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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희 수필]⑧ '들개'윤석희:수필가/시인/신곡문학상수상/수필집「바람이어라」,「찌륵소」펴냄·눌산 시창작교실 수료

                   ⑧들개

                                     윤  석  희

버스가 섰다. 레드 비취란다. 붉은 모래사장이 환상적이라는 소문과는 딴판이다. 바다가  보이지 않고 황량한 자갈 밭 뿐이다. 바람은 사나워지고 비까지 퍼붓는다. 사람도 없고 멀리서 들리는 파도 소리만 음산하다. 소름이 돋는다. 목적지를 찾아 나설 염이 나질 않는다. 그러나 차가 올 때까지는 돌아갈 수도 없다.
   웬 녀석이 나타났다. 어디서부터 뛰어 왔는지 헐떡인다. 반가움에 겨워 뒹굴고 또 뒹군다. 하얀 몸이 얼룩이가 되 버렸다. 콧소리로 환영사도 빼놓지 않는다. 무료하던 차라 느닷없는 환대가 싫을 리 없다. 말동무나 하려했는데 앞장을 선다. 움직이지 않는 나를 보며 끙끙댄다. 나무래도 막무가내다. 조용해질 기미가 아니다. 언덕을 오르며 뒤 돌아보고 또 가다가 돌아보고 안타까워한다. 멍청히 바라보고만 있는 내가 답답한가 보다. 달려오더니 옷자락을 끈다. 가자는 몸짓임이 분명하다. 맹랑하다 싶었지만 심심해서 따라 나섰다. 모퉁이를 돌고 돌았다. 오르고 내리기를 몇 번이나 했을까. 드디어 이 놈이 멈춰 섰다. 그리고는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게 아닌가.
   과연 모래밭의 색깔이 장관이다. 붉은 바위가 영겁의 시간을 만나 분가루가 된 것 같다.  나뭇잎 비취 파라솔이 화려했던 여름을 추억하며 늘어서 있다. 레드 비치로 통하는 오솔길이 보인다. 그러나 파도가 거세어 가 볼 엄두도 못 내고 만다. 그 녀석이 더 나가질 않는 걸보니 사람들이 여기까지 오는가 보다.
  얼마가 지나자 녀석이 돌아 서 앞장을 선다. 신통한 놈이다. 대견하다 머리를 쓸어 주니 빗물을 털어 대며 올라탄다. 앞서고 뒤서고 장난을 치며 정류소 근처까지 다시 왔다. 그런데 녀석이 갑자기 서 버린다. 마주 쳐다보는 눈에 눈물이 베어 난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꼼짝도 안한다. 부질없는 짓은 하지 않겠다는 듯 완강하게 동행을 거부 한다. 차 시간이 되어 더 기다리지 못하고 나 혼자 나선다. 녀석은 알고 있는 것이다. 이 지점쯤에서 작별을 해야 한다는 것을. 결국 저를 두고 가 버리고 만다는 것도. 소외되지 않으려 애를 썼음인가. 잠시나마 외로움을 덜기 위해 익힌 재주인가. 영민함이 더 측은하다.
 
 룸비니. 부처님이 나신 곳으로 우리 절이 있다. 여기에는 범상치 않은 스님이 계셔 여행자들을 먹여 주고 재워도 준다. 군데군데 벽보가 붙어 있다. 들개에게 물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물렸을 땐 사무실에 즉시 알리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숲이 무성한 원시의 광야 한복판에 있기 때문이다.
 나흘 째 되는 날이었나. 스리랑카 절을 찾아가고 있었다. 풀숲에서 움직임이 보였다. 누렁이 한 놈이 뛰쳐나간다. 인기척에 놀란 눈치다. 도망을 가던 놈이 슬슬 따라 오는 기미다. 포장도로를 가운데 두고 나와 대치 상태다. 덜컥 겁이 난다. 눈이 마주쳤다. 탐색전이다. 거칠어 보이기는 해도 흔들리는 갈색 눈이 참 예쁘다. 눈빛도 맑고 깨끗하다. 헤칠 의사는 전혀 없어 보인다. 안심할 수는 없었지만 믿기로 한다. 녀석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계속 따라온다. 한참을 그렇게 함께하다 보니 서로 경계하던 사이란 것을 잊었다. 숲에서 나와 길에 들어서며 친근함을 보여준다. 서서히 꼬리를 흔든다. 끙끙대고 어리광까지 피운다. 나도 같이 가자고 손을 펼쳐 보이고 우호를 약속한다.
  얼마나 갔을까. 물끄러미 쳐다보던 이 놈이 내 발목을 덥석 물어 버렸다. 기겁해서 들판이 들썩이도록 고함을 쳤다. 가슴이 쿵쾅거린다. 공포심으로 의식이 하얗게 바랜다. 되돌아가서 사무실에 알리고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이 스친다. 서로의 믿음은 무너져 버리고 두려움만 커져 갔다. 고함 소리에 놀란 녀석이 숲 속으로 뛰어 들어가 나를 보고 있다. 슬픈 눈빛이다. 호소하고 있다. 소통 하려고 용기를 낸 거라고. 누렁이가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향한다. 울부짖는다. 처절한 절규다. 오싹하다. 오늘도 함께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거듭되는 기대와 절망은 외로움만 더할 뿐이란 것도.
  이상한 일이다. 시간이 갈수록 심연 깊숙이 박혀 있던 놈들의 눈빛이 되 살아난다. 울부짖던 통곡 소리는 점점 더 가슴을 파고든다. 내 눈빛, 내 절규. 마침내 내 고독이 되고 만다. 황량한 벌판에 홀로 선 내 영혼이기에.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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