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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인자 수필]⑥'작은따옴표'심인자/수필가/수필과비평 작가회 전 거제지부장/수필과빕평작가상수상

                                                   작은따옴표  


                                                                                                       심 인 자 
  

글을 다 썼다. 그런데도 개운치가 않아 미적거린다. 완전하게 마무리를 못했기 때문이다. 글자들이 제자리에 잘 정돈되어 있지만 어딘가 어색하다. 다시 작업에 들어간다. 잘못 붙여진 문장부호를 정돈해야 한다.

글을 쓰자면 문장부호가 필요하다. 잠시 쉬라는 뜻인 반점. 문장이 끝났음을 알리는 온점. 감탄할 때 쓰는 느낌표. 의문을 나타내는 물음표. 직접 대화를 나타낼 때 쓰는 큰따옴표. 혼잣말이나 속마음을 나타낼 때 쓰는 작은따옴표. 말을 줄일 때 쓰는 줄임표 등이다. 이 부호들은 적재적소에 들어가야 한다. 그럼에도 난 한 가지 부호만을 선호하여 무작정 갖다 붙인다. 고집을 없애면 편할 일을 나 스스로 만들어 힘들게 한다. 

글을 쓰다 보면 여러 부호들이 나를 선택해 달라고 아우성이다. 그런데도 쉽사리 이들을 선택하지 못한다. 아니 거부한다. 느낌표는 특별히 감탄할 일이 없다. 그래서 도외시한다. 수시로 찾아드는 의문은 왜 그리 끝이 없는지. 육중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물음표 역시 묻어 버린다. 중간에 잠시 쉬다 보면 끝까지 갈 것 같지 않아 쉼표도 멀리 한다. 끝을 맺지 못하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여 뒤가 개운치 않아 말줄임표도 쫓아버린다.

터무니없이 외면당하여 뒷전에 앉은 문장부호들이 부아가 났음은 당연하다. 들어가야 할 집을 잃었으니 허전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예외도 있다. 작은따옴표이다. 언제나 그만은 애지중지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작은따옴표는 여간 고역이 아닌 게다. 대접은 고사하고 제 집도 아닌 남의 집으로 막무가내 밀어붙이니 그야말로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로 나는 작은따옴표를 좋아한다. 무작정 편애하여 시도 때도 없이 여기저기 갖다 붙인다. 편치 않은 자세로 어설프게 앉은 작은따옴표가, 내 자리가 아니니 이제 그만 놓아 달라 한다. 그럴수록 못 들은 척 외면한다.

하고픈 말이 너무 많아서이다. 그러나 참아야 한다. 참으려 무진장 애쓴다. 터질 듯 입속에 가득 차 포화상태가 된 언어들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한다. 분출한다. 화살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예리한 화살촉은 상대방에게 무차별 공격을 가한다. 깊이 박힌 상처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온다.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정신을 차린 나는 비로소 경악한다. 무작정 쏟아내는 말들을 제어할 길이 없다. 후회하지만 화살은 이미 활시위를 떠나버렸다. 두렵다. 뒷수습을 해야 하는데 막막하다. 깊은 상처를 입고 쓰러진 상대방에게 손을 내민다. 냉랭함만 돌아온다. 오히려 덧나 커져만 간다. 수습이 안 된다. 감당하기 버겁다.

상대방에게 준 상처는 배가되어 돌아온다. 내가 쏜 화살보다 더 깊숙이 가슴에, 아니 온 몸에 사정없이 박힌다. 아프다. 짓이겨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고통에 신음한다. 웅크리고 앉아 나 자신을 살펴볼 겨를이 없다. 그들을 살피고 치유해 주기 바쁘다. 겨우 한숨 돌리고서야 외따로 숨어들어 내 상처를 어루만져야 하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입만 열면 화살이 쏟아지니 대책이 필요했다. 어느 순간부터 벙어리가 되었다. 처음엔 이것 역시 쉽지가 않았다. 귀머거리 마냥 못 들은 척. 장님처럼 아무 것도 못 본 척. 새침데기마냥 어떤 경우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그러기를 수년이다. 난 여전히 화살을 쏜다. 오늘도 많은 말들을 했다. 꾹 참으며 속 끓이지 않는다. 누군가 질시하는 말을 하면 당당히 맞선다. 경우가 아니면 아니라고 소리친다. 맞서야 할 때는 과감하게 나서서 잘잘못을 가린다.

이만하면 날이 선 화살촉이 되돌아올 법한데 아무도 나에게 일격을 가하지 않는다. 내가 하는 말엔 언제나 작은따옴표가 붙기 때문이다. 큰따옴표가 붙어야 함에도 작은따옴표로 대신한다. 작은따옴표 안에서 하고픈 말을 다한다. 좋은 말이든 궂은 말이든 가슴속에 가두어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가린다. 그래도 마음에 안 들면 또 가둔다. 금시 세상에 내놓을 수 없다. 나갈 수 있을 때를 기다려야 한다. 숙성되어야 한다. 곰삭고 또 곰삭아서 깊이가 있을 때까지.  

‘넌, 안 돼. 세상에 나올 수 없어. 숨어 있어야 해. 언젠가 정화되고 다듬어져서 둥글둥글    몽돌이 되었을 때쯤이면 널 풀어줄게. 자유를 줄게. 그 전엔 절대 안 돼.’

작은따옴표가 주는 묘미를 안다면 무작정 쏘아대는 화살로 생채기내는 일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너무 화나서 심장이 멎어버릴 정도로 힘들 때는 참지 말고 표현하는 거야. 나 힘들어. 죽을 것 같아. 도와 줘. 너무 슬퍼서 눈물이 멈추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지. 내 눈물 좀 닦아 줘. 감당하기 버거워. 미워서 다신 안 보고 싶을 때도 있잖아. 당분간 내 앞에 안 보이면 좋겠어. 그 동안 노력해서 그 마음 없애 볼게.

감정은 정말 한 순간인 것 같다. 그 시기만 잘 넘기면 격한 감정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던가. 작은따옴표 속에서 마음껏 쏟아내 보길 권한다. 정말 힘들 땐 그의 힘을 빌려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미세한 감정의 움직임을 상대방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을 터이니. 작은따옴표 속을 아무도 들춰볼 수는 진정 없을 터이니 말이다.

오늘도 문장부호를 쓰고 있다. 많은 것 중에 유독 작은따옴표를. 중요한 것은 그 부호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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