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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김정아] '밥상과 식탁'김정아:전북 임실출생/2011.11 수필과 비평 등단/독서논술지도사/계룡수필문학회원/눌산문예창작교실수강

                                                   밥상과 식탁


                                                                                                         김 정 아
 

허청 바람벽에 둥근 밥상이 걸려있다. 반백의 노인처럼 희끗한 먼지를 얹고 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밥상은 나보다 나이가 많다. 신식부엌에서 밀려나 허청에 자리하고 있지만 음식을 가득 담았던 예전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

아궁이에 불꽃이 넘실거린다. 장작은 생의 마지막 열기를 뿜어낸다. 하얀 김이 무쇠솥뚜껑을 밀어 올리며 허청 안을 가득 채운다. 저녁상에 오를 사골국이 진국이 되어가고 가족들의 이야기가 정답다. 외지에 나갔던 아이들도 외갓집 아랫목을 차지하고 있다. 어머니는 간만에 찾아든 자녀들과 손자들에게 먹일 반찬을 준비하느라 바쁘시다.

어릴 적 밥상위에는 맛있는 음식이 참 많았다. 들깨즙을 넣어 부드럽게 끓인 쑥국으로 봄을 맞았고 하지감자를 넣어 매콤한 갈치조림에 여름을 이겨냈다. 문고리가 짝짝 달라붙게 추운 겨울에는 참기름을 발라 구운 김이 입맛을 돋웠다.

둥근 밥상은 너그럽다. 누구든 받아들인다. 식사 중에 이웃사람이 오면 조금씩 당겨 앉아 자리를 마련한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앉아도 자리가 생기는 요술 밥상처럼 이미 좁았던 밥상에 또 자리가 생겨난다. 길손도 금방 한식구가 되어버리는 따뜻함이 있다.

밥상은 편리하다. 원하는 곳으로 옮길 수 있다. 계절에 따라 밥 먹는 장소가 달라진다. 추운 겨울에는 장작불이 따끈하게 데워놓은 아랫목에 자리한다. 적당히 따뜻한 봄과 가을 점심밥상은 마루에 오른다. 뜨거운 여름에는 나무 그늘 평상에 상을 차린다. 모깃불이 오르고 산에서 시원한 바람이 내려오면 오이 고추에 쌈장도 맛난 저녁이 되었다.   

밥상은 겸손하다. 할 일을 마치면 제 자리로 돌아간다. 숭늉을 마시고 나면 밥상은 부엌 한쪽 조용한 곳에 얹힌다. 자신의 일을 마치고나면 더 이상 가족들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식사 때가 되기 전까지 밥상의 존재는 사라진 듯하다. 마치 예전의 어머니처럼.

집안일은 어머니의 몫이었다. 먹이고 입히는 일과 농사일로 어머니는 충분히 바쁘셨다. 보통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자녀의 학교생활은 스스로의 몫이라고 여기신 듯하다. 그래도 학교 생활과 친구들에 대해 어머니와 얘기 나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많았다. 말이 없으신 어머니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셨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새 아파트로 입주했다. 구색에 맞추려고 침대와 소파 등 가구를 보러 많은 가게를 돌았다. 한 가구점에 들어서는데 검은색 광택이 도는 식탁을 발견하고 첫눈에 반했다. 나무의 결이 살아있으면서도 옻칠만이 갖은 깊은 색감이 느껴졌다. 6인용의 넓은 상판에서 다리로 이어지는 곡선은 아름답고 멋졌다.

식탁은 도도하다. 자신만의 공간을 차지하며 가족들을 불러들인다. 거실과 부엌 사이에 들어선 식탁은 모든 것을 함께 한다. 식사는 물론 책을 읽고 공부도 한다. 가족들의 많은 대화도 식탁에서 이루어진다. 지인들이 놀러오면 차를 마시기도 좋다. 식탁은 집안의 중심이 된다. 이렇듯 나는 식탁에서 많은 것을 했고 아이들에게도 그 이상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예전에 비해 많이 배우고 똑똑한 신세대 엄마인 것이다. 아이들을 위해서 어떤 것도 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들도 이런 엄마를 좋아할 것이라는 오만한 생각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순간들은 자신만만했던 만큼 아프게 다가왔다. 아이가 중학생일 때, 교환학생으로 외국에 갔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호스트가족과의 불협화음으로 너무도 힘들어했다. 영상통화를 하며 아이가 흘리는 눈물에 함께 눈물을 흘렸다. 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외에는 해줄 게 없었다. 아이는 내가 알 수 없는 세계에 있었다. 아이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이는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다. 힘든 일이 생기면 다 해 줄 것 같았던 엄마에게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듯했다. 부엌 한쪽으로 물러날 때를 알았던 밥상은 어머니로서의 한계를 이미 알았던 것일까.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언제나 그만큼씩의 거리가 있는 모양이다. 결코 닿을 수 없는 거리. 어머니도 나에게 그런 안타까운 슬픔이 있었을 것이다. 자식은 항상 부모의 경험치 너머에 있다는 것을,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네 개의 의자를 가진 식탁은 휑하다. 아이들이 떠난 빈자리를 채울 길은 없다. 길손도 흔쾌히 받아들이던 어머니의 밥상은 그래도 덜 외로웠을까. 바람벽에 걸린 밥상을 바라본다. 참선에 든 듯 조용하다.

어머니의 밥상과 나의 식탁은 결국은 하나이다. 제 할 일을 다 하고 조용히 기다려 따뜻한 밥을 차리는 것. 다시 길 떠날 채비를 하는 아이에게 언제든 힘들 땐 돌아올 곳이 되어 주는 것, 이것이 곧 어미의 숙명이다.
밥상을 내려 먼지를 턴다. 오늘 저녁은 이 둥근 상에 차리고 싶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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