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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수필]'거제 칠천도(七川島)'이승철/시인 수필가 향토사연구가

⑤ '거제 칠천도(七川島)'
                        
시인 수필가  이 승 철

거제도 서쪽 해안에 거제도에서 제일 큰 섬 칠천도가 있다. 이 섬은 칠천도 옥녀봉과 하청 앵산이 높이 솟아 있어서 바다가 어둠침침하다. 그래서 옷 칠을 해 놓은 것 같이 어두운 바다가 시내처럼 생겼다고 옷칠(漆) 내천(川) 칠천도라 했다. 바다가 침침하다고 칠천도 앞 바다를 검은 개라 부르기도 한다.
  옷 칠 같이 어두운 것은 침침하여 불길 하다고 해서, 한문의 옷칠(漆)자를 음양오행을 합친 행운의 숫자 일곱 칠(七)로 바꾸었다.
  칠천도와 하청 사이에 있는 바다를 칠천량, 또는 외질개라 한다. 외질개라 한 말은 하청과 장목 바깥쪽에 있는 바다가 개천처럼 생겼다고 밖 개 또는 바깥 개라 한다. 한문으로는 밖 았 으로 흐르는 바다길이라 하여 외(外) 질포(질은 길의 사투리) 라 한다.
   칠천도 중심에 232m의 옥녀봉과 165m의 화전산이 중심을 이루어 아름다운 여자가 파하란 보료위에 치마폭을 펼치고 앉은 모양을 하고 있는 섬이다.
  이 섬에 큰 마을이라 하는 대곡(大谷) 마을, 따뜻한 온천물이 나온다는 어온(於溫) 마을, 정유재란 때 거북선이 떠 왔다는 연구(蓮龜) 마을, 솔숲이 우거진 송곡(松谷)마을, 뒤 산이 긴 장고 같이 생겼다고 장곶(長串) 마을, 골자기에 마을이 있는 곡촌(谷村) 마을, 섬이 누렇다고 황덕(黃德) 마을, 바닷물 안쪽에 있다고 물안(勿安)마을, 여인이 거문고를 타는 형상이라 하여 금곡(琴谷) 마을, 옥녀가 내려와서 섬이 되었다는 옥녀봉에 옥녀가 옥구슬 비녀를 꽂고 있는 것 같이 생겼다고 옥계(玉笄)마을 등 지형에 따라 지어진 아름다운 마을이다.
  칠천도가 따뜻하고 비단 같이 아름다운 섬이라 하여 온라도(溫羅島)하였고, 온천수가 나온다고, 온천도(溫泉島)라 하기도 했다.
  1977년 7월 1일 하청면 칠천 줄장소가 되었다가 2008년 10월 30일 지방행정제도 개정에 따라 출장소가 없어 졌다. 칠천도는 지리적이나 역사적으로 볼 때 칠천면이 되어야 한다.
  섬 자락에 아름다운 마을이 치마폭에 쌓여 있는 것 같다. 부산과 여수의 뱃길이 서쪽으로 나 있고 그 주변에는 마산과 진해 통영이 이웃처럼 가까이 있다. 섬이면서도 섬이란 느낌이 들지 않고 잔잔한 호수 가에 자리 잡고 있는 아늑한 마을처럼 포근하다.
  이곳은 부산과 통영 여수로 통하는 바닷길이다. 임진란 때 이순신 장군에게 패전한 일본군이 1597년 정유년에 군함 600여척으로 재침하여 수군 통제영이 있는 통영을 향해 침입 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이 7월 14일 한산도를 출발 하여, 왜적과 싸웠으나 16일 패전하여 원균과 많은 군사가 전사한 칠천량 해전지다. 이때 처음으로 거북선 5척이 출전 했다가 침몰된 곳이라 하여 거북선 잔해를 찾기 위해서 1986년부터 10년간 해군유물 박물관에서 전격적인 탐사를 했다. 그 당시는 탐사 장비도 미약하고 보안이란 이유로 외부의 접근을 금했다. 그때 그 지역을 안내 하면서 같이 동참 하였다. 거북선의 흔적은 찾지 못했다. 낡은 토기 편과 패선된 선박 조각 같은 것이 발견되었으나 임진란이나 정유재란과는 관계가 없는 것들이었다.

칠천연육교

그후 2006년부터 거제시에서 이순신 장군 프로젝트 사업을 추진할 때 필자가 추진위원장으로 임진란과 정유재란에 대한 자료 조사를 하였으나 별다른 성과는 없었고, 칠천량 해전 공원을 옥계마을 서홍수 칠천도 주민대표의 도움으로 건립 하였다.
  칠천도는 섬 인 되도 예전에는 농업을 위주로 하고 살던 곳이다. 한일 통어조약이 생긴 후에 일본 어민들이 들어와서 어업을 위주로 생활 하면서 일본어민 어촌 마을이 금곡과 옥계 마을에 생겼다. 옥계마을 천주교회가 있는 곳에 일본 사람 하찌야(蜂谷源吉)란 사람이 살았는데 그 사람은 일본대사의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진해와 거제에 부임한 일본 경찰 서장이 칠천도 하야시에께 와서 신고식을 했다. 그때부터 금곡 마을을 그 사람 이름을 따서 봉곡(峰谷村:하야시)이라 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일본인이 살던 집이 있었다. 일본인들이 진해 보다 더 좋은 항구 마을로 인정 할 만큼 칠천도는 수려한 해안변의 아름다운 경치와 농어업이 발달 하였던 곳이다. 어온의 온천수를 개발 하고 마을 마다 독특한 특징을 살려서 관광지로 개발 하면,세계적인 관광지가 될 것이다. 

 섬 주변에 양식어장이 기업화 되어 있고, 마을 전체는 지금도 대부분 농업이 주업이다.
  하청 장목과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해상 교통이 불편해서 고립된 생활을 하였다. 이웃마을과 하청으로 건너다닐 때는 노젓는 배를 이용 하다가, 통통배가 생겼고, 섬 마을 끼리는 옥녀봉 산을 넘어 걸어 다녔다. 그런 고통을 안 이봉목 군수가 1981년 새마을 사업으로 거제군청 도자로 칠천도 회주 도로를 개통 하였다. 도로가 개통 되자 하청 실전에서 칠천도 장곶으로 다니는 차도선이 생겼다. 그런 불편을 들어주기 위해서 칠천 연육교가 1996년에 착공 하여 2000년 1월1일 준공 하였다. 길이 455m 폭12m 2차선 대교가 개통되었다.
  칠천도 서쪽에 황덕도의 작은 섬이 있다. 이 섬에 길이 527m 폭은 5m정도로 총공사비 106억 원을 투자하여 황덕도와 연결하는 다리를 1914년 착공, 2015년 10월 19일 개통 했다.
  다리가 개통되기 전에는 고립된 섬 마을로, 돗 단 배로, 다니다가 노 젓는 배, 통통배로 이용해서 하청 장목 고현으로 다녔다. 바람이 많이 불거나 풍랑이 일면 오도 가지 못하고, 고립된 생활을 해 왔다. 그런 어려움 속에 살다가 칠천대교와 황덕도 다리가 개통되어 이제는 아름다운 휴양지로 변모하고 있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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