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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희 수필]⑦'몽골의 후예'윤석희:수필가/시인/신곡문학상수상/수필집「바람이어라」,「찌륵소」펴냄·눌산 시창작교실 수료

                        ⑦몽골의 후예
 
                                                    윤    석    희
 

 

말이 달린다. 흙먼지가 안개처럼 피어난다. 스멀스멀 유목민의 피가 돋는다. 태초에 나의 조상도 말 위의 사람이었던가. 무의식 저 밑바닥에서 죽은 듯 엎디어있던 생명의 소리가 들린다. 호흡이 가빠진다. 쿵쾅거리는 심장박동이 환희의 교향곡을 연주한다.
 친구의 친구들이 몽골에 간다기에 끼어들었다. 지루한 장마를 견디기 어려워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었음이다. 아니 몽골이라기에 끌렸다고 해야겠다. 야생마처럼 살고 싶다고 스스로에게 되 뇌이곤 하지 않았나.

말을 타러 간 것이다. 배정받은 마부들의 인상을 살피는 표정들이 소녀 같다. 인사가 끝나자 마부들이 안장을 정리하고 각반을 채워주며 시범을 보인다. 운동치인 내가 겁을 먹는 것은 당연하다. 펼쳐 보이는 광야를 하루에 너덧 시간씩 달려야 한다니 걱정이 태산이다. 떨어지지만 말자고 속다짐 해본다.
 나의 마부는 우직하고 선량해 보인다. 내 말의 조정도 그가 하는 꼴이다. 나는 말 위에 올라 고삐를 쥐고 있을 뿐 서고, 가고, 속력을 내고 줄이고 모두 그의 몫으로 미뤘다. 안전과 목숨까지도 내어 준 것 이다. 커다란 입으로 빙긋이 웃어 보이는 모습이 믿음이 간다. 그래도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옆의 일행들은 자기 마부들과 친숙해져 여유롭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야생화 향내를 가슴깊이 마시고 있을 터이다. 나만이 두려워서 굳어진 몸으로 뻣뻣하리라.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말 타는 중에도 내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만만치 않은 수입원이련만 이 일이 그리 즐겁지 않은 듯 했다. 무서우니 속력을 내지 말자고 알리고 싶었지만 그의 야성을 더는 구속 할 수 없었다.
 그는 능숙한 조련사다. 내 쪽으로 얼굴한번 돌리지 않는데도 평지에서는 속력을 내다 고르지 못한 곳에 이르면 고삐를 늦춘다. 내 숨소리가 가빠지면 고쳐 쥐면서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도록 이끌어 간다. 끊임없이 무어라 소통하며 말을 제압하는 자태는 의연하고 단호하다.  그러나 옆의 동무들과 장난도 하고 이가 다 들어내 보이도록 웃어 제키는 표정이 몽골의 하늘만큼이나 맑다. 무심한 듯 무뚝뚝한 그가 일정을 마치고 말에서 내리는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펼쳐 보이며 환하게 웃는다. 스승이 제자에게 잘했다고 등이라도 두드려 준 것처럼 나는 우쭐해진다. 그렇게 조금씩 말 타기의 두려움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하루 일정을 시작하기 전 사탕과 초콜릿을 배당받는다. 각자 자기 마부에게 휴식시간에 건네는 간식거리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것을 주지 못했다. 사탕발림 이라는 말이 떠올랐고 맑은 영혼이 초콜릿 속에 녹아버릴 것만 같아 망설이다가 참았다. 잘한 일이다. 마부들이 시시덕거리며 들판에 누워 단맛에 길들어 질 때 그는 내 말 고삐를 잡느라 갑갑했던 마음을 씻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달리고 싶은 욕망을 억제할 수 없는 듯, 휑하니 사라져 버리곤 한다. 쉬는 시간을 이용해 야생화로 화관을 만들어 짝의 머리에 씌워주는 마부가 많았지만 부럽지 않았다. 요란한 징키스칸 부대의 말발굽 소리로 광야를 깨우며 그가 돌아오는 휴식의 끝 무렵이 나는 좋았다. 순수를 대하듯 마음이 밝아졌다. 대지를 마음껏 질주하며 살아있는 새 피를 수혈 받고 온 것처럼 그는 싱싱하다
 그가 보이지 않는다. 전날 *나담 축제가 있었다. 그가 말 타기 대회에 캠프장 대표로 출전했다. 혼신의 힘을 쏟아서인지 쉬겠다고 연락이 왔다. 관리인과 통역이 수군거리더니 열 서넛 되 보이는 소년을 급히 데려왔다. 임시 내 마부다. 불안했다. 말도 낯설었고 어린 소년이 미덥지 않았다. 나도 쉬고 싶었다. 그러나 어린애의 일당이 염려 되었다. 말이 내 마음을 헤아렸던지 오르려하자 목을 떨궈 거부 한다. 한번 더 시도했으나 땅바닥에 패대기쳐졌다. 일행들까지도 주눅 들어 긴장한다. 생전 처음으로 해보는 승마가 두렵지 않을 리 없다. 멋모르고 타다가 떨어지는 광경을 목도하고는 모두들 몸을 사린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사기 진작을 위해 태연한 척 다른 말로 바꾸어 탔다.

몽공나담축제/ 포털사이트 다음 자료사진

하루가 천년같이 길고 무거웠다. 조금도 속력을 내지 않고 걷게 만하니 어린 마부는 빠르게 가기를 거듭 청하다 입을 나팔만큼 내밀었다. 결국 일행과의 거리가 너무 떨어졌다. 불만을 보상이라도 해주려고 그에게는 주지 않고 있던 간식거리와 몇 푼의 돈까지 주어버렸다. 철없는 어린 것은 언제 골을 내었냐는 듯 신이 나서 종알거린다.
 다음날이다. 그가 나왔다기에 나섰다. 백치처럼 멋쩍게 웃을 뿐 말이 없다. 전날의 상황을 전해 들으며 책임추궁도 받은 듯하다. 그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저하고 싶은 대로 해버리는 사내다움이 미더웠고 그래도 나를 염려하여 다시 나와 반가웠다. 초원에서 말 먹이는 일이 제 일이련만 관광객의 비위나 맞춰야 하는 생활이 안쓰러웠다.
  일정을 끝내고 돌아서려는 데 할 말이 남은 듯 머뭇거린다. 그가 제 말에 나를 태운다.  저도 오른다. 걱정 말라는 표정이다.
 "미안해"’  처음으로 그가 우리말을 한다. 고삐를 움켜쥐고 힘을 가한다. 주술 같은 소리를 질러댄다. 말이 화답한다. 제 혼자 탈 때만큼 속력을 낼 수 없겠지만 내게는 화살 같은 빠름이다. 넋이 빠져 나간다. 무섭다. 그러나 그를 믿기로 한다. 사방을 둘러보며 말의 힘을 몸으로 느낀다. 솟구치는 생명력. 말굽 소리가 함성이 된다. 나도 소리친다. 그가 호탕하게 웃는다. 웃음소리가 굉음이 되어 온 천지에 부딪친다. 들짐승들의 혼백이 춤을 춘다. 야생화가 지천인 들판을 거침없이 달리고 있다. 굵은 소나기가 쏟아진다. 바람도 빗줄기도 들꽃들도 그리고 그도 나도 다시 살아난다. 비로소 몽골의 향기에 흠뻑 젖었다. 응어리 진 삶의 옹이들이 확 풀려 나간다. 눈물이 혼건 하게 광야를 적신다.
*나담축제; 말 타기. 활쏘기. 씨름 등 민속 전통 놀이 행사가 열리는 고비사막 주변지역의 큰잔치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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