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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희 수필] ⑩'벌륜 속에서''윤석희:수필가/시인/신곡문학상수상/수필집「바람이어라」,「찌륵소」펴냄·눌산 시창작교실 수료

                            ⑩  벌륜 속에서
                                                    윤   석    희
  

 감탄 대신 픽 웃음이 나온다. 뭔가 모자란 듯 우스꽝스런 정경이다. 이유는 분명치 않으나 그래서 더욱 정겹다면 싱거운 건가.
  터키의 카파도키아를 가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거대한 기암지대. 남근 모양으로 불쑥 불쑥 솟아있는 바위군. 동굴 속의 그리스도교 벽화. 수십 미터 땅속의 정교한 지하 도시. 다른 지역과는 사뭇 다르다.  
  새벽 다섯 시. 벌륜 시발점인 평평한 언덕에 도착했다. 수십 개의 열기구가 널브러져 있다. 어마어마한 크기에 우선 놀란다. 멀리서 볼 때는 작은 풍선에 불과 했는데 곁에서 보니 엄청 나다. 일행 모두가 환호한다. 하기야 승객 열여섯씩에 조종사도 있다. 기구의 작동 에너지인 프로판 가스의 대형통도 몇 개 실어야 된다.
   바구니 속은 막이로 나뉘어져 네 명씩 나눠 탄다. 옆 칸에 연료가 있고 다음이 조종석이다. 밑 부분의 바구니와 위의 풍선이 수많은 줄로 엮여서 떠다닌다. 가스가 연소되면서 내는 열에너지로 기구가 뜨고 엄청난 굉음과 불빛을 동반한다. 
   풍선처럼 하늘을 떠다니고 싶다는 꿈. 누구나 가져 보지 않았을까. 소망하나 이룬 셈이다. 다들 한껏 부풀은 풍선이 된다. 모두 중년을 넘긴 사람들인데 영락없는 철부지 어린애다. 흥분하여 탄성을 내질러 목이 쉬고 난리다. 상공의 추위도 만만치 않아 머리까지 담요를 뒤집어쓴다. 눈만 보이는 몰골이 양아치들 같다.
  기우뚱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하자 불안감이 밀려온다. 덜컥 겁도 난다. 폭발이 염려되어 후회도 되지만 금방 안정된다. 위험하다거나 두려운 느낌이 출발 직후 사라진다. 속도감이 없어서다. 꼼꼼히 사방을 둘러보기에 무리가 없다.
   최선을 다하는 조종사의 모습에 안도한다. 파노라마 절경을 그는 찬찬이 보여 준다. 동굴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게 입구에 접근한다. 빠른 속도로 구름 속을 선회도 한다. 골짜기 따라 지상가까이 내려도 서고 서커스처럼 공중 곡예를 한다. 하이라이트인 해 뜨는 광경은 절묘한 곳에서 보여준다. 비행기로는 볼 수 없는 구석구석까지 기구는 넘나든다. 원하는 곳에 갈 수 있고 그곳에서 시간을 끌 수도 있다. 느리지만 섬세한 비행이다.
   괴상하나 규모는 웅대하다. 우주의 다른 별나라 같다. 바위에 수없이 구멍이 뚫려있다. 콧구멍 인 듯 벌어진 바위의 숨통들도 흥미롭다. 물과 공기와 햇볕을 공급받는 생명의 홀. 비둘기로 소식을 주고받은 소통의 창. 외부와 동굴세계를 구분하는 고립의 문이기도 하다. 작은 것은 비둘기 집이고 큰 것은 사람집이다. 살기위해 새는 바위를 쪼고 사람은 절벽에 동굴을 뚫었다. 고대인들이 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이방인의 종교적 박해를 피해 은둔한 주거 형태다. 중세 수도사들도 이곳에서 올곧은 신앙생활을 해왔다. 신을 향한 경배를 동굴내의 천장과 벽에 멋진 프레스코화로 남기면서. 세상과의 단절로 이뤄낸 고독한 신앙인의 숨결이 느껴진다.
   그들의 역경의 삶을 엿보고도 경건해 지기는커녕 마음이 부풀고 기분이 들떠 세상이 내 아래 있는 듯 우쭐해진다. 경이로운 대자연 앞에 서면 한없이 왜소해져 겸허한 마음자세가 되곤 하는데 벌륜 속에선 세상이 작아 보인다. 풍선타고 느끼는 가벼움이랄까. 하늘을 동경하고 무지개 너머를 궁금해 하던 동화속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다. 모처럼 가슴도 열고 호탕하게 소리도 질러본다. ‘야 세상이 다 내꺼다.’ 외국인들이 내 외침을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무턱대고 손뼉을 쳐 댄다. 하나같이 즐거운 표정이다. 힘을 모아 기쁨에 찬 함성을 대지위에 쏟아 붓는다. 메아리가 화답한다. 풍선의 바람이 빠지기 전에 우주 공간 속을 나는 환상 에 빠져보라고. 땅위에선 상상도 못해본 치기에 찬 감정체험이 싫지 않다. 허세도 가끔은 일상에 찌든 마음을 닦아내는데 한 몫을 하는가 보다.
 ‘신도 더러는 불완전한 인간이 부러운가 보지. 완벽한 창조에 진저리가 났을까. 무료하고 심심해서 부러 틀어놓았나.’중얼거려본다. 눈앞에 펼쳐진 기묘한 광경조차 조물주의 장난기로 여겨지니 말이다.
  하늘을 거침없이 떠다닌 탓이다. 미흡한 작품도 더러 점재하시는 신이 오늘은 한결 정겹게 다가온다. 손이라도 마주잡을 것만 같다. 한 시간의 열기구 비행에 방자해진 나는 감히 창조주를 폄하하는 언사도 서슴지 않았다. 조물주께서는 이 객기를 미물 같은 인간의 재롱쯤으로 여기지 않을까 주제넘은 생각까지 해본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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