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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희 수필]⑪ '변신''윤석희:수필가/시인/신곡문학상수상/수필집「바람이어라」,「찌륵소」펴냄·눌산 시창작교실 수료

                         ⑪ 변신

                                                   윤    석     희

황토 길. 몽환처럼 붉은 흙먼지 속에 펼쳐지던 곳. 뽀이벳에서 씨소폰에 이르는 비포장 도로다. 하늘 길로 사오십 분이면 족한 걸 왼 종일 시달린다. 이 길이 좋아서다.
  픽업 택시 한 대에서 이십여 명이 부대낀다. 왼다리는 운전석에 오른 다리는 기아를 끼고 조수석에 두었다. 희한한 경로 우대석이다. 몸이 뒤틀리고 경련이 일어도 옴짝달싹 할 수 없다. 난민들 같다. 차안을 침범한 뙤약볕에 헉헉 숨이 차다. 뒤집어 쓴 흙가루로 팩을 한 듯 서로 알아보지 못한다. 너른 들판을 반쪽으로 가르는 울퉁불퉁한 길. 내장까지 요동치는 흔들림이다. 깊게 패인 구덩이가 늪인 양 차를 놓아주지 않으면 모두 내려서 들어 올려야 한다. 다들 기진맥진이다. 야자수 그늘 속에 나그네의 고단함을 잠시 풀어 놓는다. 마침 소달구지가 사탕수수 가닥을 떨어뜨리며 지나간다. 한입 베어 물자 입안 그득 단물이 고인다. 내에서 대 소쿠리로 고기를 모으는 아이들이 손을 흔든다. ‘여전 하네’ 한마디로 충분하다.
  시엠리업에 이르니 밤이 깊다. 조급한 마음에 새벽부터 서둔 일정이다. 출입국 신고하는 데만도 세 시간 걸렸다. 대책 없이 땡볕에 세워 두었다. 그래도 신명이 났다. 보고 싶은 사람 찾아가는 길이 아니던가. 물론 앙코르왓의 장관을 염두에 두긴 했으나 다시 온 이유가 되진 않는다. 마련해 온 민속 인형과 한과 봉지를 꺼내든다. 그리고 음미하듯 떠올려 본다. 사년 전 일주일동안 함께 했던 순박한 사람들을.
  민박이라고 해야 맞겠다. 널찍하게 앉혀진 마당 푸른 집이다. 뜰에 색색의 꽃들이 어우러지고 병아리와 어미 닭이 일가를 이루며 평화로웠다. 병아리들은 저를 품어 준 암탉만을 따라 다니고 어미 닭은 제 새끼들 무리가 흩어지지 않도록 채근한다. 다 자란 닭들은 어미는 아랑곳 하지 않고 주위를 휩쓸며 논다. 어미만 뒤를 쫒는다.
  투숙객의 먹거리가 되기 위해. 그랬다. 큰 아들이 닭을 잡아 장만하면 아주머니는 외면하고 땅바닥에 주저 안자 버린다. 부처님께 용서를 구하느라 합장하며 눈을 감는다. 독일 아저씨가 물질을 해주려고 펌프 곁으로 다가선다. 서양인이 낯설어서 일까. 소채를 다듬던 아주머니는 바구니를 팽개치고 부엌으로 내달음 친다. 문 뒤에 몸을 숨기고 고개만 내어 민다. 내가 빨래를 하면 슬며시 빼앗아가서 씻어 말리고 곱게 개켜 건네주며 천진하게 웃기만 한다. 탱큐라고 아주머니 귀에 속삭이면 영문 몰라 애타는 표정이다. 눈동자를 굴리며 달려가서는 아들을 앞세우고 나타난다. 종일 걸레를 분신인 양 달고 사니 집 안 밖이 반짝반짝 빛이 나고 음식 맛도 기막히다. 엄지손가락을 펴 보이면 그릇을 통째로 안겨 준다. 얼굴을 붉히며 아들 뒤로 숨으면서.
  마주칠 때마다 환하게 웃으며 수줍던 아주머니. 세 아들을 홀로 키우는 어미였다. 큰 아들은 숙박업을 맡아하고 둘째와 셋째는 학교에 다니며 오토바이로 투숙객 수송을 책임진다. 또 손님들 상담을 하고 시중도 든다. 아들 셋 모두가 생업에 종사한 꼴이다. 틈틈이 짬을 내어 컴퓨터도 익히고 손님들에게서 다양한 언어를 습득한다.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 일본어 중국어가 세 아들 모두 능통하다. 나또한 이들의 한국어 선생이 되었다. 저녁에는 공책을 펴놓고 말공부에 열심이다. 아주머니는 푸짐한 간식을 챙겨와 그들의 등 뒤에 붙어 있다. 서툰 발음에 웃음을 터뜨리면 만면에 함박꽃을 피우며 합장 한다. 일상 마디마디에 합장 하는 모습이 정갈하고 맑다. 기원하는 마음으로 매순간을 살아내는 듯하다. 비록 삶이 고단하여도 새끼들을 품고 사는 어미 닭처럼 평안해 보였다.
  세상살이에 지치고 인간관계에 맥이 풀리면 그 아주머니가 그리웠다. 전혀 언어 소통이 되지 않았지만 마음을 온전히 주고받은 사람. 떠나던 날 챙겨 준 삶은 계란도 다시 먹고 싶었다.
  한적한 시골이던 이곳이 흥청거리는 관광지로 변했듯 이집의 변화도 만만치 않다. 삼층 건물이 번듯하다. 돌로 치장한 정원 또한 근사하다. 닭들은 어디에도 없다. 겨우 방 다섯 개 뿐이었는데 종업원들로 북적댄다.
 ‘식구 모두가 부지런하더니 성공 했구나’ 뿌듯해진다. 눈으로 찾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주인을 만나고 싶다 했다. 누구냐고 물으며 나타난 여인. 방이 깨끗하고 조용하다며 다부지게 투숙을 권한다. 당당한 영어 억양에서 세상 냄새가 물씬하다. 새끼들 뒤를 졸졸 쫓던 어미 닭이 분명하다. 그러나 전혀 다르다. 통통했었는데 안쓰러울 만큼 깡마르다. 고무줄로 묶었던 머리는 짧게 커트 했다. 화려한 무늬의 원피스 차림이다. 세련된 경영인으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천진하고 행복하던 표정은 자취를 감추고 건조하고 깍듯하다.
  이렇게 되도록 얼마나 많은 갈등과 눈물이 소모 되었을까.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멎는다.  잘되었다고 되 뇌여 보지만 슬픔만이 차오른다. 버거운 현실을 비껴갈 수 없어 변해가는 내 자신이 겹쳐진다. 아파 온다. 내가 아닌 나로 살아 가야하는, 참 모습을 잃고 메말라 가는 삶이 서글프다. 어렵게 다시 오지 않았나. 보고 싶던, 바로 그 사람 앞인데 몸도 마음도 굳어진다. 말조차 나오지 않는다. 예전이 그리울 뿐이다. 지난 기억을 지워 버린 걸까. 나를 알아보지 못함이 차라리 다행이다.
  아이들 소식을 물었다. 무표정해 보이던 그녀가 나를 살피는 기색이다. 모두가 멀리 떠났단다. ‘그렇게 열심히 배우며 너른 세상으로 날아 갈 준비들을 했었구나.’ 어느새 그녀의 눈가에 물기가 서린다. 안색이 변한다. 빨리 돌아오기만 기다린다는 듯 합장한다. 뽑히지 않은 뿌리가 엿보인다. 변신은 삶의 방편인가.
  새끼들 의지하며 여리기만 하던 어미다. 세찬 비바람에 시달리며 단단한 바위가 되었다. 자식들을 기다리며 그들의 먹이를 악착같이 모아 두고 있다. 추억 속으로 함께 들어갈 자신이 없어서 나를 설명하지 않는다. 급하게 돌아서고 만다. 손에 들린 선물꾸러미가 무안하다. 함께 찍은 사진들이 주머니 속에서 비적 댄다. 씁쓸한 웃음이 한숨처럼 새어 나온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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