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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희 수필]⑭ '아파트에서 살다'윤석희:수필가/시인/신곡문학상수상/수필집「바람이어라」,「찌륵소」펴냄·눌산 시창작교실 수료

⑭ 아파트에서 살다
 
                                       윤 석 희

뿌리 없이 몸만 떠있다. 우주인의 동작처럼 유영한다. 십 삼층. 여기서 세상을 내려다 볼 때는 나도 영락없는 수퍼맨이다.
   내 집에 내가 들어서려는데 계단 입구에서 막아서는 것이 있다. 언짢다. 이놈의 에너지는 숫자인가보다. 먹여줘야 물러난다. 제가 먹던 것이 아니면 모른 척 시치미 땐다. 도무지 숫자가 생각나지 않을 때는 난감하다. 다른 이 들이 나타나 구원해 줄 때까지 서성거려야 한다. 낯선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사명감에 서슬이 시퍼렇다. 새로운 인연을 외면하는 융통성 없는 외골수가 답답하기만 하다.
   현기증이 난다. 승강기는 이것으로 우선 나를 제압한다. 거만하다. 애원하듯 행선지를 알려줘야 제 구실을 한다. 멈추지 않을까. 떨어지지 않을까 두렵지만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내색도 못하고 참는다. 사각의 틀 속에 홀로 갇혀 있으면 외로움이 극에 달한다. 그러나 사람들과 맞닥뜨리기라도 하면 더 난감하다. 인사든 너스레든 침묵이든 순간 포착을 빠르고 정확하게 하지 않으면 표정관리가 궁색해 진다.
   집 앞이다. 두툼한 문이 버티고 있다. 함께 나눈 추억이 없어서인가. 늘 보는 사람 기억할 때도 되었으련만 어김없이 점검에 든다. 제 주인이라고 봐주는 거 없는 엄격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숫자를 헤아려 눌러 본다. 열어주고도 머뭇거렸다간 다시 앵돌아 간다. 기민한 동작만을 수용한다. 조급증에다 신경 또한 날카로운 놈이다. 제 맘에 들지 않게 건드렸다간 어찌나 소리를 질러대는지 수습이 난감하다. 주눅이 든다. 기계치이며 행동까지 굼뜬 내가 환영 받을 리 없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다시 열어 줄 때까지 견딜 수밖에. 알량한 내 것 들을 지켜줌이고 나의 안전을 보살피고 있으니 고마움을 표해야 하나.
   무사히 들어섰으니 진땀부터 닦는다. 사람 우리 같지만 냉기가 없어 싫지 않다. 아래윗집에 감싸여 있는 듯 푸근한 느낌이다. 이것저것 둘러봐도 모두가 편리하고 간편한 것들이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대신해 주겠다고 대기 중인 문명의 이기들이 즐비하다. 모든 것이 원터치로 가볍게 해결되고 디지털 숫자로 표현되고 확인된다. 팔 개월이 지났건만 아직 작동해 보지 않은 가전제품들도 여럿 있다. 없어도 좋은 것들인지 꼭 써야 하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된다. 혼란스러워도 눈 딱 감고 단순 동작을 반복하고 익힐 일이다. 극단적인 편리를 추구하는 오토 시스템은 발걸음 하나 손놀림 하나라도 줄이려 애쓴 흔적이 보여 가상하기는 하다. 굳이 생각과 사유를 끌어드릴 필요가 없다.
   밤하늘의 별과 달도 누운 채로 만날 수 있고 눈앞에 펼쳐진 산의 능선과 언제라도 눈 맞춤을 할 수 있어 전망이 좋은 편이다. 가끔씩 고라니 친구들까지 숲에 놀러오니 누가 뭐래도 살기 좋은 곳임이  분명하다.
  내 마음이 이러한데 몸은 단호하게 거부한다. 마음은 변심을 감행했는데 몸은 쉽게 바뀌지 못한다. 숙면이 어렵고 호흡도 고르지 않고 맥이 빠진다. 자주 머리속까지 혼미해 진다. 일의 양을 줄여 제 안일을 도모함인데 마음을 따르지 않고 몸이 따로 논다. 아니 마음 가는 대로 묵묵히 순종만 하던 몸이 반란을 일으켰다.
  버리는데 걸린 세월이 오십 여년 이라면 익숙해지는 데 걸릴 시간도 이와 같을까. 몸이 훨씬 정직하다. 땅을 내려다보는 삶이 아닌 땅을 디디며 사는 삶을 그리워한다. 이 옹고집이 부럽고 경이롭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저 세월 따라  편리함을 추구하며 살아 갈 밖에. 드디어 나도 아파트에서 산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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