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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서정윤] 기억해주렴서정윤 / 경남 거제 출생.거제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수료.계룡수필문학회 회원.2015.7월 수필과비평 등단.눌산 시 창작교실 수료

                                                   기억해주렴

                                                                                                           서 정 윤


 

온전히 혼자다. 밤의 고요가 어둠을 몰고 와 적막함만 감돈다. 몸의 세포는 익숙하지 않은 공기에 곧추선다. 양손으로 일어선 비늘들을 쓸어내린다. 혼자서 밤을 새워 본적이 있었던가. 기억저편으로 더듬어 보지만 가물가물한다. 한동안 어둠속에 나를 맡겨둔다.

버릇처럼 가만히 손 내밀어 허공을 붙잡아본다. 아무것도 손끝에 잡히지 않는다. 평소엔 언제나 손만 내밀면 털북숭이 하나가 만져졌다. 아니, 내 품안으로 스르르 들어와 주었다. 오늘밤처럼 남편의 빈자리도 그 녀석이 채워주었는데. 텅 빈 그리움만 온몸으로 젖어든다.

늘 그랬다. 일상에서 그 아이가 항상 함께였다. 손만 뻗으면 달려와 주었고 눈길 닿는 곳마다 그림자처럼 앉아서 서로의 교감을 나누었다. 그래서 이별을 생각지도 못했다. 이렇게 준비 안 된 부당한 이별이 믿기지가 않아서 순간순간 마음이 녀석을 찾는다.

겨우 십오 년의 생애밖에 함께하지 못했다. 녀석과 함께한 그 짧은 시간들이 아마도 내 인생의 성장기였던 것 같다. 내손길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아이들이 성장했을 무렵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자원봉사를 해보고 싶었다. 사랑을 어떻게 베푸는지 몰라서 상대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순간에 타이밍을 놓치고 주춤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슴은 늘 뜨거워서 주위를 보듬고 살라고 속삭이는데 학습되지 않은 몸뚱이는 항상 그것들을 외면했다.

누군가를 보살피고 도움을 준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서툴고 세련되지 못한 배려가 힘든 이들에게 상처가 될까봐 쉽게 다가서지 못했다. 거창한 봉사가 아니고 늘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손 내미는 삶을 꿈꿨다. 현실을 직시하고 수긍하며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베푸는 방법을 더 배워야 했다.

그즈음 녀석이 내게 왔다. 작은딸아이가 선물로 받은 거라며 가슴에 품고 왔다. 사람도 아닌 털북숭이와 함께 기거한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 본능이 예민한 편이라 체질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었다. 한 생명을 거둔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까만 콩 세 개를 올려놓은 듯 한 앙증맞은 얼굴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다. 짧은 네다리는 쉴 새 없이 제집마냥 온 집안을 누비고 다녔다.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는 무한신뢰와 순수를 담고 있었다. 엄마를 알아보는 시기에 아가의 눈동자처럼. 본능이 스스로 무너졌다. 그때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녀석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자질구레한 뒷감당은 내차지라는 걸. 어차피 받아들일 거라면 자식으로 받아들이자며 앞으로의 고단함을 예견했었다.

나의 예견이 틀렸다는 걸 알았을 때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 아이가 살아내는 세상이 퍽퍽한 내 삶에 작은 기쁨으로 다가왔다. 사랑을 받고 곱절을 되돌려주는 몸짓은 언제나 부신 아침을 열어주었고 꽉 찬 저녁을 닫아주면서 하루를 온전히 채워주었다. 먼저 다가와 온 몸으로 반겨주고 기다려주는 삶의 여유도 배웠다. 같이 한다는 게 힘들 줄 알았는데 완벽하게 가족으로 스며들었다. 나의 지나온 삶의 경험과 이 아이가 시작하는 생의 순수한 열정이 배합되어 삶에 충만함을 안겨줬다.

공적인 스케줄로 남편은 출장을 갔다. 일이 잘 풀리면 내일쯤 돌아올 것이다. 종종 겪는 일이다. 세월은 흘러가는 게 아니라 채워가는 것이라고 한다. 가끔은 그의 빈자리를 홀가분함으로 채울 때도 있었는데... 그가 없는 밤이 오늘은 생소하다. 산중에 위치한 집의 공기가 무섭다. 오늘밤도 그의 부재가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잠들은 숨소리가 그립다.

그 녀석을 보내는 날도 그랬다. 남편은 잠들었고 녀석은 두 딸들의 빈방 앞에다 이별의 인사를 남겨놓았다. 그리고 내게로 와서 내 품에서 잠자듯이 평화롭게 끝 숨을 거두었다. 내가 불러주는 자장가를 들으며. 따뜻한 체온과 부드러운 숨소리를 고스라니 내안에 남기고. 나는 아직 준비 안 된 이별이 믿기지 않아 잘 가라는 인사도 못해줬다. 그저 그렇게 멍하니 보냈다.

잘 견딜 줄 알았다. 하지만 너무 많은 자리를 녀석이 차지했나 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녀석의 빈자리를 견딜 수가 없다. 삶은 얄궂게도 이렇게 견디기 힘든 아픈 이별을 준다. 오늘 같은 밤 내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되어주었는데. 왜 그걸 그 아이가 가고 없는 지금에야 깨닫는지. 매일매일 나의 생활을 간섭하던 녀석의 참견이 못 견디게 그립다.

늘 내가 베푸는 줄 알았다. 그 아이에게 나 뿐이라고 내게 잘하라고 장난처럼 귀에 대고 속삭이곤 했다. 생각해보니 어느 순간부터 내가 그 아이에게 의존하고 기대었나보다. 곁에서 지켜주는 이가 내가아니라 그 아이였다. 주고받는 관계의 공평함을 그 아이가 가고 난 후 깨닫는다.
무지한 나에게 와서 삶은 어렵지 않은 거라고. 사랑은 머리가 아니고 가슴으로 하는 거라고.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인생은 즐거운 거라고. 작은 몸짓으로 가르쳐준 그 아이의 따뜻했던 체온이 아직도 남아있다. 네가 없는 이 밤이 너무 낯설다. 살면서 복잡한 세상과 마주할 때면 널 기억할게. 너의 짧은 생애 속에 내가 있었다는 걸. 나와 함께 채워온 눈물겹게 아름다웠던 그날들을 기억해주렴. 국화야!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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