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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인자 수필]⑨'지진증후군'심인자:수필가/수필과비평 작가회 전 거제지부장/수필과비평작가상수상

               ⑨'지진증후군'
                                                심  인  자

방바닥이 움직인다. 배를 탄 것처럼 일렁거려 어지럽기까지 하다. 앉아 있어도 서 있어도 중심을 잡을 수가 없다. 바라보는 모든 물체들이 움직이는 것 같아 재삼 뚫어지게 쳐다보고 살펴본다.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증상이다. 또 다른 증상은 종일 텔레비전을 켜놓는 것이다. 오락프로나 연속극 위주였던 내가 24시 뉴스만 방영하는 채널을 고집하고 있다. 일하는 중에도 볼륨을 올려 사건 사고소식을 귀로 들어야 안심이다.
  요즘, 심한 공포와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오늘도 잠시 낮잠을 자는데 흔들림이 왔다. 심장이 쿵쿵거린다. 불안하다. 황급히 아파트 계단을 내려오는데 외출했다가 들어오는 이웃과 마주쳤다.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던지 무슨 일 있냐고 물어온다. 지진이 일어난 것 같아 뛰쳐나왔다고 했더니, 너무 불안해하지 마라며 어깨를 토닥거린다. 머쓱해진 나를 둔 채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유유히 사라진다. 나만 이러는 걸까.
  지난 일요일 오전이었다. 작은아이 병간호하느라 지친 나머지 만사를 제쳐놓고 잠에 빠져들었다. 깊은 잠에 취했는데 큰아이가 나를 마구 흔들어댔다. 덜 깬 눈으로 아이의 표정을 보는 순간 뭔가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가 나를 흔든 게 아니라 건물이 흔들리고 있었다. 커튼이 바람에 날리듯 흔들리고, 컴퓨터 모니터가 앞으로 넘어질 듯 요동을 쳤다. 그러고 보니 사방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제자리를 못 잡고 들썩거렸다.
  지진이 난 것이다. 머릿속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파일이 전부 지워진 컴퓨터처럼 백지상태가 되었다. 짧은 순간 눈앞에서 흔들리는 책장에서 멀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스쳤다. 넓은 거실에서 본격적으로 흔들어대는 지진의 공포를 감당했다. 매미 태풍 때 느꼈던 무서움과는 또 달랐다. 그 땐 기물의 파손을 우려했고 지금은 건물붕괴라는 생각이 공포 속으로 날 몰아넣었다. 
  식탁 밑으로 머리를 디밀었다. 짧은 상식으로 여진이 또 올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저번 아시아에서 일어난 지진해일로 쑥대밭이 되어버린 장면을 보고서 지진에 관심을 가졌다. 머릿속에 숙지해둔 지진에 대한 상식이 뒤늦게 작용했다. 현관문을 미리 열어두어야 건물이 뒤틀리더라도 밖으로 나갈 수 있다. 화장실은 좁고 받쳐주는 벽이 있어 건물이 붕괴되어도 작은 공간이 생긴다. 정전을 대비해서 엘리베이터를 타서는 안 된다. 식탁이나 책상 밑에 들어가면 그나마 부상을 덜 당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의 흔들림은 없었다. 식탁 밑에서 나가야 하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작은아이에게 가야한다. 혼자 얼마나 놀랐을까.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중이다. 덜렁대는 성격에 깁스한 다리로 피하느라 무리하지 않았을까. 넘어지기라도 했다면 큰일인데. 아이에게 핸드폰을 사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이 후, 강박관념은 나를 점점 졸아들게 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다짜고짜 집 밖을 뛰쳐나간다. 수면 상태에서도 예민해진 나의 감각이 미세한 땅의 흔들림을 감지한 것이다. 이런 나를 보고 이웃은 저러다 ‘지진병’ 나겠다한다. 그 말도 맞다. 아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유독 나만 지레 겁먹어서 난리를 피우는가 싶다. 평소 겁이 많고 소견머리가 좁아 느끼는 증상이려니 하며 나를 책망한다. 그런데 지진현상이 크게 작게 계속 이어지면서 점차적으로 여러 사람들도 나와 같은 증상을 앓기 시작한 것이다. 심리적 불안감에 부정적인 상황만 연상하나 싶기도 한데, 방심하고만 있을 일은 아니지 싶다.
  지구 곳곳에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 지진으로 마을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고 화산이 폭발하는 재앙을 뉴스로 종종 접한다. 태풍이나 홍수에 많은 사람들이 손쓸 틈 없이 생사를 달리하지 않던가. 여태 먼 나라, 남의 일로만 생각했다. 무심했다. 설마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나는 절대 아니겠지. 자만했다. 이젠 그 사고에서 깨려고 한다. 조급하기보다 무심한 것도 살아가는 한 방편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매사에 너무 안일하게 행동해서 더 큰 사고를 초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뉴스로만 봐왔던 지진의 무서움을 직접 경험했으니 단단히 혼쭐난 셈이다. 천재지변을 다 막을 수 없지만 사전에 대비하고, 사소한 것도 알아둔다면 재앙을 피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요즘 책을 보고 있다. 손때가 타서 헐고 찢어진 ‘살아남기’라는 학습용 만화책으로 생존에 꼭 필요한 지침서이다. 아이들은 이 책에 열광한다. 서로 보려고 난리가 아니다. 학습을 먼저 끝낸 순서대로 책을 보게 하니 다들 열심히 수업에 임할 정도다. 재난에서 살아남기, 바이러스에서 살아남기, 지진에서 살아남기, 바다에서 살아남기 등 눈에 쏙쏙 들어오게 잘 꾸며진 시리즈 간행물로 여간 인기가 많은 게 아니다. 부교재로 사용하고 있으니 한 번만 본 것이 아니다. 그런데 내용이 그다지 기억에 없다. 안전 불감증에 걸려 심각성을 절실하게 못 느껴서이다. 아이들에게 참 유용한 책이다 했는데 이젠 그 책이 내게 꼭 필요하다.
  평소 난 눈썰미가 없는 편이다. 건물 한쪽에 놔 둔 헌옷을 수거하는 통이 어느 날 교체되었는데도 모르고 지나칠 만큼 둔하다. 모양도 다르고 색깔도 다른데 어떻게 그것을 몰랐을까. 조금은 예민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나 자신은 물론 주위의 모든 것에도 관심을 가져야 함을 깨닫는다. 사소한 것에도 눈길을 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예민함 속에 예리함도 끼워서 정신을 깨워야겠다.
  그날 저녁, 어깨를 토닥거리던 이웃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뉴스에 지진이 났더라고.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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