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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광미 수필]<16> '사방치기'우광미/수필가/궤적을 찾다 저자/ 한국 문인협회 회원/2020경남신문신춘문예수필당선자

                            사방치기  
 
                                               우    광    미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 전까지는 까르르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박수소리만 들렸다. 무언가 충돌이 있는 듯하다. 다가가보니 바닥에 분필로 여러 개의 선이 그어져 있다. 순서에 따라 앙감질을 하면서 돌을 차고 나가 왕복하는 게임이다. 사방치기다. 선을 밟지 않고 뛰어넘는 것이 정해진 규칙이다. 차례였던 아이는 선에 물리지 않았다 고집하고 상대편 아이들은 물렸다 한다. 서로가 옳다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사방돌의 투박함과 분필선의 흐린 경계, 관건은 여기에 있다. 더러 선에 물린 건지 아닌 건지 애매한 경우도 있다. 언쟁이 오가며 분위기가 심각하더니 차례가 되었던 아이는 물러서기를 한다.

  저 분필선의 흐릿한 경계 너머 어설프게 굵고 비뚜름한 내 유년의 사방치기가 생각난다. 놀이는 하는 동안 충돌이 있기 마련이다. 자신이 보기에는 선에 닿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데 다른 사람이 닿았다고 하면 인정하고 싶지 않다. 유년 시절 나의 돌이 선에 걸리게 되면 나아가려는 욕망은 그것을 너무도 크게 보이게 했고, 집착하게 했다. 그럴 때마다 상대와 의견을 조율해야 했다.  일방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때도 있다. 내 편이면서 모호하게 상대의 편에 서는 자도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아이도 있다. 자신의 생각만을 고집하다 결국은 놀이판을 뒤로하고 떠나기도 한다. 일순간 분위기가 싸해진다. 하지만 잠시 후 아무 일 없는 듯 놀이는 계속된다. 혼자 돌아가는 아이를 보고 안타까워했다. 작은 일로 함께 할 수 없음을. 비록 혼자가 될지라도 자신의 주장을 꺾지 않는 것이 놀랍기도 했고,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이렇듯 사는 일도 서로의 선을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 신혼시절 회사 동료의 집알이를 간 적이 있었는데 마치고 나오니 자정이 넘은 시간이 되었다. 술도 깰 겸 드라이브를 하자는 제의에 바다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고개 너머에 바다가 있었다. 바닷가에서 우리는 집알이 친구의 이야기를 하다가 그만 다툼으로 번졌다. 모든 다툼의 원인이 태반은 사소함에서 비롯된다. 그러다 감정의 선을 건드리게 되고 걷잡지 못하는 지점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우리의 대립도 그러했다. 서로의 기 싸움에 한없이 깊은 물속으로 자맥질해 들어갔다. 화가 난 그는 아주 오래된 당산나무 아래에 나를 두고 가 버렸다.

 야생의 상태다. 어둠 속의 나무는 하늘을 가릴 만큼 크고 음산하게 보였다. 가로등은 없었다. 그날 밤 하늘의 별빛은 차갑고 멀게만 느껴졌다. 건너편 민가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만 나의 의식을 잡아 주었다. 지금처럼 휴대폰이 흔한 시절이 아니었다.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택시를 부를 돈도 없었다. 어둠 속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두려움이었다. 내게는 이 두려움을 쫓아낼 지폐 몇 장도 없었다.  

  멀리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고갯마루를 내려오고 있었다. 한밤중에 갑자기 켜진 대형 경기장 불빛처럼 강열하게 비췄다. 불빛은 극도의 긴장감을 일으키게 했다. 상대를 파악하기 위하여 어둠에 다시 몸을 숨겼다. 택시였다. 누군가 차에서 내린다. 시골이라 대절 택시가 산을 넘어온 모양이었다. 승객이 내린 후 떠나려는 운전사에게 다가가 사정 이야기를 했다. 차비는 다음날 주겠다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함에도 그 기사는 흔쾌히 집 앞에 내려주고 갔다. 차비 갚을 생각은 말라며 휑하니 멀어져 갔다. 삶에도 일정한 규칙이 있다. 아파트 불빛은 무채색으로 보였지만 그날 밤 사방치기 단면도 위로 다시 갔다. 놀이는 계속되었다. 내 기억 속의 경험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유년 시절 집은 매일 선에 물려 있는 돌과 같았다. 부부의 다툼은 각자의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대립으로 조율점을 찾지 못하곤 했다. 습기찬 공기가 집안을 누르는 침묵이 계속되는 분위기에서 어머니는 평소에 애지중지하던 화초를 손질하였고 아버지는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각자의 심사를 누그러뜨리는 동안 선을 점차 무디게 조율해 나갔었다.

  흔들린다는 건 살아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한 순간의 감정으로 놀이판을 이탈하는 아이처럼 운명 자체를 배척한다면 함께 어우러질 수 없다. 시련이 머물다 간 자리는 성숙한 삶의 의미를 남기고 더 또렷이 목표점을 바라볼 수 있게 하지 않았던가. 어른이 되어갈수록 지난날 흑백논리에서 벗어난다. 답이란 이것일 수도 저것일 수도, 또는 없는 것일 수도 있음을 알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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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어 버렸던 것일까. 가난한 삶에 부딪히면서도 까르르 골목을 메우던 동심을. 이제는 사방치기에서 올라갔던 구역들을 다시 내려오는 시간이 될 것이다. 돌아올 때는 돌을 손에 쥐고 온다. 앙감질로 내려오다 두 발로 쉬기도 하고 주변을 돌아볼 수도 있다.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굳이 선에 닿았다고 하면 물러서기도 해 주고 상대가 편안한 쪽으로 맞추어 주는 배려도 해 주어야 한다. 기쁨도 슬픔도 지나고 나면 삶의 한 풍경이 되듯이, 어둠이 내려 놀이를 마치는 시간이 되면 승자도 패자도 하나가 된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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