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가는 새

                                                                                                         윤 석  희
 

날개를 편다. 감춰졌던 가는 다리가 보인다. 준비 운동하듯 갈퀴를 비벼댄다. 망설임인가. 동작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고른다. 팽팽한 긴장이다. 다시 퍼덕인다. 힘차게 몸을 밀어 올린다. 날개 짓이 눈부시다. 내 꿈 하나 창공에 펼친다.

사우스 앨리게이터강의 지류인 옐로 워터다. 호주의 카카두 국립공원에 속한다. 화면 속에서나 나옴직한 지상의 낙원을 슬로 모션으로 보는 듯하다. 끝없는 신록의 초원. 한가롭게 우리를 구경하는 하얀 들소 떼. 청초한 분홍의 연꽃들. 티 없이 푸른 하늘. 이름도 알 수없는 형형색색의 새들. 악어가 이빨을 드러내어도 자연의 적요와 평화 속에서 두려움조차 일지 않는다.

나뭇가지 위에, 들소 잔등 위에 새가 지천이다. 물속에서 강가 풀밭에서 먹이를 구하느라 바쁘다. 포식을 했음인지 동무들과 소곤대기도 하고 낯도 씻고 장난이 한창이다. 무리의 우두머리 인가 보다. 한 놈이 하늘로 치솟자 하던 동작을 접고 일제히 따른다. 놀이하듯 곡예 하듯 엄청난 새들이 떼 지어 난다. 공중 쇼 장관이 펼쳐진다.

동조하지 않는 새 한 마리에 눈이 갔다. 몸체의 흰색과 머리 부분의 검은 빛이 유난히 선명하다. 먹이도 구하지 않고 동료들과 어울리지 않으며 홀로 외롭다. 풀밭에 앉은 채로 꼼짝을 안한다. 몸을 다친 걸까. 날개가 상했을까. 마음에 걸린다. 크루즈를 포기하고 지켜보아야겠다. 격려해 주며 기다려 보면 꼭 날을 것 같아 눈을 떼지 못한다.

초등학교 육학년 성탄절 무렵이었다. 동무 따라 교회에 다녔고 어쩌다 연극을 하게 되었다. 내용을 다 기억할 순 없지만 천사가 되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역이었다. 천사는 나 말고도 둘이나 더 있었다. 하얀 원피스를 예쁘게 입었다. 두 팔을 벌려 레이스 날개를 나풀거리면서 춤을 추어야 했다. 날개 짓을 하며 하늘을 나는 동작이 어찌나 마음에 드는지 한 이십일을 죽어라 연습했다. 그러나 공연 일주일을 앞두고 문제가 생겼다. 무용지도를 하던 대학생 언니가 내 날개 짓이 뻣뻣해서 도저히 안 되겠다고 했다. 세 천사 중에 나만 탈락 시켰다. 천사 대신 예수 역이 주어졌지만 사양하고 더는 교회에도 나가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도 새가 되고 싶었다. 날개를 꿈꾸며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그러다 맡은 천사 역이었다 내 몸에 진짜 날개가 돋는 듯, 천사의 날갯짓이면 하늘을 날 수 있겠다고 여겼다. 그러나 날아 보지도 못하고 꺾여 버린 날개.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통증이 심해지더니 마음의 병이 되고 만다. 매사에 자신감을 잃었다. 그해 중학입시에도 실패하고 굵은 못하나가 가슴에 박혀 날개 짓을 어렵게 했다. 끝내 다른 이들과 두꺼운 벽을 쌓고 내 안에 칩거하고 만다. 날지 못하는 새가 된 것이다.

저 새도 나처럼 마음이 다친 걸까. 풀밭에 앉자 새를 보고 있다. 같은 무리의 새들이 보이지 않게 날아갔는데 미동도 하지 않는다. 외톨이가 안쓰럽다. 스스로 고립을 자처한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날아야 살 수 있는 데. 먹이도 필요하고 둥지도 마련해야 하고 짝도 짓고 세상구경도 해야 하지 않겠나.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힘껏 살아야 하는 게 모든 생명체들의 의무가 아닌가. 가까이 다가간다. 외면하지 말고 삶을 정면 돌파해 가자고 어른다. 눈을 들어 쳐다볼 뿐 여전히 꼼짝을 안한다. 쓰다듬어 주려고 손을 내미니 작은 몸이 기듯 움직인다. 거부의 몸짓이다. 상처가 났거나 몸을 다친 것은 아닌 듯하다. 거리를 두고 지켜봤다.

어디에 갔다 왔는지 한 무리의 동료들이 다시 나타났다. 우듬지에서, 물위에서 오르락내리락 점프도 하며 수선이다. 잠자는 물속도 흔들어 놓고 휴식하는 벌레들도 긴장하게 만든다. 이탈자를 찾아온 것만 같다. 마음을 돌려보려는 듯 큰소리를 내며 외톨이 주변에서 맴돈다. 이내 풀밭에 주저앉자 기다려 준다. 동료들이 관심을 쏟아주는데도 여전히 그놈은 묵묵부답이다. 아니 나무 밑 외진 곳으로 피한다. 내 마음이 더욱 아프다.

나를 싣고 갈 미니버스가 돌아오고 배가 시야에 들어온다. 기다려준 보람 없이 떠나게 되는 거 같아 야속하다. 숨이 멎을 듯 불안해진다. 합장을 하고 빌어 본다. 나를 위해 한번만이라도 비상해 보라고.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버스에 오르려 하는데 이놈이 몸을 곧추세운다. 가로의 몸체가 바로 세로 몸체로 변한다. 땅의 기운이 필요한지 부리로 땅을 후빈다. 다시 고개를 숙이며 어깨를 들어 올린다. 몸을 한번 꺾었다가 발레를 하듯 다리를 쭉 편다. 드디어 하얀 날개가 펄럭인다. 공중으로 치솟는다. 하늘에 검은 점을 찍으며 멀리 사라진다. 뒤이어 한 떼가 그놈을 따라서 훨훨 날아간다.

주르르 눈물이 흐른다. 오랫동안 박혀 있던 못 하나가 가슴에서 빠져나간다. 단단한 장벽도 무너져 내린다. 심호흡을 하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배낭 하나 둘러메고 길 떠난 지 몇 해 만인가. 이제 나도 날고 있는 것이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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