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왼쪽
오른쪽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칼럼 윤석희 수필
[윤석희 수필16] '원초적 본능'윤석희:수필가/시인/신곡문학상수상/수필집「바람이어라」,「찌륵소」펴냄·눌산 시창작교실 수료

                   원초적 본능
                                               윤    석    희

요란하다. 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양철 지붕에 소나기 퍼붓듯 한다. 발가락이 붙어 버렸다. 하나가 되고서도 경련이 인다. 달팽이처럼 몸을 말아도 뼈 속까지 한기가 파고든다. 먹은 음식이 얼음덩이가 되어 핏속을 휘젓고 다닌다. 말은 흩어져 버리고 의식까지 희미해져 천장이 핑글핑글 돌고 있다. 오십 평생에 처음 겪어 보는 추위다. 지독하다. 야속한 태양은 낮 동안 내 주었던 열기를 깡그리 거두어 갔다. 볕이 현기증 나게 뜨거웠었다. 하지만 태양이 종적을 감추자 서릿발 같은 냉기로 별빛만 도도하다. 냉혹한 순환이다.
  이집트의 세인트 캐틀린 마을. 운하로 알려진 수에즈에서 미니버스로 일곱 시간을 사막으로 달려왔다. 바위산 사막지대. 미처 모래가 되지못하고 굴러다니는 자갈들 세상 이다. 생명이라곤 깃들 것 같지 않은 물기 없는 대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유형의 땅이다. 그래도 장중한 산세에 압도당하고 만다. 푸름을 찾아 볼 수 없는 흙 갈색의 대지에서 모세가 아니어도 무언가 깨달음을 얻을 것 같은 예감으로 설렌다. 넌지시 드러나는 암시가 신비의 기운으로 감돌았다.
  모세가 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곳에 세워진 성 캐틀린 수도원. 광야에서 십계명을 받았다는 시나이산 초입에서 경배자 들을 반기고 있다. 그곳의 떨기나무는 불모를 극복하고 생명을 품은 자궁 속 같은 촉촉함으로 우리를 술렁이게 한다. 이슬람 세계에 있는 기독교 성지. 극한의 대비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생경한 땅. 수도원은 이미 일반인 숙식이 패쇠 되었고 콥트교 수도사들의 수도장이었다.
  깜깜할 때 도착해서 급하게 찾은 호텔의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성지 순례 길에 나선 기독교인 들이 많아서였다. 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호텔에 들어온 부식 트럭의 야채 더미 속에 파묻혀 마을로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을 따라 겨우 찾아 낸 곳이 베드윈 캠프다. 주로 젊은 배낭 여행자들이 묵는 캠핑 장소다. 광야의 주인인 유목민의 후예들, 베드윈 족들이 운영하는 간이 숙박 시설이다. 인도의 모래사막에서 야영한 경험이 있는 터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달랐다.
   기온은 극과 극이 서로 맞닿아 있었다. 침낭 위에 담요가 세 겹이니 어지간하기도 하련만 어림없다. 모포 속이 얼음 위의 동태처럼 뻣뻣하다. 절박하다. 밤을 이겨 내야 한다. 살아남을 방도를 찾아야 한다. 하루 밤을 떨면서 밝힌 터라 더욱 어쩔 바 모른다. 버너에 불을 지피고 다시 또 밥을 짓는다. 물을 끓여 페트병에 옮긴다. 밥이 들어 있는 코펠을 비닐 봉투에 싸고 물병도 수건에 싸서 담요 속 발밑에 휴대용 난로로 삼는다. 한결 훈기가 돈다. 이제 살았다 싶었는데 두어 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사그라진다. 수면을 취하기는 역부족이다.
  잠을 청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마지막 방법으로 사람의 체온이 필요했다. 물론 남편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사랑은 꿈도 아니고 열정도 아니고 더 이상 낭만도 아니었다. 처절한 삶 그 자체고 꿈틀거리는 생명체의 움직임 단지 그것뿐이다. 생명의 보다 근원적인 힘, 에너지가 절실했다. 절대적인 필요 속에 잡념이란 있을 수 없었다. 사랑의 본질과 대면한 것이다. 그것은 완전한 합일을 이루는 순수였고 생명의 원천이었다. 또한 유목민이 되어 광막한 산야를 떠돌다가 맞닥뜨린 영혼의 갈구였다. 태초에 사랑의 유형은 이렇게 하나였으리라. 해석될 수도 헤아릴 수도 없는 단순한 것이었음이다. 채색되지 않고 가미 되지 않은 날것. 비록 거칠지만 변할 요인조차 전혀 없는 요지부동한 것이었다. 불변의 사랑 확고한 사랑만이 세상에 필요한 게 아닌가. 나눠지고 찢겨 나가고 더러워진 현대인의 세련되고 근사한 사랑이 아니었을 것이다. 말을 타고 초지를 찾아 헤매던 방랑의 영혼들이 죽음 같은 삶 속에서 피워 낸 원초의 빛이었을 것이다. 일체의 타산도 욕망도 배제된 순백의 생명의 나눔. 탯줄로 이어지는 생명의 이음. 체온은 핏줄이었고 생명선이었다. 풀 한포기 살아 낼 수 없는 불모의 땅에서 인간의 사랑은 자연과 신의 시험을 극복하고 그것 하나로 잠을 자는 것이다. 사랑으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면서. 그 힘 하나로 살아 내는 것이다. 황무지의 유일한 희망은 이것뿐이었다. 절실한 사랑. 지독한 사랑. 함께하는 체온 없이는 보존될 수 없는 처절한 생명들.
  우리는 꿈도 없는 편안한 잠을 맞았다. 생명의 신비를 체험했고 비로소 가슴 가득 광야를 품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아 신의 뜻을 퍼뜨렸듯 나도 이 사랑하나 배낭 속에 챙겨 넣을 것이다. 이것 하나면 세상 모든 추위 견디며 살아 낼 듯싶다. 그리고 세상에 전하고 싶다. 온 누리에 계명이 번지듯 나누어 갖는다면 모두 편안한 잠을 자게 될 것이라고.
   이틀 밤을 보내며 일정을 예정대로 마쳤다. 첫차를 타기 위해 새벽을 깨우며 나오는데 마당 한 귀퉁이에서 또 하나의 절실한 사랑을 만났다. 우리는 그래도 지붕도 벽도 있는 간이 방에서 밤을 보냈다. 천장도 없는 텐트 속에서 서로의 체온이 되어 주는 소리가 도란도란 들려오는 게 아닌가. 감격이었다. 얼마 안 있어 텐트 위에 쏟아질 태양의 열기를 생각하니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콥트교; 이집트를 중심으로 하는 원시 기독교.
     베드윈족; 주로 시나이 사막에서 천막을 치고 이동하면서 양이나 소를 치던 유목민
.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정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