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왼쪽
오른쪽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칼럼
[수필: 김정아]조퇴김정아:전북 임실출생/2011.11 수필과 비평 등단/독서논술지도사/계룡수필문학회원/눌산문예창작교실수강

어깨를 덮은 상가지붕의 그림자가 짙다. 차가운 대리석 난간에 쭉 뻗은 다리가 쓸쓸하다. 아이가 앉아 있다. 갈 길을 잃은 두 발이 흔들거린다.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적색 신호등에 막힌 차들은 움직일 줄 모른다. 창문을 내리고 아이를 향해 손을 흔들어보지만 고개를 들지 않는다. 

아이가 아프다는 문자를 받고 급히 달려오는 동안 그러고 있었던 모양이다. 오늘은 모의고사 날이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걱정이 되었다. 며칠 전부터 배탈이 났었는데 어제는 장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죽 이외에는 어떤 음식도 먹지 못하고 누워만 있었다. 오늘도 쉬면 안되냐는 아이의 말에 그래도 시험은 봐야지 않느냐며 학교에 태워다줬다. 벌써 몇 번의 결석과 조퇴가 있어서 대학 입시에 나쁜 영향을 끼칠까 걱정이 앞섰는데 무리었나 보다. 나의 마음에서 툭하니 기대 하나가 떨어진다.

어릴 때에는 참 밝은 아이었다. 잘 웃고 재밌는 놀이를 생각해내서는 함께하자고 조르곤 했다. 함께 있으면 절대 심심할 리 없을 거라고들 했다. 학교에 입학하면서 말수가 줄고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워낙 밝고 긍정적인 아이였다는 이유로, 잘 할 것이라는 변명으로 적당히 얼버무리며 나의 힘든 하루만 생각했다.

며칠 전 아이가 오열하며 말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고. 아빠와 엄마에 대해 느껴왔던 속내를 터트렸다. 기억속의 엄마는 항상 우울하고 걱정이 많아 보여 고민을 얘기할 수 없었다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아빠와 눈치보는 엄마가 너무 싫다고. 적당히 비위맞추는 것도 싫었다고. 좋은 척했을 뿐이라고. 그래도 너를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는지 아느냐는 변명이 마음에서 요동쳤다. 부부사이의 해결되지 않고 덮여진 문제들이 아이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고 학교생활에까지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진실되지 못한 시간들의 복수일까. 한마디의 말도 허투루 사라지지 않고 아이의 입을 통해 재생된다. 지난 시간들이 다시 찾아와 그 의미를 묻는다. 결코 시치미 뗄 수 없는 시간들이다.

학창시절의 나는 개근상이 아니면 정근상은 꼭 받았던 모범생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는 주위의 기대에 맞추며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을 기뻐했다. 꼭 필요하지 않더라도 어른들이 좋아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불안했던 집안의 모습은 그렇게 모범적 행위 속에 감추어졌다. 결혼생활도 마찬가지였다. 화목한 가정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왔고 잘해 왔다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다. 비교적 행복한 가정이라고 이름 붙이며 만족해했었다. 그런데 아이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 척했을 뿐이라고. 누군가는 참고 희생하며 미소라는 고급 포장지를 씌운 채 그렇게 살아왔다고. 어쩌면 화목한 가정이라는 이름이 중요해서 아이의 아픔은 적당히 피해갔는지 모르겠다. 다들 그러면서 큰다고. 그러면서 산다고 말이다. 누군가의 희생 위에 지어진 행복이 진정한 행복은 아닐텐데 우리는 너무도 익숙하게 살아왔다.

아침에 아이한테, 그래도 학교에 가서 시험을 봐야한다고 했던 말을 되새겨본다. 내가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아이도 개근상은 아니더라도 정근상은 받아야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었다. 사회에 나가서라도 성실하지 못하다는 평을 들을까 내심 불안했다. 현재도 미래도 내가 살아왔던 세상과 같을 거라고 아직도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 강요는 이미 내 자신에서 했던 것임에도.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니 타인에게는 모범생이었을 수 있지만 내 자신에게는 불량학생이었다. 가끔은 결석과 조퇴도 하고 금지된 것들에 현혹되기도 해봤어야 했다. 자신의 한계를 경험하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방향을 찾기 위해 도전했어야 한다. 치열하게 싸우고 쟁취해 나갔어야 했다. 모범이라는 이름 뒤에 도피한 나약함이다.

아이가 무심한 얼굴로 신호를 기다리는 나를 본다. 아이의 얼굴이 낯설다. 타인의 얼굴처럼. 아이는 지금 자신만을 위한 삶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 결석과 조퇴가 있는 삶.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기도 하는 삶을 말이다. 부모라는 울타리에서 넒은 세상으로 나아가기위해 온 힘을 모아야할 때이다. 그러기 위해서 더 실망하고 더 분노해야 한다. 기존의 삶을 부정할 용기가 없다면 세상은 두려움으로 아이를 압도할 것이다. 이제 엄마로서의 내 인생의 한 부분이 막을 내리고 있다. 안간힘을 썼던 시간들의 의미는 나의 숙제로 남는다.
녹색신호등이 켜진다. 손을 흔들며 아이의 이름을 크게 부른다. 아이가 웃는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정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