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적을 찾다

                                                                                                      우 광 미

새벽 항구로 나왔다. 밤새 어둠을 밝히던 별빛도 졸린 눈을 감는 시각. 등대의 불빛을 향해 회항하는 배가 긴 궤적을 남기며 항구로 들어선다. 아침의 기운에 창백해져가던 하현달이 그들을 반긴다. 만선인가 보다. 끼룩끼룩 소리를 내며 갈매기 떼가 따라온다. 지난밤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항구의 비린내가 간기에 절은 어부들의 땀 냄새를 갯바람 속에 실어 온다.

배가 들어온 선착장은 금세 북적이기 시작한다. 펄떡이는 생명들이 쏟아진다. 만선을 기원하고 무사귀환하기를 기도하던 아낙들의 손길도 바빠진다. 먼 나라의 말처럼 알 수 없는 언어로 경매가 이루어지면 고기들은 주인을 만나 떠난다.

그제야 배들은 숨고르기를 한다. 갑판 청소도 하고 어망들을 정리한다. 이때 상처가 있는 생선들은 덤으로 얻는 어부들의 안주감이다. 하루의 일과를 마감하며 그들의 젖은 몸은 따끈한 국물과 소주 한 잔에 위안을 받는다. 아스팔트 위에건 물 위에건 사는 일은 참으로 녹록치 않다. 잠시 항구에는 고요가 깃든다.

어촌에 남은 궤적을 더 찾아보려 방파제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출항 준비를 위해 어부들은 몸을 누인 어망들을 손질하고 있다. 생을 향한 고기들의 필사적인 몸부림 때문이었을까. 어망들은 군데군데 상처를 입었다. 바람이 남기고 간 바다의 이야기가 구멍 난 어망 사이로 숭숭 오간다. 그 곁을 지키는 어부의 손. 거칠다. 지난 세월이 손끝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의 손이 바빠진다. 대나무 바늘귀를 따라 순식간에 구멍 난 어망은 기워지기 시작한다. 저곳에 누군가의 상처도 기워지고 있지는 않을까. 양해를 구하고 셔터를 누른다. 새삼 손질이 끝난 어망을 밟기가 조심스럽다.

등대 쪽으로 더 다가서니 어망을 고정시키던 닻들이 놓여있다. 몸에는 부스럼이 전신에 퍼져있어 햇볕에 몸을 말린다. 바다의 심저에 뿌리를 내리고 어망들이 흔들리면서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내려 갈 때마다, 엄청난 수압을 이겨내며 잡고 있지 않았던가. 그것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본다. 온 몸을 조여 왔을 수압이 내게 왈칵 달려든다.

오후가 되자 바닷물이 빠지기 시작한다. 저편 그늘 켠에 바다의 해조음을 듣는 아낙들이 앉아 있다. 그들의 머리 수건이 유월의 볕을 다 막아내진 못하는가 보다. 볕에 그을린 건강한 미소가 아름답다. 그들은 기다림을 안다. 바다가 자신의 속살을 보여주는 썰물 때를 기다린다. 도시로 떠난 자식들을 생각하며 갯벌로 향하는 발걸음이 고단한 걸음만은 아닌 듯하다. 그들이 희망의 종패를 갯벌에 심어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심어둔 것은 무엇이었을까. 저곳에서 내 지난 날 시행착오와 아집들이 갯벌처럼 질척인다.

삶이란 순환이다. 반복이다. 그러나 매일 같은 일을 하면서도 지치지 않는 것은 일이 그들의 희망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새벽을 가르며 들어오던 어선의 궤적에서 어촌의 삶을 돌아보고자 한 나의 생각은 부질없는 것이었다. 그들의 궤적은 그들의 삶 속에 존재한다는 걸 깨닫는다. 격랑을 지나 삶을 낚았고 타협할 줄 알며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감사하고 삶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절망하지 않는 것은 곧 다가올 심해의 고요를 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저녁 어스름 저기 누군가 다시 출항을 한다. 만선을 기원하는 깃발을 휘날리며 황금빛 저녁노을 속으로 물길을 가르며 나간다. 삶을 일깨우는 바다의 소리는 희망의 은유로 끊임없이 철썩일 것이다. 누군가의 희망이 불을 밝히며 상념의 부표를 넘어 바다로 향한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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