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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곽호자] 싸릿대 회초리곽호자)거제면출생/전)초등교사/거제대평생교육수필창작수료/수필과비평신인상(2011)/계룡문학회회원/눌산문예창작교실수강/수필과비평작가회현거제지부장

일찍이 아버지와 사별하신 어머니는 친정살림을 맡기로 하고 딸 둘을 데리고 외가와 살림을 합쳤다. 외갓집 돌담장 너머에는 초등학교가 있었다. 담 한쪽을 개구멍 같이 헐어 학교를 다녔다.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면 그 구멍 사이로 학생들이 교실 화병에 꽂을 찔레꽃을 얻으러 오곤 했다. 우물물까지 주전자에 담아 나르던 그  좁은 담 구멍이 대문처럼 넓혀질 무렵 어머니는 하숙 업을 시작했다.

집 위 채, 아래채의 방이 남아돌아 비워두느니 시작한 일은 의외로 살림에 보탬이 되었다. 하숙생은 주로 관공서 직원들과 학교 선생님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해가 바뀌면 이동(移動)도 잦았다. 바통을 받은 후임자가 다시 새 식구로 입식을 하며 들고 났다. 집안은 늘 북적였다. 그러나 잠자리와 식사를 병행하니 일은 수월찮았다. 어머니의 발걸음 소리가 전에 없이 빨라졌다. 조금씩 우리가족이란 틀이 변해지는 듯 했다. 그들이 우선이어야 하고 그들이 대접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외로움을 탔다. 궤도에서 일탈할 수없는 어머니가 가엾기도 했다. 사춘기와 맛 물린 십대의 고민은 자꾸만 불어났다. 그런 날은 어머니의 눈을 피해 할머니 방으로 들어앉았다. 할머니의 구수한 냄새에 취하는 시간은 그럴 수 없이 행복하였다.

하숙생이 자꾸 불어나면서 어머니는 필요 이상으로 나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마루에 걸터앉는다거나 다리를 흔들기라도 하면 불호령을 쳤다. 버르장머리가 없다는 것도 이유지만 중학생인 딸년의 종아리가 아래채 하숙생들의 눈에 비춰지는 것이  싫어서였다. 조신하지 못한 행실로 비춰질까 극성은 날로 숭늉 끓어오르듯 했다. 곰방대 물고 위엄 부리시던 외할아버지의 유전자를 닮아서일까. 더욱 엄격한 어머니로 거듭났다. 가출이라도 해서 눈 밖을 벗어나고 싶었어도 그럴 용기가 없었다. 애비 없는 자식 행여 흉잡힐까 전전긍긍. 입을 벙긋했다간 뒷감당이 무서웠다. 복종이란 굴레에서 벗어나는 행동이나 한마디 대꾸는 엄감생심이었다. 무엇이 잘못이고 무엇이 옳은가. 어머니와 나 사이에 바늘 구멍만한 틈이 생긴다고 여겼다. 회초리가 내 종아리에 가느다란 실금을 내고 난 뒤부터였다.

코 흘릴 때에도 회초리를 맞지 않았던 체벌은 여중생의 오금을 조이기에 충분했다. 억울하고 서러웠다. 싸릿대가 있는 뒤란에 회초리를 꺾으려 가실 때마다 심장이 풀무질을 해댔다. 지례 겁나 옆집으로 도망을 가기도했다. 친구와 놀다 늦게 오거나 동생과 말다툼을 해도 회초리를 들었다. 그때마다 할머니가 치맛자락으로 감싸주셨다. 하지만, 싸릿대 회초리의 위력은 매번 실속이 없었다. 살갗에 닿는 알싸하니 매운 감촉은 개미에게 물리는 그 느낌뿐이었다. 손목의 힘을 빼서다. 모성의 작용이었을까. 액션만 현란했지 실속 없는 퍼포먼스에 그쳤다. 그 벌 내림이 끝나면 어머니는 땀범벅이 되었다. 그건 매로 다스려야 하는 안타까움 때문이었으리라. 눈물이기도 하고 당신의 자책이기도 한 땀. 그냥 더워서 흐르는 땀이 아니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남달리 유난스럽게 구속? 당했던 내 처지가 신물이 났는데도 지금 그 땀 냄새가 그립다  

얼마 전에 제비의 생태를 티브이에서 보았다. 새끼를 낳자 어미 제비는 밤낮으로 둥지 밖을 지키고 있었다. 보금자리를 해(害)하려는 무리수의 기습적인 습격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새끼가 날갯짓을 스스로 할 때까지 먹이를 물고 오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창공으로 비상할 수 있는 지혜를 가르치느라 둥지 밖에서 엄호하며 신호를 보내는 모성은 측은하기 했다. 나라는 존재는 할머니나 어머니에게 말로 다 할 수없는 제비새끼였다. 자식이란 얼마만한 무게로 존재하는가. 내 나이 어머니 나이 그쯤에 도달한 지 오래다. 그 무한한 무게에 비례하는 회한을 이제는 조금씩 덜어내는 중이다.

지금에 와서 엄한 다스림에 제대로 기(氣)를 펴지 못하고 자란 것을 원망하지 않는다. 복종의 굴레는 조금 불편했을 뿐이었다. 그 기간은 짧았다. 순종과 복종. 나를 오늘에까지 온전하게 지탱할 수 있게 한 원천이었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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