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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인자 수필]⑧'적과의 동침'심인자:수필가/수필과비평 작가회 전 거제지부장/수필과비평작가상수상

                ⑧적과의 동침
 
                                              심 인 자    

완벽하다. 집안 구석구석 둘러보아도 한 점 흐트러짐이 없다. 거실에 깔린 양탄자도 새것처럼 깨끗해 보이고 적절한 곳에 알맞게 놓인 가구도 품위가 있다. 네 귀를 맞춘 것처럼 반듯하게 걸린 타월이 욕실 거울에 비친다. 집 주인의 섬세함이 드러나 보인다. 
  싱크대 앞에 여인이 서 있다. 저녁을 준비하는 모양이다. 찬장 문을 연다. 그 안도 정리가 잘 되어 있고 먼지하나 없이 깨끗하다. 여간 깔끔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걱정거리가 있는지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엔 왠지 수심이 가득 서려있다.
  ‘적과의 동침’이라는 영화 속 이야기다. 무료해서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는데 마침 이 영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오래 전에 한번 본 적이 있다. 제목은 기억이 나는데 줄거리는 사실 뚜렷하지가 않다. 다만 남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탈출하던 것에 생각이 머문다.
  영화 속의 여인은 아름답다. 남편 또한 이지적인 인상과 깔끔함으로 나의 시선을 끈다. 부자인데다 잘 생기고 지적 소유자인 남자는 완벽함 그 자체다. 그런데 점점 그 속에 빠지면서 섬뜩함이 피부에 와 닿는다. 완벽함 속에 감춰진 또 하나의 실체, 그는 결벽증 환자였던 것이다. 남편의 의처증은 가냘픈 아내를 공포의 늪으로 몰아넣어 꼼짝달싹 못하게 한다. 다른 남자와 눈만 마주쳐도 남편이라는 작자의 매서운 눈은 이글거린다. 여자는 사정없이 차이고 짓밟히며 내리치는 매를 그대로 감당할 수밖에 도리가 없다. 얼굴과 몸에 멍든 자국이 미처 가시지 않았는데도 그 앞에서 웃어야하는 여인의 비애를 보며 가슴에서 불현듯 화가 솟는다. 분개하여 욕지거리가 치민다.
  집안 어디나 흐트러짐이 없던 것도 비로소 이해가 된다. 그래서 찬장 속의 통조림도, 욕실 수건도 귀하나 틀어지지 않고 야무지게 정리가 되어있었던 거구나. 이상하게 사람냄새가 풍기지 않는다 생각되더니.
  여인은 다행히 탈출에 성공한다. 새로운 곳에서 펼친 삶은 차츰 안정되고 이웃도 만난다. 겨우 정리가 되어 한숨 놓는 사이에 남편의 끈질긴 추적이 시작된다. 이웃으로 만난 사람과의 사랑이 익어갈 무렵 마수의 손길은 그녀의 집까지 뻗는다. 남편의 결벽증에 덴 여인은 수건도 흩트려 놓고, 선반의 통조림도 마구 뒤섞어놓는다. 그걸 보며 행복해하는 여인에게서 자유를 느낀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집안의 이상한 분위기에 긴장한다. 헝클어 놓았던 욕조의 수건과 선반의 통조림이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이다. 게다가 무심히 누른 오디오에서는 잠자리에 들 때면 그가 틀던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이 흘러나온다. 여인은 경악한다. 극도로 절망에 빠진다. 더 이상 나아 갈 수 없는 상황 앞에서 그와 맞닥뜨린다. 그녀는 집착과 애증만 남은 남편의 가슴에 방아쇠를 당기면서 눈에 보이지 않은 쇠사슬을 끊는 것으로 긴 영화는 막을 내린다. 비로소 자유를 얻은 것이다.
  당연한 결말이다. 그런데 영 개운하지가 않다. 한참이나 텔레비전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내가 보인다. 쓰러진 남자의 몸에서 내가 일어서고 있다. 그토록 미워하고 적의에 찬 눈으로 바라보던 영화 속 남자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 여태 그걸 깨닫지 못하고 살아왔기에 한 사람이 겪었을, 아니 나를 둘러싼 여러 사람들의 속을 생각지 못했다. 
  지나간 시간들이 떠오른다. 내가 살아가는 공간은 온전히 내 것이어야 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화가 치밀어서 죽을 것만 같았다. 외출에서 돌아오면 온 식구가 다 씻어야했다. 밖의 먼지를 집 안까지 달고 들어오는 일은 생각할수록 불쾌했다. 아무리 피곤해도 그냥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일을 미루는 것이 더 괴로워서 늦은 시간일지라도 청소기를 돌리고 내려앉은 먼지를 닦느라 구석구석 걸레질을 했다. 머리카락이 널브러져 있는 것이 제일 싫었다. 마치 벌레를 만지는 기분이었다. 식구들 따라다니면서 어질러진 것을 치우다보면 머리끝까지 화가 올랐다. 그럴 땐 분풀이로 애꿎은 걸레만 쳐댔다. 힘든 일 중 하나가 이불 털기였다. 힘에 부치는 일인데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청소가 끝난 것 같지 않았다. 손목이 시어서 이불을 놓치는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그만 둘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루 중 절반을 쓸고 닦고 빨래하면서 보냈다. 카펫과 마루바닥의 장판지에 그려진 선이 맞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했다. 아이들 장난감을 닦고 나면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정리된 집안을 좍 둘러보고 비로소 잘 했다며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이런 나를 보고 남편은 결벽증이라며 넌더리를 떨었다. 그것도 한참 진행된 중증이라고 했다. 그런 남편이 오히려 이해되지 않아 허튼 소리 말라며 바락바락 대들었다. 질리도록 다퉜지만 결국 내 방식대로 해나갔다.
  결혼한 지 열일곱 해다. 일년 전쯤 해서 나에게 변화가 생겼다. 십수 년 째 이어오던 의식이 바뀌었다. 매사 털고 닦던 예전의 내가 아니다. 이불을 털지 않고 잠자리에 들어도 쉬이 잠이 든다. 점심 때 먹었던 그릇을 저녁준비하면서 설거지한다. 서랍 안도 형편없다. 납부고지서와 수첩, 비상약상자와 바늘쌈지가 어지럽게 뒤섞여있다. 현관바닥에 때가 묻어있어도 지나친다. 깔끔하던 큰아이의 책상이 어느 사이 너저분해 있고 작은 아이도 책가방을 아무데나 던져놓는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등산복을 입은 채 안방으로, 거실로 돌아다니며 흙먼지를 떨어뜨리어도 미안한 기색이 없다. 예전 같으면 정말 어림도 없을 일이다.
  집안이 다소 정리되지 않는 순간부터 모두들 편해한다는 것을 알았다. 남편과 다툼도 없어졌고 아이들도 내 눈치를 보지 않았다. 힘들면 하루쯤 이불을 털지 않는다. 몇 가닥 떨어진 머리카락에 기겁을 하며 청소기를 들지 않는다. 그 동안 합당하지 못한 나의 잣대에 얼마나 불편했을 것인가.
  “진작 이렇게 살 걸, 몸도 마음도 너무 편해요. 체중도 엄청 늘었잖아요.”
  “남들은 일년 만에 깨쳤을 일을 십육 년이나 걸렸다는 걸 알기나 해?”
  이제야 나의 잘못을 인정한다. 남편의 적은 바로 나였다. 무언의 폭력을 견뎌준 남편이 고맙다. 그 동안 스스로 깨닫길 바라며 얼마나 기다렸을까. 다들 내가 만든 틀 속에 갇혀 숨 가쁘게 지냈을 순간들을 생각하니 숨고 싶은 마음뿐이다. 남편 또한 매일은 아니더라도 가끔 영화 속의 여인처럼 탈출을 시도하며 살아오지 않았을까. 큰일 날 뻔했다. 다행이다. 영화와 다르다면 우리부부는 해피엔딩이라는 것이다. 긴 시간을 적과 동침하며 참아준 무던한 남편이 있었기에 말이다.
  화면에는 자막대신 저녁에 올릴 식탁의 재료가 하나씩 줄을 이어 지나가고 있다. 
 
     .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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