다시 시작하겠노라고 자신을 위로하며 기부금을 끊었다. 그 이후로 왠지 편하지 못했고 모하메드가 마음에 걸렸다. 3개월쯤 되었을까. 둘째 아이가 넘어져 다치더니 중이염과 눈병까지 겹쳐 세 곳의 병원을 돌아가며 다녔다. 큰아이도 두통을 호소하고 감기도 잘 하지 않는 남편까지 병원 문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급기야 작은 아이는 상태가 나빠 수술로 한동안 병원신세를 졌다. 환난이 온 것 같았다. 후회와 함께 내 마음에도 병이 왔다. 기부금을 충실히 보냈더라면 가족 모두 건강했을 거라는 생각이 나 자신을 몰아세웠다. 

  모하메드와 처음 인연을 맺게 해준 단체에 전화를 걸었다. 미안함을 표시하고 다시 시작하겠다고 했다. 그 동안의 복잡하고 힘들었던 마음에 평화가 온 것 같았다. 생각인지 몰라도 차츰 병원 출입도 줄어들었다. 
  모하메드는 이제 중학생이다. 집안 형편도 나아졌고 더 이상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된다며 감사의 편지를 보내왔다. 잘된 일이다. 아쉬운 것은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와 영어실력이 형편없어서였다고 변명을 해본다. 어렸을 때 병치레를 자주해서 나를 고생시켰던 둘째 아이가 이제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손길이 많이 가지 않아도 될 만큼 자랐으니 영어공부에도 신경을 써야겠다. 

  얼마 전 새로운 아이와 인연을 맺었다. 초등학교 일 학년인 남자아이로 이름은 호세인이다.  내 아이와도 끈을 이어주고 싶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고 있음을 늘 감사해하고, 또 주위에는 불우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을 도와주는 마음을 늘 가졌으면 해서다. 이제 나에게는 세 아이가 있다.  우리 아이 둘과, 비록 만나지는 못하지만 새로운 인연을 맺은 또 한 아이인 호세인이다. 그리고 내 힘이 닿는 한 끊어지지 않는 인연을 계속 맺어갈 것이다. 제 3의, 4의 모하메드와. 세상의 아이들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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