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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인자 수필16]'토우(土偶)를 보며'심인자:수필가/수필과비평 작가회 전 거제지부장/수필과비평작가상수상

<16> 토우(土偶)를 보며
                                                      심 인 자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말에 내려오겠다는 것이다. 갑작스러움에 무슨 일인지 물어봤지만 좋은 일이라며 웃기만 한다.
   며칠이 지난 후에 조심스럽게 상자하나를 들고 현관을 들어서는 언니를 맞이했다. 궁금해서 상자부터 열었다. 몇 겹의 포장지를 벗겨내니 형체가 드러났다. 모녀가 마주 앉아 바느질하는 모습의 토우였다. 순간 고마움보다 실망이 앞섰다. 이름 있는 사람의 작품이라는 것을 언니는 덧붙였지만 후줄근하고 초라해 보이는 모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친근감이 생기지 않는다. 가는 눈에 튀어나온 광대뼈며 야위고 긴 목이 구차해 보인다. 소매를 팔뚝까지 걷어붙인 채 두 손에는 옷감을 잡고 있다. 광주리에는 바느질감이 가득 들어 있어 짧은 밤을 지새워야 함을 말하는 것 같다. 또 구부정한 자세는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힘겨움을 표현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딸의 모습은 어머니와 달리 살진 볼이 부어 있는걸 보니 화가 난 모양이다. 밤 새워 어머니 일을 도와야 함이 못 마땅해서인지 입을 삐죽거리고 있다. 어머니는 철없는 딸을 달래려하지만 고집이 여간 아니어서 꿈쩍도 않는다.
   거실장위에 올려놓아도 화려함이 없어서인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먼지가 앉았는가싶어 털어도 보고 살짝 닦아도 보지만 원래부터 태깔이 나는 것이 아니었다. 여러 번 장소를 옮겨봤지만 어울리지가 않아 처음자리인 거실장위로 되돌려 놓았다.
   언젠가 장식품을 파는 가게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인형을 사왔었다. 부드러운 입술과 고운 눈매, 단정히 빗어 쪽찐 머리가 아름다웠고 노랑저고리와 다홍치마가 화려함을 더해주었다.
   그런 모습에 익숙해 있던 나에게는 토우 속의 모녀가 궁색해 보이는 것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하필이면 구차하고 청승맞게 빚었을까. 곱고 화려한 색으로 덧칠을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토우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던 나의 무지한 생각에서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두 모녀가 자주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가 작품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안목(眼目)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작가는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삶을 옛 여인들의 일상 속에서 표현하려 함이었다. 지금까지의 생각과는 달리 토우 속에 깃 든 어머니는 자애로움이 넘친다. 광주리에는 질박한 삶이 들어있고 어머니는 그 삶을 꿰매고 있다. 과년한 딸에게 바느질을 가르치며 요모조모 살림살이를 익히게 한다. 딸의 모습도 달라 보인다. 통통한 볼이 맏며느리 감이다. 정담을 나누며 바느질하는 모습이 다정하다. 머잖아 여울 딸아이가 대견스럽고 한편으로는 서운한 마음이 드는 모양이다.
   옛 여인들은 주로 밤에 바느질을 했다. 낮에는 밭일이며 집안일에 바빠 엄두도 못 내고 식구들이 잠든 늦은 시간에 옷가지를 손질하고 버선을 만들었겠지. 웃음기를 머금은 채 잠든 아이들을 바라보며 어머니는 힘든 하루의 고단함도 잊어버린다.
   모녀를 보니 어머니가 생각난다. 나 어릴 적 어머니는 호롱불 앞에 앉아 바느질을 하셨다. 밤이 깊었는데도 아랫목에서 동생과 장난을 해대면 어머니는 윗목으로 슬며시 물러나 앉으셨다. 야단을 치실 만도 한데 미소를 머금은 채 바느질만 하셨다. 어머니는 바느질 틈틈이 자투리 천으로 앞치마며, 벙어리장갑, 덧버선, 인형에 입힐 옷을 만들어 주셨다. 그것들을 들고 동네 아이들에게 자랑하고 다녀 또래의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볕이 좋은 날에 어머니는 이부자리를 뜯어내어 빨래를 했다. 이런 날은 언니들도 한 몫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풀을 먹인 홑청을 걷어 와서 어머니는 입 안 가득 물을 머금었다가 뿜어내었다. 주름을 펴기 위해 어머니는 큰언니와 마주앉아 홑청을 잡아당겼다. 그럴 때마다 ‘퍽`하며 소리가 났다. 재미있을 것 같아 나도 해보겠다고 했다. 나를 골려주느라 잡아당기던 홑청을 슬며시 놓았다. 벌러덩 뒤로 나자빠지는 통에 식구들이 박장대소하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어머니는 다림질한 홑청을 가지런히 펴놓고 이불을 꾸미셨다. 이불을 밟으며 장난을 치는 통에 어머니 일은 더디게 끝났다. 새 이불을 덮는 날은 기분이 좋았다. 풀을 먹여 홑청에서 바삭거리는 소리가 났다. 공연히 들썩거리는 통에 언니에게 혼쭐났지만 지금 생각해도 재밌고 그때가 그리워진다. 문틈으로 스며드는 겨울바람이 싸늘했어도 이불 속에서 형제들이 서로의 체온으로 감싸주었기에 혹한 삼 동(三冬)이 지나가지 않았나 싶다.  
   식탁보도 새로 만들 겸해서 천을 몇 마 끊어왔다. 장롱 깊숙이 잠자던 반짇고리를 꺼낸다. 안에는 가위며 바늘, 실이 들어있다. 녹슨 바늘이 있는걸 보니 오랫동안 제 역할을 잃고 있었음이다. 시침질 할 부분을 접어서 다림질을 한 후 바느질을 해나갔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무척 힘이 들었고 서툴다보니 바늘이 손끝을 찔러 아팠다.
   오전 내내 시간을 보낸 끝에 식탁보가 완성되었다. 재봉틀을 사용한 것도 아니고 바늘로 한 올씩 뜨다보니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첫솜씨치고는 식탁보가 괜찮게 만들어졌다. 다음번에는 풀 먹여서 이불을 꾸미던 어머니 흉내를 내어볼까 한다.
   시집올 때 어머니가 해주신 두꺼운 솜이불 한 채가 있다. 매년 겨울이 지나면 어머니가 오신다. 겨우 내내 덮어서 숨이 죽은 솜이불을 손봐주기 위해서이다. 올 해는 나 스스로 이불을 꾸며봐야겠다. 눈도 어둡고 건강이 안 좋은 어머니의 고생을 들어드리고 싶어서이다. 넓은 거실에 홑청을 펼쳐놓으면 아이들이 서로 따라 해보겠다며 성화를 부릴지도 모를 일이다. 어머니가 그러 하셨듯이 야단치지 말고 넉넉한 웃음을 보여야겠다.
   거실 장에 놓인 후줄근한 어머니도 정겹고 양 볼이 통통한 딸내미도 복스럽다. 두 모녀를 바라보며 가끔은 옛 추억을 더듬는 시간을 가져서 좋다.
   내일은 언니에게 전화를 해야겠다. 그때 말하지 못한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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