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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이혜영] '암연'이혜영/서울 출생.거제대학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수료,( 수필과 비평) 신인상 수상 (2013. 5),계룡수필 문학회 회원,눌산문예창작교실 수강.

                                                          암연


                                                                                                  이     혜   영

꽃피는 봄 5월에 카페에서 ‘안개속의 데이트 (La Plaer), 를 연주하기로 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클래식기타가 더 잘 어울린다는 그의 말만 믿고 시작했다. 원래 기타라는 악기가 쉽게 시작했다가 쉽게 포기하는 악기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늦은 나이에 이미 손가락은 굳어서 마음대로 움직여주질 않았고, 복잡한 악보는 쉽게 눈 에 들어오지 않았다. 박자 지키랴, 왼손 코드 잡으랴, 오른 손가락으로 기타 줄 튕기랴,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다. 아무래도 ‘내겐 너무 힘 들것 같다.’고 포기 의사를 밝혔다. 그랬더니 그 사람 ‘1000번 연습하면 할 수 있다. 그렇게 해 보았느냐.’고 다그치는 바람에 오기가 발동했다. 그 때부터 잠자는 시간도 잊은 채,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연습을 거듭했다.

클래식 기타는 혼자서도 오케스트라 못지않은 연주가 가능한 것이 매력이다. 아름다운 영상음악을 연주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면서 흠뻑 매력에 빠져 들었다. 악기 한 가지는 꼭 배워 보겠다는 오랜 결심이었다. 너무 늦게 클래식기타의 매력에 끌리다보니, 진즉 젊어서 시작하지 못한 후회스런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배움에는 정해진 시간이 따로 없다는 말에 위안을 삼는다.

연로하신 할머니 한 분이 늦은 나이에 피아노를 배우러 학원을 찾았다. 그 나이에 왜 피아노를 배우려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분은 자신의 팔순잔치에 축하해주러 온 하객들에게 직접 피아노 연주를 선물해 주고 싶어서란 대답이었다. 앞으로 10년 동안 배운다면 되지 않겠냐는 물음이었다. 그분의 이야기에 용기를 얻게 되었다. 자신감도 생겼다. 10년 세월이면 해 낼 수 있을 거란 결심이 섰다.

새롭게 배우기 시작한 기타가, 나이 들어 공허한 마음을 채울 수 있어 더없이 좋았다.
기타가 어렵긴 하지만, 이제껏 배워보았던 어떤 취미보다도 취향에 잘 맞는 것 같았다. 만족한 선택이었다. 처음 우려와는 다르게 흥미를 가지고 꾸준히 도전한 덕분에, 그 사람 내게 작은 발표회를 갖자고 하였다.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망설이는 내게, 발표회를 하면서 실력도 향상되고 자신감도 얻게 된다는 설득이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었지만, 부딪쳐보자는 욕심이 생겼다. 늦바람 무섭다더니, 발표회를 앞두고 기타에만 매진하느라 집안일은 뒷전이었다.

드디어 긴장과 설레는 마음으로 연주회를 코앞에 둔 어느 날이었다. 느닷없는 소식이 날아  들었다. 그 사람 간밤에 뇌졸중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는. 날벼락 같은 충격이었다. 119에 실려 간 병원에서 8시간 수술 끝에, 병실엔 몸만 눕혀놓고 어디로 헤매고 있는 걸까.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채로 묵묵부답이다. 갑작스런 충격에 그동안 조율했던 기타 줄이 한꺼번에 풀어졌다. 느슨해져버린 허탈감을 수습 할 길이 없었다.

믿지 못할 현실이 충격이기만 하다. 하루 앞일도 모르면서 많은 일들을 꿈꾸며 살아가는 일이 갑자기 부질없게 여겨진다. 아득한 길을 헤매고 있을 그 사람 생각에 가슴이 멍해온다. 얼마 전 아들 역시 갑작스럽게 먼저 떠나보낸 상처가 깊었나보다. 너무도 빨리 마음을 추수리던 그 사람을 잠시나마 의심했었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마음을 정리할까. 의혹을 품었었다. 감히 다른 사람 속을 어떻게 알 거라고. 내색 못하고 혼자 삭히려던 상처가 더욱 깊었나보다. 다시 어둠속으로 빠져 든 그 사람을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이 답답하다. 무의식중에 손가락을 움직여보려 애쓰는 모습이 눈물겹게만 여겨진다. 다시 연주회를 할 날이 돌아올 수 있을까. 인생은 꿈을 꾸며 살아가는 거라고 한다. 또 다시 어떤 꿈으로 도전을 해야 할까 마음이 어두워진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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