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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광미 수필]⑪ '말목'우광미/수필가/궤적을 찾다 저자/ 한국 문인협회 회원

                               ⑪  말목
 
                                                      우      광      미

 “빨리 와야겠어요. 어이구 이런...”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다급하다. 다녀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차를 몰고 가며 내내 그녀의 생각에 빠진다. 무엇이 그녀를 그리 흥분시켰는지. 평소엔 말수도 적고 숨소리조차 낮은 사람이다. 전원생활을 꿈꾸며 마련한 시골집에 그녀는 세 들어 산다. 혼자서 십여 년째이다. 우리의 인연은 특이했다. 그녀는 내가 주인이 되기 전엔 그 집의 주인이었다.
  집은 처음 보았을 때 손질이 잘된 정원이 있었다. 대나무 지지대에 몸을 의지한  청포도 줄기에는 열매가 주렁주렁하였다. 쇠죽 쑤는 바깥 아궁이며 개조된 현대식 부엌, 바다가 훤히 보이는 텃밭을 보니 평소 전원으로 옮겨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해온 터라 사야겠다는 욕심이 일었다.
  사람이든 집이든 가꾸기 나름이다. 저절로 윤택해지는 건 아니다. 나처럼 가끔 들러 잠시 머무르다 가는 사람에겐 너그럽지 못했다.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집은 무성했던 정원수조차도 빈 집의 공허를 견디지 못하고 윤기를 잃어갔다.
  그때 그녀가 다시 찾아왔다. 이 집에서 자신의 등을 눕히고 싶다고 했다. 처음 보았을 때와는 다르게 초점을 잃은 듯한 눈과 창백한 얼굴은 건강이 좋지 않음을 짐작케 했다. 전처럼 정원도 가꾸고 싶어 했다. 비워두는 것보단 낫다는 생각에 그녀를 들였다.
  그녀는 해녀다. 바다는 그녀의 작업장이다. 바다 속으로 들어가면 땅에서 느낄 수 없는 고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 고요가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크게 관심을 두거나 왕래를 자주 하지도 않았다. 그 곳을 지나칠 일이 생기면 잠시 들렀고, 그때마다 대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철대문의 틈 사이로 보이는 빨랫줄에선 그녀의 잠수복이 지친 몸을 누이고 있었다. 여기저기 본드로 덧대어져 세월을 말해주는 듯했다. 잠수복은 깊은 바다 속에서 수압에 시달리며 산 그녀의 삶을 말하고 있다. 온 몸을 조여 왔을 수압이 내게 왈칵 달려들었다. 안으로만 삼키던 고통은 수면 위로 올라 숨비소리를 내며 그녀를 잠시 놓아 주었을 것이다. 견디지 못한 잠수복의 소리 없는 아픔이 바다의 독백을 들려주는 것 같다. 그녀는 한 차례 쓰러진 후 온전한 몸이 아니지만 물질은 계속하였다. 말수가 적은 그녀가 정원에 아들이 심어 주었다는 나무를 자랑할 땐 생기가 돌고 딴 사람처럼 느껴졌다.
  얼마 전 새집을 짓기 위해 측량을 하니 와달라는 연락을 옆집으로부터 받았다. 측량을 할 때는 집 주인과 이웃 사람이 함께 말목의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 말목은 땅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박는 말뚝이다. 남과 나의 영역을 구분 짓는 기준이 된다. 간혹 측량 후 서로의 영역에 축소나 확장의 변화가 생길 수도 있기에 민감한 부분이다. 바쁘다는 이유로 측량한 결과대로 처리하라고 한 일이 거의 도착할 무렵 떠오른다.
  현장에는 부서진 집의 잔해들이 잔뜩 쌓여 있다. 한때는 시린 바깥 바람을 막아주던 안식처였다. 시멘트 조각과 스티로폼, 각목에 박힌 못들. 그 위를 가로질러 확인한 경계선은 우리 집 처마 밑으로 일 미터나 들어와 있었다.(재측량을 나온 기사는 틀림없다며 도면과 측량기의 화면을 보여 주지만 받아들일 수 없다. 밀려오는 의구심을 주체할 수 없다. 옆집이 내 집으로 침범해 온 것이 확실하다. 이웃의 말로는 내가 도착하기 전 그녀는 담을 쌓기 위해 이전에 측량을 한 적이 있다며 새 말목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급기야 전에 박아놓은 기존 말목을 찾아냈지만 거의 다 썩어 문드러지고 밑 부분만 조금 남아 있어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고 한다. 나역시 기존 말목을 확인시키며 측량의 잘못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지난 측량이 잘못된 것이라며 알 수 없는 용어를 들이민다. 이런 때에 그들의 주장에 설복되어 쉽게 땅을 내어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내 것이라 굳게 믿었던 것은 쉽게 포기하기 어렵다.
  그녀의 항변은 목숨을 건 것처럼 했다. 말목 뿌리로 웅변하는 과거의 진실이 있어 나 또한 쉽게 수긍하지 못한다. 내 의식 속에는 기존의 말목이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의 진실에 저항할 힘이 내게는 없다.
  경계는 사선으로 새로 그어졌다. 마당가에 있던 나무 둥치가 삼분의 일쯤 물린다. 옆집에선 말목을 기준으로 자기네 집으로 넘어간 나무를 잘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 과정에서 둥치를 자르기 힘들어 뿌리째 뽑아낸 모양이다. 바다에서 돌아온 그녀가 이를 보고 격하게 달려들자 그들이 감당하지 못하여 내게 전화한 것이었다. 도착하니 실신 상태로 방안에 누워 있다. 서성이고 있자니 이웃에 사는 해녀가 와서 한마디 내뱉는다.
  “병이 도짓네. 그란다고 아들이 오것나.”
  그녀의 아들에 대해 처음 듣는다. 집을 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은 사업 실패로 절망에 빠져 바다로 갔다.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 그녀는 매일 바다를 찾았다. 그리고 그 믿음에 확신이라도 더하듯이 이 집에 다시 들어와 살고 있었다 한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일까. 바다로 간 아들은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 믿고 있는 그녀에게 있어서 마당가의 나무는 바로 그걸 심은 아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나무를 뽑은 것이 아닌가.
  자신이 믿고 있는 진실은 남의 어떠한 논리에도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나무가 살아 있는 한 아들이 돌아올지 모른다는 희망을 가졌던 그녀. 사람에겐 소중한 것을 잃게 되면 이성으로 제어할 수 있는 감정 이외에 자신을 지키고 싶은 무언가가 있나 보다. 그것은 절망과 상생하는 것이고, 존재를 넘어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탱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곳의 진실은 침묵하며 존재하는 말목처럼 땅속에 박혀 있는지도 모른다.
  이웃에게 뿌리째 뽑힌 나무를 다시 마당가에 심어 달라 부탁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자꾸만 머릿속에서는 어느 말목이 진실 될까 하는 질문만이 자맥질하며 따라온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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