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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만 산문⑪] '그들이 있어'''재부거제향인(일운면출신)/해운대구중동행정복지센터근무/시인/수필가./소설가

                            ⑪그들이 있어 

                                         
 김     경     만

가을이 겨우 발목까지 왔건만 그 매력은 이아침 머릿속까지 밀고 올라왔다. 어쩔 수 없는 마음이 되어 집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자연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호수를 바라보며 상념에 젖어 있다. 서류 봉투를 옆에 놓은, 조금은 이마를 드러낸 아저씨가 연신 담배 연기를 뿜는다. 바라보는 이들은 각기 다른 눈빛들이지만 정녕 호수는 잔잔하기 그지없다. 그다지 크지 않은 호수는 너울 바람이 이끄는 대로 물살을 일으킨다. 푸른 물결을 바라보며 얼마 전 있었던 반가움과 그리고 감사의 시간을 생각한다.

몇 해 전부터, 부산에 사는 초등학교 동창들 모임에서 보내오는 초대장을 받았었다. 하지만 핑계를 대며 옛 친구들과의 만남을 미루어 왔다.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가지고 살게 되면서 정상인 모습만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옛 벗들에게 불편한 현재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일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계속된 초대에 다음 모임에는 참석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 마음을 가진 터라, 오후 시간 느닷없는 친구 전화는 반가움이 앞섰다. 친구 여럿이 근처로 가고 있으니 나오라는 것이다. 모임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피해 왔지만, 집 근처에서 만나자는 말에는 도리가 없었다. 알았노라고 전화를 내리고는 망설임이 시작되었다.
그냥 예전 모습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벗이면 좋으련만…….

망설임을 접고서 약속 장소로 향했다. 조금은 예쁘게(?) 몸단장을 하고서. 차 안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그들은 오지 않았다. 약속된 곳으로 차가 드나들고 택시 한 대도 왔다 갔지만, 눈에 띄는 사람은 없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지라 갸우뚱거리는데 어렴풋이 기억나는 친구 하나가 조금 전 도착한 차에서 내려 나를 이끈다. 안으로 들어가니 먹거리를 앞에 놓고 중년 여인네들이 여럿이 둘러앉아 있었다. 친구의 이끌림으로 앉았지만, 모르는 얼굴들이다. 차근히 둘러보았다. 모두 고운 눈망울을 하고서 내 눈과 마주한다.
'나 모르것나', '나는'.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한 명 두 명 이름을 들추어 들려주었다. 그 중 한 벗은 도무지 옛 얼굴을 기억해 낼 수 없다. 이토록 변할 수가 있는가? 불혹을 넘긴 중년 아주머니 모습이 내 벗이라니, 잠시 얼떨떨한 기분이 된다. 25년이 훌쩍 지났으니 몰라 볼만도 하다 싶다. 남자 친구와는 달리 여자 친구들은 명절 때 들러도 만날 수가 없었으니 더욱 그러하다. 지난날을 묻고 있는 세월 흔적이 까마득할 뿐이다. 모두 너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위로한다. 뱃살이 넉넉한 지금 모습이 예전 까까머리 소년을 찾기란 어려울 터인데 말이다. 고향 이야기며 어릴 적 추억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들, 왁자지껄하게 긴 시간을 이야기꽃으로 피우며 우린 서서히 예전 동무로 바뀌었다. 바다와 접하여 있는 만남의 장소는 그리하여 고향 거제 앞자락 같아 그 정겨움이 더하다. 이대로는 헤어짐이 아쉽다며 조금은 취기가 오른 친구 이끌림으로  가무를 즐겼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그녀들의 놀라운 변신을 마음껏 바라보았다.

그 수줍던 순이도, 착하던 쌍둥이 영아도 이젠 놀(?) 줄 아는 아줌마로 변하였다.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지려는데 한 친구가 배웅을 바란다. 아련하게 추억을 나누었던 그 아이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차 안의 그 아이는 이내 안타까움과 위로를 다시 건넨다. 분위기를 바꿔 살아가는 이야기며 옛 추억 이야기로 말을 돌렸다. 그 아이는 다른 벗들이 사는 이야기까지 잔잔하게 들려준다. 애틋한 정이 느껴왔다.

그날을, 그들을 이 호수 앞에서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행복한 미소가 얼굴 가득 퍼짐을 느낀다. 일어서려는데 잘 익은 탱자 빛의 노란색 원복을 입은 꼬마가 무리에서 빠져나와 조그만 돌을 주워 호수로 냅다 던진다. 잔잔하기만 하던 호수는 작은 돌의 몸부림 탓에 물무늬를 동그랗게 만든다. 정작 꼬마는 그 퍼짐을 보지도 못하고 무리 속으로 뛰어 간다.
그들은 내 마음속에 가득 퍼진 이 훈훈함을 알려나…….
옛 친구들이 나에게 안겨 주었던 시간이 삶의 활력이 되었음을 다시 느낀다. 벗들과 교류를 많이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실로 아름답게 느껴지는 그들 눈빛 속에서 찾게 되었다. 그들이 존재함을 진정으로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소금인형
그리움이 있었다. 오랫동안 대하지 못했던 친구들이 그립고 그리고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

러 있는 내 고향이 그리웠다. 며칠 전 택배로 보내온 김장김치와 함께 배달된 어머니 겨울연가는 더욱 그리움이 사무치게 하였다. 하여, 조금은 분주한 일정이겠지만 그들과의 만남을 미루지 말자는 결론을 내렸다. 일을 마무리하니 오후 5시, 조급한 마음이 되었다. 초겨울 어스름 저녁은 빠를 것이다. 어머니께 전화를 넣어 길 떠남을 전하니 화들짝 반기면서도 밤길을 염려하신다. 주중이라 동행하지 못하는, 아내 정성이 담긴 선물을 받아 싣고서 한달음에 고속도로에 차를 올려 달리니 그제야 마음에 안정이 온다.
라디오 볼륨을 올리니 안치환의 소금인형이 잔잔히 흐른다. 노랫말이 주는 의미가 깊단 생각이 들었다. 바닷물이 썩지 않는 것은 3%의 소금이 녹아 있기 때문이라며 깨우침을 전한다. 누군가에게 이러한 의미를 주는 삶이라면 얼마나 값질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이내 어둠이 내리며 갈 길을 재촉한다. 세 시간여를 달려 고향집 어귀에 당도하니 꼬부랑 산길은 오히려 경쾌함을 준다. 서치라이트에 비치는 단풍들이 이미 지고만 낙엽과 더불어 곱고도 화려하다.

그 자리 그곳에서, 보고 싶음을 숨기고 찾아주기만 바라는 어머니가 맨발로 반기신다. 자주 들르지 못하는 죄송함을 감추고 반가움만으로 당신들을 대하려 무던히도 어금니를 깨어 문다. 못난 자식 들이닥치면 허기를 채워 줄 심산으로 정성으로 차려내신 늦은 저녁상은 그리하여 참으로 곱기도 하다. 이것저것 물어오는 어머니께 밥 좀 먹게 내버려 두라는 아버지 질투 어린 일갈에 어머닌 눈 흘김을 하신다. 꾹꾹 눌러 담은 머슴밥을 억지 춘향 다 먹고 트림으로 마무리하니 그제야 흐뭇한 미소를 지으신다. 찻잔을 앞에 놓고 사는 얘기 들추어 들러주니 너무도 좋아하신다. 정담은 곧이어 이부자리 위로 옮겨 이어졌다. 이 시간 응석받이 막내아들이 되어드림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에 다른 방에 마련해 주신 잠자리에서 베개만을 들고 부모님 이부자리로 끼어들었다. 이편저편 번갈아 끼어들며 긴 이야기로 사랑을 나누었다. 깜박 잠이 들었을까. 새벽에 도란도란 나누는 말소리에 깨어 시계를 보니 새벽 5시다. 노인네들이 잠도 없느냐며 고운 투박을 주고는 밤과는 달리 집안의 묵직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내 동이 튼다. 상쾌한 마음으로 바다를 찾았다. 일출을 맞이하는 새벽 바다를 보며 소금인형의 노랫말을 새삼 떠올려 보았다.

아침상을 막 물리고 돌아앉을 때였다.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낚시를 즐긴다는 오래된 친구였다. 떠나오기 전 흘리는 말로 낚시를 했으면 좋겠단 내 말을 귀에 담아두었던 모양이다. 젊은 날 인연이 닿아 오랜 시간 정을 나눈 친구다. 근래 들어 만나지 못해 그리움이 깊어가던 친구라 반가움이 컸다. 약속장소에서 만난 벗은 삶의 여유가 느껴지는 중후한 중년이 되어 있었다.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미안함으로 포옹을 나누었다. 금세 예전의 모습 그대로 하나가 되어 목적지를 향했다. 그리하여 푸른 섬 가자도를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을 때는 월척을 꿈꾸었다. 거제의 싱싱한 외딴섬에 유유자적하며 낚싯대 드리우고 옛 벗과 나란히 앉고 보니 추억이 새록거린다. 이 낚시꾼은 오늘이 물때가 좋지 않아 고기 구경 힘들 거라며 사전에 연막을 친다. 아니나 다를까. 손맛을 느낄 기회도 주지 않고 바다는 잠잠하기만 하다. 고기가 무언 대순가? 덕분에 살아온 이야기며 살아갈 계획을 나누며 한나절을 보낼 수 있어 너무도 좋았다. 돌아오며 늘그막에 이렇게 바다에 낚싯대 드리우며 살아가리라고 마음속으로 무던히도 다짐해 두었다. 고기 맛은 보아야겠다는 내 말에, 친구는 푸른 바다가 내다보이는 한적한 횟집으로 안내한다. 근처에 삶터가 있다는 군대 동기를 불러내어 또 다른 반가움으로 셋이서 군대 이야기로 추억을 나누며 고소한 점심을 나누었다. 자주 만나자고 약속을 하여 두었다.

형님 댁에 잠깐 들렀다가 친구들과의 저녁모임을 위해 약속 장소로 향했다. 먼저, 자리한 친구 몇이 화들짝 반겨준다. 얼마 전에 만난 벗들도 있었고 30여 년 만에 만나는 친구도 있었지만, 모두가 그저 반갑고 정겹기만 하다. 이야기 나눔 속에서, 살아온 모습도 살아가는 삶의 모습도 모두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지만, 친구들이기에 보듬어주고 하나가 되려 한다. 눈을 감아보았다. 그들의 마음이 보였다. 중년을 넘기고 있는 그들의 기쁨과 애환과 삶의 무게가 느껴져 왔다. 이야기 나눔 속에 누구나 하나쯤은 아픔을 겪었음이 안타깝기만 하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중요한 미덕인 다른 이를 배려하는 마음들이 순간순간 오간다. 시간이 점점 흘러감에 술에 취하고 사랑에 취해 가면서도 정신은 또렷해지며 가슴은 훈훈함으로 젖어들었다. 살아가는 이유를 알기 위해 어디에 자신을 던져야 할지에 대한 생각과 함께. 우정에 취해 새벽이슬을 맞으며 고향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어머니 품속으로 들어가지만, 벗들도 무척이나 따스하다고 느꼈던 하루였음을. 그들이 내게 준 훈훈한 정으로 말미암아 그대들도 내 품으로 안아줄 수 있겠다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벗들이 이를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된다. '소금인형' 노랫말 의미처럼 바다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친구들 마음을 함께 나누기 위해 벗들 피 속으로 뛰어든 나도 그것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버릴 수만 있다면 좋겠단 생각을 하여 보았다. 시간의 아침은 오늘을 밝히지만, 마음의 아침은 내일을 밝힌다고 하였다. 소금 3퍼센트가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듯이 우리 마음 안에 있는 3퍼센트의 고운 마음씨가 우리 삶을 지탱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옛 친구들을 통해 거두었다.

정성으로 끊여내신 얼큰한 동태찌개로 울렁이는 속을 다스리고 준비된 일정 때문에 귀가를 준비했다. 분주히 움직이는 내 앞으로 어머니는 언제 준비해 두었는지 여러 개 보따리를 내민다. 텃밭에서 손수 가꾼 채소며 쌀자루도 보이고 노랗게 잘도 익은 솥뚜껑만 한 호박 한 덩이도 보인다. 손을 잡았다. 이 거친 손안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꼭 껴안아 드리고 따스한 눈 맞춤으로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서는데 마음이 무거워 온다. 펼쳐진 들녘과 앞산을 바라다보니 언제나 거기 그대로 남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진 아까부터 아무 말 않고서 그저 바라보고만 계신다. 이번 나들이에서 마주했던 고향 땅, 부모님, 친구들 모두 오래도록 굴레를 틀어 함께하기를 소망하면서 부산행 배에 몸을 싣고 일상으로 복귀하였다. 두툼한 호주머니가 느껴져 손을 넣으니 잘 말려진 고구마 쫀드기가 만져진다.
아! 어머니다…….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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