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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인자 수필]⑦'장롱을 닦으며'심인자/수필가/수필과비평 작가회 전 거제지부장/수필과빕평작가상수상

                  ⑦ 장롱을 닦으며

                                                      심 인 자

이사준비를 한다. 날짜가 임박한 건 아니지만 시간 있을 때 미리 챙기고 정리해두면 뒤에 덜 바쁠 것 같아서다. 오래되어 낡고 헤진 것들을 따로 두었다가 이사하는 날 딱지표를 붙여 가감이 버릴 심산이다.

장롱도 그 중의 하나다. 이불장 위의 칸의 판자가 내려앉아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문을 여닫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내내 귀에 거슬렸다. 문짝이 틀어지고 아귀가 맞지 않아서이다. 그래서 큰 맘 먹고 이사하는 김에 장만하려 마음을 굳힌다. 새 집에 새 물건을 들이라고 이웃 사람들이 한마디씩 하는 통에 마음을 재차 다진다. 하지만 섭섭하다. 십오 년의 세월을 함께 하면서 손때 묻은 살림살이 중 어느 것 하나 정들지 않은 것이 없지만 장롱은 유난히 정이 깊다.

결혼식을 하고 그 길로 남편과 떨어져 살았다. 잠시 머물면서 시댁식구들과 얼굴을 익히라는 어머님의 뜻에 따라 일 년의 반을 뚝 잘라 시댁에 머물기로 한 것이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속은 탔지만 감히 말을 꺼낼 용기가 없었다. 남편 역시 내려 보내길 내심 바라는 눈치건만 어머님은 아무런 말씀이 없었다. 암만 시어른이 잘 해주셔도 친정부모만 하겠는가.

매일이다시피 눈이 부어있는 며느리가 측은했던지 남편에게 내려가는 것을 허락하셨다. 두 달 만에 시집살이가 끝난 것이다. 살림살이는 날을 받아 내려 보낸다기에 세간도 없이 남의 집 방 한 칸을 빌려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얼마나 좋았던지 좁은 방안에 텔레비전과 이불, 베개하나만으로 만족했다.

드디어 신혼살림을 싣고 어머님이 내려오셨다. 웬만한 혼수는 다 준비했던 터라 좁은 방에 제대로 들어갈지 걱정이었다. 장롱도 들여야 되는데... 그런데 장롱은 왜 아직 안 오는 걸까? 마음이 조급했지만 시댁 어른도 계신데 채근할 수도 없고 해서 가구점에서 물건오기를 기다렸다. 잡다한 짐이 먼저 들어가면 장롱을 들이기가 힘들어질 것 같아 언제쯤 도착하느냐고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남편은 오히려 나에게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물었다. 황당하고 기가 막힐 뿐이었다.

시집올 때 나는 혼수에서 장롱을 뺐다. 그 당시, 우리지역은 신랑 쪽에서 장롱을 준비하는 것이 예였다. 그런데 시댁에서는 신부 측에서 장만하는 걸로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살림 중에 가장 중심이 되는 장롱이 없으니 짐 정리가 되지 않을 수밖에.

상황을 알아차린 어머님이 돈을 주셨다. 짐 정리하고 나면 집들이도 해야 하니 그 때 쓸 돈을 미리 갖고 온 것이라며 급한 대로 장롱부터 사라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장롱을 들이고 짐 정리를 다하니 우리 부부 누울 자리만 남을 정도로 불편했다. 조금 더 넓은 방을 구하려 돌아다녔지만 원하는 집이 없었다. 연말쯤에 입주가 가능하다는 임대아파트를 신청해놓고 좁은 방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 여름에 ‘셀마’라는 태풍이 전국을 덮쳤다. 특히 우리지역은 피해가 심했고 단칸방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방수가 안 된 벽에 물이 스며들어 벽지가 술술 떨어져 나갔고 허술한 문틈으로 비바람이 들이닥쳐 장롱밑바닥까지 물바다가 되었다. 남편은 비상근무로 며칠 동안 집을 비웠고 나 혼자 난리를 평정해야했다. 임신 중인 나는 젖은 가제도구를 닦아 햇볕에 말리고 못쓰게 된 것을 치워내야 하는 일이 무리였다. 힘들기도 했지만 집안일에 나 몰라라 하는 남편이 더 서운해서 눈물을 흘리며 집을 치웠다.

가장 큰 피해는 장롱이었다. 물을 잔뜩 먹은 나무는 마르면서 뒤틀려 아귀가 맞지 않았다. 장롱 뒤쪽의 판자가 들고일어났으며 습기 때문에 핀 곰팡이 얼룩은 한 점의 추상화였다. 남편은 그런 것을 못질하고 다듬은 끝에 겨우 모양 세를 잡아놓았다. 덧칠까지 하고 나니 제법 윤이 났다. 물건은 하루만 쓰면 그때부터 중고라고 하더니 우리 집 장롱은 태풍 때문에 초부터 중고품으로 전락하여 지금에 이른 것이다.

매일 청소를 하면서 빠지지 않고 중고가 된 장롱을 반질반질하게 닦았다. 남의 눈에 헌것처럼 보이기 싫어 정성을 다하다보니 어느새 애지중지하는 물건이 되었다. 세 번이나 이사를 했어도 그 때마다 장롱을 가져왔다. 고쳐놓은 부분이 일그러져 말썽을 부렸지만 내다버린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사하면 집안을 어떻게 꾸밀 것인지 생각해본다. 정들었지만 이사를 기회로 가구를 새 것으로 바꾸어버리자고 마음을 먹는다. 그런데 나의 생각을 눈치라도 챈 것처럼 남편이 제동을 건다. 지금 있는 그대로를 새 집에 옮겨놓자는 것이다. 다 헤진 소파며 흔들거리는 식탁의자까지 말이다. ‘살림은 내 소관이니 상관하지 말라’고 잘라버린다. 큰소리를 쳤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다. 며칠 내내 고심한 끝에 남편의 뜻을 따르기로 한다. 삐걱거리는 부분은 다시 손을 보면 된다.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장롱을 바라보는 나의 눈빛이 달라진다. 정이 가는 것이다. 당분간 장롱 닦는 일은 신경 쓰지 말자고 했는데.

내게는 장롱처럼 하루하루 정을 닦으면 지내온 이웃이 있다. 그들을 두고 가려니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 차를 마시며 담소를 즐기고 삶의 애환을 나눈 시간들이 가슴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데. 내가 힘들어할 때, 혹은 아플 때 등을 두드려주고 죽을 끊여주던 정 많은 지인들이었다. 이곳에서의 추억은 스쳐 지나는 바람소리에도 되살아날 것이며 진한 그리움에 코끝이 찡해올 것이다. 이제 그들의 정을 가슴에 담아 가려한다. 그리고 마냥 그리워질 때 품속의 사진을 꺼내서 보듯 가슴을 열어 볼 것이다.

장롱을 바라본다. 새 것처럼 곱고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눅눅한 정이 배여 있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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