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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광미 수필]⑥ '까꼬막'우광미/수필가/궤적을 찾다 저자/ 한국 문인협회 회원

                                                     까꼬막
 
                                                                                                        우 광 미
 

세상의 모든 허식을 뺀 영혼의 색이 있다면 무채색일까. 아미동 까꼬막 410번지. 평생 인간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고 최민식의 갤러리가 있다. 그의 소박함만큼이나 작은 공간이다. 전시장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어느새 나는 그의 카메라 속 피사체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그의 사진에는 특별한 기교가 없다. 육십년대부터 우리의 시대상을 그린 사진들이다. 역경을 딛고 악착같이 살아가는 서민들의 모습. 가난을 찍었으나 가난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보인다. 삶을 향해 타오르는 작은 촛불과 같은 희망이 보인다. 가진 게 없어 잃어버릴 게 없는 사람들. 차라리 그들은 희망을 향해 가벼운 웃음 지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 자신이 절실히 가난을 느끼지 않았다면 가난의 실체를 담을 수 있었을까. 그들을 알림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느끼게 한다. 유명한 사진들 중에서 마음을 끄는 사진 한 점. 높은 언덕을 오르다 지쳐 계단에서 잠이 든 아이. 애타게 찾는 것이 계단의 끝에 있을까. 아이는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몇 계단을 오르지도 못한 채 잠든 아이 너머 우리 삶의 계단이 저기 있다. 나는 어디쯤 오르다 턱까지 찬 숨고르기를 하고 있을까.

헝가리 출신 전쟁 종군기자 로버트 카파는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당신이 대상에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 충고를 여실히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진실한 인간의 군상에 다가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난과 불평등 그리고 소외의 현장을 담은 그의 사진은 ‘배부른 자의 장식적 소유물’이 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한다던 그의 말처럼 진실로 낮은 자들과 함께 숨결을 나누고 있다. 뭔가를 남기고 싶은 욕망을 대변하는 것이 사진이다. 시간이 지나고 되돌아보는 자료가 된다. 그곳에 가면 피사체와 한 몸이 된 그를 만날 수 있다.

여행의 의미를 쉼에 두는 건 새롭고 설레는 기쁨을 찾기 위해서다. 우리 눈이 세상의 겉모습을 향해 있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놓치기 쉽다. 역사의 민낯을 보아야만 현재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내 고향이면서도 그 이면을 알지 못했다. 벅찬 감정들을 쓸어내리고 발길을 비석마을로 향한다.

아미동 까꼬막 19번지. 멀리 부산항까지 내려다 보이는 탁트인 전망대. 고지대에 다닥다닥 붙은 작은 집들과 골목, 산동네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쳐 버릴 작은 삶의 흔적들. 남의 집 옥상이 내집 마당이 되고, 또는 길이 되는 곳. 채도를 가진 지붕의 페인트 위로 아픈 역사가 묻어난다. 

삶과 죽음은 양분되어 있는 듯하지만 서로 가까이 있기도 하다. 죽은 자와 산 자의 마을이 다른 점은 무엇일까? 우리 삶이 결국은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데. 생사가 같이 가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곳이다. 한 사람도 겨우 지나다닐 만한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얽혀있다. 길과 길사이의 틈이다. 또한 지름길이기도 하다. 시간과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한국전쟁 때 부산까지 내려온 피란민들. 갈 곳을 잃은 그들은 나라에서 적어 준 '아미동 산 19번지'라고 적힌 종이 한 장과 천막 하나 들고 이 산꼭대기에 거처를 잡았다. 이곳은 광복으로 서둘러 돌아간 일본인들이 미처 수습해 가지 못한 묘지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일본인들의 공동묘지였던 이곳에서 집 지을 재료가 없는 피난민들에게 그들의 비석이 더없는 건축자재가 되었다. 그 위에 나무판과 판자들, 널빤지를 덧대어 집을 만들어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죽음의 공간이 이렇게 산 사람의 공간이 되었다.

 지난날 소리들이 떠오른다. 이른 아침 외치는 양동이 속 재첩 뽀글거리는 소리, 뎅그렁 두부장수 종소리, 간밤에 오줌 싼 오빠 머리에 키를 쓰고 소금을 얻으러가며 투덜거리는 소리. 갓 지은 밥을 가족수대로 쌓아가며 도시락을 싸시던 어머니. 다른 집과 연결된 옥상에서 바라보면 우리의 삶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낮은 자들의 높은 곳. 소외받은 자들의 낮은 자리. 아래 동네가 훤히 내다 보이는 양지바른 길가에 앉은 할머니들을 앵글에 담으려하자, 셔터를 누르기도 전에 알아차리고 얼굴을 돌리신다. 관광객들로 인해 사생활 피해도가 적지 않으리라 짐작은 간다. 하는 수 없이 그저 실루엣만 조금 잡았다. 잠시 후 경직된 할머니의 경계심도 풀리고 내뿜는 긴 담배연기 속에서 지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오랜 항해를 끝내고 어느 사구에 몸을 누인 폐선 같은 이 언덕배기. 저 허름한 슬레이트 지붕 아래 창 밖으로 그들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웃음소리다. 우리 삶이 지난 시간의 아픔을 페인트로 덧칠해 두고 세상을 바라보지는 않는지 생각해본다. 골목 한켠 시멘트 벽 틈새를 뚫고 국화가 피었다. 선연한 주황색 빛깔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까꼬막을 되돌아 내려오는 길에 다시 사진갤러리를 지나쳐 왔다. ‘찰칵’ 셔터 음의 환청이 들리는 듯하다. 거리엔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아미동 까꼬막에서 내려다본다. 산 자들의 불빛이 화려하다. 사진 속 인물들의 꿈이 저렇게 피어났을까.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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