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을 여는 시 (110)

   가을 들녘

석홍권

허우적거리며 가을이
긴 터널을 지나 간이역에서
가을 들녘 끝자락에서
숨을 고르며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

인연의 갈증에 치여
사랑의 아픔에 치여
저물어 가는 하루는
뉘엿뉘엿 지쳐가고
풀어헤친 시간 다발을
주섬주섬 챙기며
돌아서는 등 뒤를 햇살만이 다독인다

지친 누군가의 가슴에 박힌
축축한 심연의 덩어리는
황금의 물결이 되어
그 만큼만 그리워하고
그 만큼만 서러워하고
그 만큼만 사랑하고
바람에 일렁이다
별빛이 쏟아져 내려
어김없이 묵묵한 아침을 연다

구름 사이로 햇살이 돋고
가을 들녘으로 황금빛 물결이 인다
내일이 없는 오늘을 살 듯ᆢ

감상)

윤일광교수

이 詩에서 가장 먼저 이해되어야하는 시어는 ‘가을’이다. 가을이란 시어가 갖는 의미의 형상화를 풀어내야 한다. 본래 詩란 시인이 감추어 놓는(input) 것을 독자가 찾아내는(output)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본래 시인이 의도한 의미와는 다른 새로움의 詩가 탄생하게 된다. 가을은 시인이 살아온 궤적이다. 삶의 행로다. 가장 평범한 가을의 모습을, 가을만이 가질 수 있는 언어로 묘사하고 있지만 기실은 가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석홍권 시인의 詩에서는 언제나 그리움 같은 것이 묻어난다. 그리움은 시인의 가져야하는 영원한 화두와도 같은 것이다.   (눌산 윤일광 문예창작교실제공)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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