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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희수필] ②'길을 건너며'윤석희:수필가/시인/신곡문학상수상/수필집「바람이어라」,「찌륵소」펴냄·눌산 시창작교실 수료

                      길을 건너며   
          
                                                    윤   석  희

 

 길을 건너는 사람들을 보고 뛰었다. 숨이 차다. 그런데 가운데쯤 왔을 때 신호가 바뀌었다. 관성의 법칙인가. 멈추는 순간 몸은 등속운동을 계속한다. 기우뚱 앞으로 쏠린다.
 몸의 중심은 잡았으나 마음은 미편하다. 시간에 쫒기는 것도 아니고 서둘러야 할 이유도 없다. 하나 언짢다. 규제 당한 통행에 부아가 난다. 기다림의 시간이 영원 같다. 탯줄이라도 끊긴 듯 불안하다. 삶의 끊이 놓여난 듯 맥이 풀린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갑자기 정지하게 되면 당황하고 만다. 앞만 보고 달려온 탓이다. 멈춰서 맞닥뜨리는 여백이 감당되지 않는다. 무료하고 난감하다. 머뭇거림을 견디기 어렵다. 조급증이다. 무리 속에서 계속 걸어야만 마음이 편하다. 소외감으로 시달리지 않고 군중 속에 나를 묻을 수 있어서다. 앞서 길을 건넌 사람들의 뒤통수에 시샘을 던진다. 그들과의 간격이 낭패감을 불러온다.
 신호가 바뀔 것을 알린다. 깜박거린다. 노란 불이다. 필사적으로 달린다. 지금이 아니면 때를 놓칠 것 같은 절박함이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신호가 바뀌기 전에 반대편에 도착한 것은 아니다. 무시하고 계속 뛰었다. 도중에 차도 서게 하고 마주 오는 사람과도 부딪쳤다. 건녀 편에 다다르자 무언가를 해낸 듯 흡족하다. 그러나 기다릴 줄 모르는 다급함이 부끄럽다. 어색해서 땅만 내려다보며 또 길을 재촉한다.
 정지 신호다. 멈추어 섰다. 앞만 보고 내달린 노정에 경고 불이 켜졌다. 이쯤에서 주위도 살피고 지나온 길도 돌아봐야 할 것 같다. 숨도 고르고 보폭도 조정해야지. 하늘도 올려다보고 전봇대 위의 새 소리도 들어야겠다. 옆 사람도, 맞은편 사람도 새겨 볼 일이다. 빨리 빨리에서 비켜서라 한다. 천천히 사유를 끌어들일 때다. 운동의 관성으로 이어지는 의미 없는 행동을 잠시 잊고 생각의 불을 켜라고 한다. 그래서 빨간 신호등은 사색 등이다. 잠깐이나마 여유를 즐기고 여백을 마련하라고 일깨워 준다.
 꿈도 꾸고 마음도 비웠으니 가라고 눈을 깜박인다. 다시 시작이다. 계속 진행하라고 격려 등이 켜졌다. 믿음직한 초록 불이다. 서두르지 말라 한다. 느긋하게 앞뒤를 분별하며 천천히 가라 한다. 많은 차들까지 멈춰 서서 나의 행보를 축복하고 있는 듯하다.
 싫증내지도 않는다. 초록 노랑 빨강 신호등의 불이 꺼지고 켜지고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말한다. 생각과 행동이 편중되지 않게 잠시 멈춤도 받아들이라고 한 걸음 늦춰 가기를 주저하지 말라고.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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