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왼쪽
오른쪽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칼럼 윤석희 수필
[윤석희 수필]⑥ '눈물'윤석희:수필가/시인/신곡문학상수상/수필집「바람이어라」,「찌륵소」펴냄·눌산 시창작교실 수료

                        ⑥눈물
                                                  윤   석   희
 

눈물이 흐른다. 형체없는 마음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는 슬픔의 결정체이고 기쁨의 분화구이다. 분노의 진액이며 감동의 봇물이다. 속내가 무엇이든 내면의 움직임을 정직하게 보여준다. 마음의 창인 것이다.
 여간해선 슬픔으로 눈물이 나지 않는다. 이것은 안으로 잦아들어 가라앉고 만다. 흐르지 않는 눈물, 소리 없는 눈물이 옹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기쁨에 겨워도 마찬가지다. 가만히 웃는다. 그냥 소리 내지 않으며 미소 짓는다. 소란하여 달아나지 않게 조용히 붙들고 싶은 것이다.
 아름다움과 마주칠 때, 감사함을 대할 때, 잔잔한 감동에 마음이 움직일 때 눈물이 흐른다.
 울보 중의 울보인 나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딸아이는 이런 나를 촌스럽고 유치하다고 놀린다. 나이가 들면서 몸과 마음이 다 굳어 버렸는데 여전한 것은 눈물뿐이다. 마를 줄을 모른다. 하찮은 드라마나 뉴스를 보면서도 그러하다. 입시 철에 교문에 붙여 논 엿가락을 보아도 눈물이 흘러내린다. 앞서 가는 할머니의 굽은 등을 보면서 펑펑 쏟기도 한다. 산사의 댓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하얀 고무신 또한 눈물을 자아내게 한다. 까닭 모를 서러움으로 흐느끼기도 하지만 큰소리를 동반한 기억은 별로 없다. 통곡소리를 눈물이 삭혀내니 말이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자주 눈물이 난다. 생각 속에 빠져들어서다. 차창으로 스치는 하늘이 유난히 파래 보여도, 벼가 누렇게 여물어가도, 고기잡이배들이 물살을 가르면서 바삐 내달려도 마찬가지다. 아마 힐끗힐끗 쳐다보는 옆 사람은 짐작하리라. 필경 불행한 사태가 벌어진 거라고. 하지만 대답할 수 있다. 마음의 물결이 이는 것이라고.
 자연이 눈물을 내어 준다. 히말라야의 장엄함 속에서 이는 말을 압도한다. 방대한 설원에 안기고 싶다. 메콩 델타 밀림이다. 태고의 습지는 괴괴하다. 정적에 숨이 막힌다. 두려움에 눈물을 감당할 길이 없다. 하롱만의 빼어난 선경에 가슴이 벅차다. 눈물이 바다가 된다.
 인간에게서 신성을 느끼고 위대함을 인정하게 된다. 사람의 무한한 가능성 앞에 서면 가슴이 막힌다. 천년의 침묵을 끌어안고 아침 햇살 속에 드러나던 앙코르왓 앞에서 선인들에게 무조건 경배했다. 엘로라 동굴과 아잔타 석불에서 눈물만이 표현을 대신한다.
 아들 녀석의 초등학교 졸업식이 생각난다. 그날도 눈물은 내게 힘을 주었다. 고마움인지 미안함인지 알 수 없었으나 사람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힘든 삶이지만 그 속에 감동도 사랑도 있음을 일깨워 모질어지려는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갑자기 영하 십도 이하로 기온이 떨어졌다. 전날 운동장에 준비해 논 식장은 교실로 바뀌었다. 교실 사이의 칸막이를 걷어내고 의자를 옮기고 현수막을 다시 붙였다. 어수선하고 산만하다. 아니 수라장이 되었다. 참석한 학생은 교실에, 학부형들은 복도에 밀집해 술렁거렸다. 식이 거행되는데도 분위기는 진정되지 않았다.
 급한 일이라며 면장, 교장, 우체국장, 육성회장을 거쳐 쪽지 하나가 내게 전해왔다. 한복을 차려입고 단상에 있었으니까. 불길함이 스쳤다. 이런 자리까지 쪽지가 들어오다니.
 ㅡ마련했다. 걱정 놓거라.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동원한 수단이다.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주체할 수가 없이 이어졌다. 구절은 짧았지만 사연은 기막히다. 십여년 전이니 당시로는 거금인 팔십만 원이 그날 필요했다. 미리 알았지만 아침까지 마련이 되질 않았다. 학교에 기념품을 남겨야 했고 내빈과 교사들의 식사를 책임져야 할 돈이었다. 아들 녀석이 학생대표로 수석 졸업까지 하는 의무였다고 할까. 아무튼 관행이라 했다. 기분 좋아야 하는 날이지만 심정은 참담했다. 주변머리 없는 나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침나절 융통해 오라고 남편을 내몰 수밖에는.
 단상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를 보면서 아이들은 하나 둘씩 울기 시작했다. 아들 녀석이 답사를 읽고 있다. 계속 이어가질 못한다. 각자 눈물의 의미는 다르지만 종래에는 졸업생 백여 명이 다 울고 말았다. 흐느끼는 아이도 여럿 있었다. 졸업식의 분위기는 숙연해지고 아이들은 무엇엔가 생각에 잠겨 들었다. 추억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기억을 떠올리기도 할 것이며 더러는 앞날을 꿈꾸어 볼 것이다. 그리움도 후회도 각오도 있을 것이다. 시골 학교의 졸업식 광경이었다. 눈물의 근원지였던 나는 미소 짓고 아이들의 눈물은 식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요즘 세상에 눈물의 졸업식이 웬일이냐고 선생님들은 신기해하였고 화제가 되고 말았다.
 나를 지탱하는 힘이 여기에 있다면 지나친 억설(億說)일까. 눈물은 자주 나를 찾아온다. 허물없는 친구처럼 다독거리고 위로하며 편안함도 준다. 감춰져 있던 서정을 풀어내어 후련하게도 한다. 감정을 꾸밈없이 드러내어 진솔함이 몸에 배어든다. 찌꺼기를 가라앉히고 맑게 정화시킨다. 정서를 곱게 빗질해 준다.
 말을 아끼게 하고 생각을 끌어들여서 행동을 신중하게 조정해 준다. 자신은 물론 남의 마음까지 씻어내 주는 신비함. 눈물의 마력이다. 황폐해지는 마음을 잠재우고 용기를 주고 사랑의 원천이 된다. 울보라도 청승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고 눈물이 마르지 않고 샘솟는 사람이고 싶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정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