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왼쪽
오른쪽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칼럼
[심인자 수필]⑩'진정한 행복'심인자:수필가/수필과비평 작가회 전 거제지부장/수필과비평작가상수상

                   ⑩ '진정한 행복
                                            심 인 자

초인종을 누른다. 그러나 사람은 나오지 않고 낯익은 목소리만 현관 밖으로 뛰어나온다. 열려있으니 그냥 들어오라는 소리가 재차 들린다. 잠시 후, 손에 뭔가를 감싸쥐며 안방에서 나오더니 날 반긴다. 매사에 낙천적이고 느긋한 사람이라 허허 웃는 얼굴이 언제 봐도 그대로다. 나 같으면 힘들다 하소연하느라 정신없을 터인데 참 성격 좋다.
  그녀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그것도 중풍과 치매로 꼼짝 못하는 시어머니를 팔 년 째 섬긴다. 워낙 성격이 밝고 구김이 없는 사람이라 어려운 이야기도 대수롭지 않게 하여 전부터 소식을 듣고 있었지만 사실 속사정까진 몰랐다.
  방 두 개에 부엌과 거실이 전부다. 어른을 모시고 살기엔 넓이도 그렇고 여러모로 불편해 보인다. 시어머니가 안방에 계시니 그녀의 방은 어딜까. 아이들 책상과 옷장이 있으니 당연 아이들 방일 테고. 나의 생각을 읽었는지 거실 한 쪽에 쳐진 커튼을 가리킨다.
  보통 일이 아닌 것을 설렁설렁 참 쉽게도 한다. 찡그림 없이 어린 제 자식 기저귀 갈 듯 쓱싹 해내고, 부드럽게 만든 간식을 삼키기 좋도록 양도 잘 맞춘다. 텔레비전 채널도 이리저리 바꿔주고, 욕창이 들까 이쪽저쪽 돌려가며 몸을 주물러준다. 아까 안방에서 들고 나오던 뭉치가 무엇인지 이젠 알 것 같다. 노인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으니 평소에 얼마나 지극 정성 씻기고 닦아주는지 알 것 같다.
  노인의 얼굴은 구김살이 전혀 없다. 구박 데기였다면 인상부터 달랐을 것이다. 어딘가 모르게 찌들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날 바라봤을지도 모른다. 정신을 놓고서도 며느리 없으면 안 된다며 머리를 좌우로 흔든다.
  어지간한 마음으론 해낼 수 없을 터이다. 병 없이 지낸다면 얼마나 편할 일인가.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나에게, 편하게 생각하기에 늘어난 게 체중이라며 뱃살 잡는 시늉을 한다. 바라보는 사람이 오히려 힘들겠다는 생각을 할 뿐이지, 그런 마음을 애당초 안 가진 사람이다.
  한두 달도 아니고 수년을 병 수발 드느라 어지간히 힘들었을 것이다. 흔히 하는 계모임도 못 나갔을 것이고, 부부 동반외출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잠시 잠깐 시장 봐오는 것도 신경이 쓰여 허둥지둥 돌아오기 바쁘다보니 다른 걸 생각이나 했을까.
  그녀는 모든 걸 받아들이고 있었다. 살아가면서 지치지 않는 원동력은 있는 그대로를 다 받아들이는 삶을 살기 때문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재어보고 따졌더라면 아마도 몇 달 못 갔을 것이고, 가족 간의 우애도 깨져 버렸을 것이다. 당신 한 사람이 짐을 짊어졌으니 다른 사람이 다 편하다는 것이다.
  그녀의 말을 듣다보니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내게도 시어른이 계신다. 팔순을 넘긴 고령이지만 여태껏 농사일을 하며 두 분이 사셨다. 그런데 어머님이 덜컹 자리에 누우신 것이다. 
남편이 휴가를 내어 병원에 모셨다. 형제들이 왔다가면서 병원비에 대해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십시일반 보태면 된다고 했다. 여태 나의 의식 속에 부모부양은 맏이의 당연한 소임이라 생각했다.
  어머님은 맏이에 대한 애정과 기대를 한시도 놓지 않으셨다. 그래서 늘 막내며느리인 나에게 형님을 부모 대하듯 하라 하셨다. 당신도 사랑하시지만 맏이에 대한 각별함을 남편이 모를 리 없다.
  퇴원하는 날, 남편이 병원비를 전부 계산했다는 시누이의 말을 들었다. 아울러 고맙다고 내 손을 잡는다. 아마도 둘이 의논해서 결정한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내색은 안 했지만  화가 났다. 월급보다 많은 액수를 혼자 감당한 것도 화가 났지만, 의논도 안한 것에 더 마음이 상했다. 앞으로 돈이 얼마나 더 들지 모르는데 그것까지도 계산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한번 마음이 틀어지니 사사건건 남편이 밉다. 먼 거리에 있는 우리가, 더욱이 맏이도 아닌데 왜 어머님의 치다꺼리를 도맡아하는 건지도 속상했다. 형님도 있는데 왜 앞서서 그러냐고 속으로 대들었지만 남편의 물기어린 눈을 보며 삭혀야 했다. 
  퇴원하면서 어머님을 집으로 모셔왔다. 살다보니 어느새 친정어머니 마냥 정이 들었고, 또 자식 된 당연한 도리라 생각했다. 남편이 서운했지 어머님이 미운 건 아니었기에 편한 마음으로 지내시라 했다. 약도 해드리고, 밖에 나가서 외식도 시켜드리고 내친 김에 옷도 한 벌 해드려야지 했다.
  그러나 생각과 달랐다. 시집살이를 해서가 아니다. 일이 갑자기 많아진 것도 아니고 어머님이 딱히 부탁하신 것도 없다. 그런데도 편하지가 않는 것이다. 괜히 음식 간 맞추는 것도 신경이 쓰여 어머님을 부르게 되고, 제 때에 밥상 들여가면서도 소홀하지 않았나 마음이 쓰였다. 외출할 일이 있어도 미뤄야 하고, 이웃과 함께 차 마시는 일도 중단되었다. 아침나절 잠시 눈 붙이던 습관이 배여 억지로 참느라 혼났다.
  어머님이 내가 하는 일에 참견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 마라 하신 적도 없다. 그럼에도 오시기 전에 하던 일을 단번에 끊어버렸다. 일테면 외출을 한다든가, 이웃과 차 마시는 일  말이다. 뭐든 마음 상하지 않게 잘 해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도리어 무거운 짐을 나 스스로 지게 된 것이다.
  난 어머님의 수발을 겨우 며칠 들었다.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도 아니고, 끼니때마다 떠 먹여 주는 일도 하지 않았다. 그냥 몇 가지 찬을 더 올려서 상을 보았고, 간식거리도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사다드렸다. 그게 내가 어머님께 해드린 전부다.
  부끄러웠다. 마치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 내 모습을 보여준 듯한 수치심이 온 몸을 휘감았다. 몇 푼의 병원비를 혼자 감당한 것이 못내 속상했던 속 좁음이 야속했고, 더구나 맏이에게 모든 걸 지우려한 얄팍한 내 양심이 미워졌다.  
  그녀는 하나부터 열까지를 다 감당하면서도 평화롭기만 하다. 늘 웃음이 배여 있다. 팔 년의 삶을 허비해서 억울해하는 게 아니라, 며느리인 당신만 찾는다는 시어머니로 인한 행복감에 빠져 산다. 그녀는 행복하다. 시어머니의 삶까지 더불어서 이니 두 배나 더 행복한 것이다. 
  오늘 차 한 잔을 대접하기 위해 그녀가 날 부른 것은 결코 아니었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정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