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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순련교육칼럼③]'자녀교육에서 가장 위험한 발상'원순련:거제대학교겸임교수(교육학박사)

      ③자녀교육에서 가장 위험한 발상
                                        거제대학교겸임교수 원순련

부모에게 자녀의 바른 성장은 최고의 선물이다.
결혼은 하고 나면 아름다운 가정을 이끌어가며 생기는 희망과 꿈 중 자녀성장에 대한 기대와 희망은 어쩌면 모든 가정의 공통분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자녀교육에 있어 가장 위험한 발상은 바로 부모의 욕심이다, 언젠가 1학년 담임을 했을  때 생긴 일이다.
 “선생님, 우리 엄마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늘 1등을 했대요. 그런데 제가 공부를  못하는 것은 아빠를 닮았기 때문이래요.”
  한 친구가 이렇게 말하자 곁에 있던 친구의 대답에 담임인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를 만큼 당황하고 말았다.
 “야! 니네 엄마하고 우리 엄마하고 초등학교 같은 반이라고 했잖아. 우리 엄마도 항상 시험 치면 우리 엄마가 1등을 했다고 하던데‧ ‧ ‧ ‧ ‧ ‧  선생님, 1등이 두 명도 되나요?”
  아이들의 이 해맑은 대화에 어떤 대답을 해 주었어야 했을까?
 부모는 자녀 앞에서 당당해 지고 싶다. 특히 지금 내 앞에서 서 있는 이 시기의 자녀들 앞에서  엄마아빠는 너 만한 시절에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다는 것을 과시 하고 싶어진다. 3학년 때 엄마가 이 정도였으니 너도 엄마보다 앞서야 한다는 무언의 과시다.

  자녀 교육에 있어 가장 위험한 발상은 바로 자녀에 대한 욕심이다. 그리고 아이의 희망과 부모의 희망이 일치하지 않을 때이다.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 갇혀서 죽은 이유를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인 이유라고 하는데 그 사실도 정당한 이유지만 그것보다 더 앞서는 것은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너무 큰 부담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영조는 정통 왕가의 계열이 아니다. 숙종의 둘째 아들로 숙종과 숙빈 최씨 사이에서 태어나다 보니 영조는 스스로 그 탄생의 사실에 위축 되었고, 누군가 혈통의 정당성을 앞세워 자신을 폐위시키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고 그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압박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런 영조는 자신의 아들 사도세자만은 누구에게도 정당하고 당당하고 문무를 갖춘 능력있는 왕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영조는 늘 세자가 되기 위한 각종 준비에 사도세자를 시험했고 사도세자는 그런 영조로부터 압박과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만 했다. 영조는 자신의 세자가 뛰어난 학문과 지식으로 신하들을 통제할 수 있는 현군이길 희망했으나 사도세자는 자라면서 사실 공부보다는 사냥을 좋아하고 무인기질이 강했다. 사도세자는 오랜 시간동안 세자로서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으며 살아야 했다. 결국 부모의 욕심이 자녀의 성장을 조기부터 막아버린 셈이다.

 관련된 영화를 보면 뒤주에서 사도세자가 죽어갈 때 영조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바로 자녀를 바르게 보지 못함에 대한 후회였다. 결국 부모의 욕심이 자녀의 앞길을 죽음으로 몰아간 셈이다.

  반면에 세종대왕의 경우는 ‘자기주도적 학습 원리’를 설명해 주고 있다. 양녕, 효령, 충령의 세 아들 중 충령은 세자가 될 서열은 아니다. 그러기에 세자가 될 준비도 필요하지 않았고, 궁중의 법도와 최소한의 예절만 배우면 되었지 제자기 되기 위한 학문에 시달릴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특히 더 중요한 사실은 부모의 끝없는 욕심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기에 충령은 자신이 좋아하는 많은 책을 마음껏 읽었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시험하고 즐기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으로 믿어진다.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찾아서 하는 것, 무엇보다도 부모님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관심 있는 분야의 공부에 대한 시간표를 짜고, 학습방법을 찾고, 실험하고 관찰하고 결과를 알아가는 학습방법을 ‘자기주도적학습’이라고 한다. 세종대왕이 된 충령이 바로 ‘자기주도적 학습’을 스스로 경험한 것이다.

  세종대왕은 이런 자기 주도적 학습의 결과로 다양한 분야에서 백성을 위한 업적을 쌓았다. 각종 천문과 관련된 천문기기를 탄생시켰고, 정간보를 만들어 우리 음악을 정비하였으며, 농사법, 세법, 한글창제 등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분야의 미비한 것을 정비하여 정확한 우리 것을 만들어 놓았다. 심지어는 작은 재판을 할 때에도, 벌을 내릴 때에도 지혜를 독서에서 얻어 지혜롭게 풀어나갔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바로 많은 책을 독파한 독서력과 ‘자기주도적 학습’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자기주도적 학습’의 결과는 자신의 학습에 만족감을 얻으며 행복해 진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찾아간 학습이다 보니 그 결과에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는 창의력을 유발시키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진다. 이 모두가 세종대왕이 어린시절부모 지나친 기대에 시달리지 않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었던 결과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자녀교육에서 가장 위험한 발상은 자녀에 대한 지나친 욕심을 갖는 것과, 자녀의 희망과 부모의 희망을 혼돈 하는 것이다.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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