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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희 수필]⑧'물구나무를 서 보셨나요'윤석희:수필가/시인/신곡문학상수상/수필집「바람이어라」,「찌륵소」펴냄·눌산 시창작교실 수료

                   ⑧ 물구나무를 서 보셨나요

                                                   윤  석   희

다람살라. 달라이 라마가 망명해 있는 인도의 작은 마을이다. 그 분을 보기위해 접견 신청을 하니 순서가 멀다. 내 차례가 오려면 이십 여일이 걸릴 거라 한다.
   하릴없이 시장이나 뒤지고 다니자니 따분하다. 소일거리를 찾아 나선다. 명상센터다. 요가를 통해 명상에 이르는 수행법을 가르친다. 하루에 일 달러. 이십 달러 투자하기로 큰맘 먹었다. 이것에 빠져 장기 체류하는 사람도 제법 있다. 바가지 엎어 논 듯 한 배를 숨김없이 드러낸 이도 여럿이다. 뱃살과 치열한 교전중이다. 명상도 교전도 아닌 심심파적 수업에 든다.
  지도자의 표정이 온화하다. 군더더기 없는 체형에 호감이 간다. 탐욕이 깃든 곳이 없어 보인다. 맑다. 인도인 특유의 깊은 눈빛도 고결해 보인다. 우선 안심한다. 배 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허밍이 감동이다. 명상을 불러내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구령 부치는 언어가 귀에 설고 동작을 이해 하기는 더욱 어렵다. 둘러봐도 모두가 젊은이지 나 같은 노년은 없다. 그들이 무언으로 격려의 자극을 보낸다. 보조 진행자가 전속으로 따라 붙어 시범을 보이나 흉내조차도 만만치 않다.
   몸이 내 것인 줄 알았더니 전혀 아니다. 머리가 지령하는 데로 움직여지질 않는다. 육신은 정신보다 한 수 아래라고 얕잡아 본 탓인가. 몸과 마음이 따로 논다. 근육이 돌덩이처럼 굳어있다. 신경은 늘어져서 느낌을 감지해 내지 못한다. 숨도 고르지 못하고 가쁘기만 하다. 몸이 펴지지 않는다. 틀거나 조이기는 더욱 어렵다. 괜한 땀만 쏟아낸다.
   척추를 바르게 곧추 세운다. 허리를 펴고 가슴을 열어 숨을 고른다. 목과 어깨에 힘을 뺀다. 턱을 몸에 당기고 눈은 지그시 감는다. 깊은 심호흡으로 몸 안의 탁한 기운을 뿜어낸다. 팔다리를 펴고 힘을 가하며 죽죽 늘린다. 피부에 땀이 송송 맺힌다. 몸 안의 찌꺼기와 독소가 빠져 나간다. 개운하다. 굽었던 등이 빳빳이 일어서며 소심함을 밀어낸다. 움츠렸던 어깨까지 펴지니 으쓱해진다.
  근육의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동작이 이어진다. 숨이 멎을 것 같지만 참아야 한다. 근육이 찢겨도 감수해야한다. 허리가 끊기는 고통에도 일어서야 한다. 옴 몸이 통증에 시달리더니 결국 쥐가 나고 만다. 순간에 발가락이 붙고 등도 굳는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아픔을 참지 못해 수치심도 잊는다.
  호흡과 동작이 일치해야 됩니다. 눈을 감으십시오. 팽팽한 근육을 만져보십시오. 반복 되는 근육의 긴장과 이완을 느껴보십시오. 신경이 살아남을 지켜보십시오. 자극 가는 데로 의식을 집중하십시오. 그러면 자신의 참모습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 되는 순간을 체험해 보셨나요.
  지도자의 주문은 여전히 숙연하다. 아픔도 인내하며 그대로 지켜보라한다. 육신의 고통마저 내 것이니 스스로 극복하라 처방한다. 어설프지만 따를 수밖에 없다. 어느 사이 쥐가 사그라지고 근육이 풀리고 부드러워진다. 움직임도 원할 해진다. 몸이 말을 듣기 시작한다. 내가 내 몸의 주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본다. 신경이 깨어난다. 의식을 모으고 기의 움직임과 피돌기의 흐름을 느낀다.
  마지막 날이다. 요가의 꽃이라는 물구나무서기에 도전한다. 심호흡을 깊게 하며 몸이 흔들리지 않게 숨을 고른다. 몸이 거꾸로 서니 무섭다. 피돌기가 역행하자 어지럽기까지 하다. 피가 온몸을 한 바퀴 도는데 삼분이 걸린다. 최소한 그 시간은 버텨야한다. 뇌 속의 고인 피가 빠르게 움직이며 구석구석을 휘돌며 청소한다. 온몸의 열기가 감지된다. 내 안의 동맥 경화된 피가 씻기는 상쾌함이다. 죽은 듯 고여 있던 피가 살아나자 세포들이 꿈틀거린다. 근질근질하다. 몸이 시원하고 가뿐하다. 명상의 경지는 아니어도 분명 깨끗해졌다. 맑은 정신을 갖기 위해 몸부터 닦는 체험이 신기하고 오묘하다.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 정화될 때 비로소 명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내 몸의 방향키를 처음으로 조종해 보는 듯 뿌듯하다. 
   어디 물구나무를 서 본적이 있었던가. 직립만이 인간의 바른 자세라 여기지 않았나. 거꾸로 서서 주위를 본다. 벽에 걸린 달력도 시계도 이상하다. 다르게 보인다. 바닥이 회전판이 되어 돌고 사람의 얼굴은 괴기스럽다. 사물의 구분이 분명치 않고 추상화를 보는 듯 모호하다.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하여 주위를 다시 바라본다. 혼돈 속에서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마침내 확실하고 또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낯설지만 사물을 대하는 다른 길이 열린 것이다.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자 외골수로 굳어졌던 편협함이 와해되는 듯하다. 몸이 앞설 수도 정신과 함께 갈 수도 있음을 받아들인다. 먼저 육신을 풀어 피를 맑게 하고 잘 돌게 하듯 내안의 경직되고 고질화된 고정 관념도 거꾸로 세워 용해시켜야겠다. 생각 또한 물 흐르듯 유연해지리라. 정화된 몸에 깃드는 신선한 사고 기쁘지 아니한가. 이제 세상의 모든 사물과 현상을 물구나무서서 거꾸로도 볼일이다. 아니 거꾸로 서서 세상을 살아보고 싶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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