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왼쪽
오른쪽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칼럼 우광미 수필
[우광미 수필] ⑮'백사청송(白沙靑松)'우광미/수필가/궤적을 찾다 저자/ 한국 문인협회 회원

⑮ 백사청송(白沙靑松)
 

                                              우  광  미

세상의 소리들이 멀어진다. 안으로 다가갈수록 세상과 다른 숨결로 가득하다. 몇 차례 이 곳을 다녀갔지만, 숲의 속살을 보지 않고서는 다가설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이른 시각에 차를 달려왔다. 숲의 가장자리에는 톱밥을 깔아 길을 내놓았다. 그 위를 걷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인다. 신을 벗고 맨발이 되어 걷기 시작했다. 길 한가운데서 무언가 열심히 주워 바깥으로 치우는 이가 있어 다가가 보니, 맨발로 걷는 누군가를 위해 모난 돌이나 거친 가지들을 줍고 있다. 이른 아침 이타의 마음을 가진 이의 배려가 있기에 고운 길을 걸을 수 있구나. 이렇듯 사는 동안 나를 위해 걸림돌을 치워주기도 하고 묵묵히 지켜봐 주던 사람들의 고마움을 생각해 본다.
   하동은 지리산을 끼고 있는 지형이라 기류의 변화가 심한 곳이다. 짙은 운무가 두텁게 내려앉기 시작하고 이슬에 젖은 송림 바닥에서는 은은한 솔향이 배어 나온다. 솔잎과 솔방울이 쌓여 부토가 되어 있다. 떨어진 갈비를 손바닥에 올려본다. 잎이 두 개다. 한 꼬투리에 잎이 세 개씩 붙은 외래종 리기다소나무가 아니라 솔잎 둘이 짝을 지은 토종 소나무다. 예로부터 소나무는 우리네 삶의 동반자였다. 왼새끼 꼰 금줄에 솔가지 꽂은 방 안에서 태어나, 솔 줄기 속껍질로 주린 배를 달래기도 하고, 험한 세상 송죽처럼 꿋꿋이 살다가, 끝내는 소나무 우거진 언덕배기에 눕지 않았던가.
   전국에 빼어난 솔숲이 적지 않지만, 그 중에서도 하동송림은 풍광으로도 사연으로도 손꼽힌다. 모래가람·다사강(多沙江) 등으로 불릴 만큼 고운 모래로 유명한 섬진강과 함께해 온 송림이다. 해변처럼 넓은 백사장의 은모래와 푸른 송림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조선 영조 21년에 당시 도호부사 전천상에 의해 섬진강 강바람과 모래바람의 피해를 막기 위해 이 소나무 숲이 조성되었다. 노거수 소나무 밑에 ‘백사청송(白沙靑松)’이란 글이 새겨진 비석이 서 있는 연유는 여기서 비롯된다.
   이 곳의 소나무는 고유관리 번호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재래종인 육송으로 모두 심어져있고 그 중 이름을 가진 소나무는 네 그루다. 연리지 형태로 된 부부송, 늘씬한 여인의 하체를 닮은 고운매나무, 열악한 환경에서 휘어짐이 많은 못난이 나무. 제각기 특징을 빗댄 이름을 가졌다. 소나무는 암꽃과 수꽃이 같은 나무에 피는 강한 번식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수리를 가리면 죽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극양수(極陽樹)다. 햇볕을 매우 좋아한다. 소나무의 굽어짐은 빛을 향한 나무의 생존 언어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나무는 맞이나무다. 뒤틀린 모양이 특이하다. 뿌리가 보일 정도로 아래 둥치가 꺾여 직립의 순리를 역류한 나무다. 보호차원에서 버팀목을 받쳐 놓았다. 제 몸에 세월을 쌓는 게 나무라지만 거센 바람의 길을 맨몸으로 견딘 인고의 흔적인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나무는 어느새 곁가지가 싱싱하게 자라 하늘을 향하고 있다. 생명이란 이토록 강한 것인가 보다.
   나무 둥치에 손을 얹고 귀를 바싹 대어 본다. 이 곳은 1950년대 숨어든 빨치산들이 이념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잡아다 나무에 묶어 공개 총살을 하던 현장이다. 아직도 그 총알이 소나무에 박혀 있다고 그 시대를 오롯이 지나온 주민의 증언이 전해진다. 이후 1951년 남한 빨치산 남부군 총사령관인 이현상. 그는 조직적으로 항전하며 서남지구 전투경찰 사령부 수색대와 교전을 벌이다, 지리산 깊은 골짜기 빗점골 합수내 너덜겅 바위에서 사살되었다. 숨진 그의 시신은 섬진강 다리 밑 하동 송림 주변 백사장에서 스님의 독경과 더불어 한 줌의 재로 변하여 강에 뿌려졌다. 남과 북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빨치산의 최후는 ‘사살의 정점에 있던 토벌대장 차일혁이 그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하여 송림 변에서 조포 세 발을 쏘았다.’라고 전해진다. 이것은 시대의 이데올로기를 넘어 한 인간으로서의 죽음이 인간적 유대감으로 존중된 건 아닐까. 사뭇 옷깃이 여미어진다.
   짙게 드리운 운무가 어느새 툭툭 빗방울을 내린다. 숲에선 군데군데 나무 모양으로 설치된 스피커의 낮은 음악소리가 흘러나온다. 베토벤의 비창이다. 매우 느린 2악장으로 우아하며 무언가를 간절히 기원하는 곡이다. 마치 송림의 진혼곡처럼 들리는 건 지난날 아픈 상흔의 역사가 잠들어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는 듯하다. 비를 피해 나는 새들의 낮은 비행에 나뭇가지에 맺힌 굵은 빗물이 이마에 떨어진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숲의 관점에서는 소나무들이 가지를 걸쳐 만들어내는 화폭에 하늘이 세들어 산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건강한 소나무 가지 위에도 햇볕을 받지 못해 죽은 마른 삭정이가 매달려 있다. 사람 사는 일도 그렇다. 저마다 다른 관점을 가지고 바라보는 현실에서 각자의 아픔을 지니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잠시 지나가는 운무인지 비가 그었다. 하동은 감성적인 고을이다. 송림내 구석진 화장실 벽에도 시 한 수 감상 할 수 있도록 배려한 여유와 풍류를 느낀다. 송림내에 있는 ‘은모래 화장실’ 누가 지은 이름인가 곱기도 하다. 그 곳에 들고 나면 우리가 가진 근심 모두 벗어 놓고 솔솔 바람결에 섬진강의 이야기가 들려 올 것만 같다. 한 시대의 이념과 아픔, 우리가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들도 모두 품고 강은 순리대로 흐른다. 강을 바라보며 걷는 노부부의 뒷모습이 정겹다.
   때때로 사는 일에 지치면 솔숲에 혼자 들어가 보자. 시간의 행간을 읽을 수 있다. 청량한 기운이 어떠한 위로보다 포근히 다가온다. 맨발로 숲을 걸어보자. 그 길은 우리 내면으로 향하는 길이요 자신을 비우고 숲의 에너지로 채울 수 있는 길이다. 소통의 장소, 성찰의 장소, 누군가에게는 회개의 장소가 된다. 더 나아가 눈을 감고 내면의 세계로 들면 집착과 분별을 버리고 잠시라도 숲의 고요에 안기지 않을까 싶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정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