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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희 수필18] '질투'윤석희:수필가/시인/신곡문학상수상/수필집「바람이어라」,「찌륵소」펴냄·눌산 시창작교실 수료

                        질   투

                                      
  윤     석    희

기겁할 일이다. 유치원에서 엄마 그리기를 하는데 아들놈이 두 엄마를 그린 것이다. 동무들이 엄마가 둘이라고 놀려대고 녀석은 둘이 맞다며 우겨대니 다툼이 일고 말았다. 계속되는 놀림에도 굴하지 않는 태도에 보육사들이 당황해서 내게 연락을 하게 되었다.
  .벨소리가 요란하다. 김치 담그던 손을 제대로 닦지 못하고 달려간다. 돌아와 보니 아들 녀석은 고개를 젖히고 김치 가락을 먹고 있다. 나를 보자 고춧가루 묻은 손가락을 황급히 빤다. 매워서 혀를 할딱거리면서도 흡족한 표정이다. 옆에선 세 살배기 딸아이가 입을 벌리고 저도 달라고 아우성이다.
   이럴 때 필요한 교육이 아니던가. 사내 녀석이 체신 머리 없이 조리중인 음식을 넘볼 수는 없다. 고개를 높이 들고 음식을 먹는 것은 볼품없는 행동이다. 손가락을 빠는 것은 결코 위생적일 수가 없다. 더군다나 동생 앞에서 오라비의 모범을 보이지 못했다. 딸네 집에서는 야단치지 않는다고 녀석이 항변한다. 먹고 싶은 만큼 먹으라 하고 “아아” 하면서 입에 넣어 주기 까지 한단다. 묵살해 버리고 확고부동한 자세로 교육 내용을 반복 주입시킨다.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버무리는 김치 따라 눈만 부산하게 왔다 갔다 할 뿐 손을 내밀지도 입을 벌리고 다가서지도 않는다.
   아들 녀석의 아랫동네 출입이 잦아졌다. 동네에 하나뿐인 가게가 그곳에 있었다. 심부름을 달가워하지 않던 녀석이 자청하는가 하면 기회를 엿보다가 도망치듯 달려가곤 했다. 딸네 집을 가기 위함이다. 내려가서는 함흥차사가 된다.
  딸네 집은 딸만 넷인 후덕한 아주머니 집을 이웃들이 부르는 이름이다. 아들 녀석이 동네를 지나다 우연히 그 집의 김치 담그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네 딸에 엄마. 이렇게 다섯 모녀가 양푼을 가운데하고 둘러앉았다. 김치 담그는 것을 지켜보기 위해서다. 감정사들은 어미가 찢어 주는 김치를 맛나게 먹으며 품평에 열을 올린다. 제가 먼저 먹어 보겠다고 새 주둥이처럼 내민 입속으로 어미는 차례차례 김치 가닥을 넣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는 웃음꽃을 피우며 정담을 나눈다. 거기에는 학교 소식도 들어 있다. 유치원의 일과도 알 수 있다. 해야 할 숙제도, 준비물 목록도 다퉈 가며 바쁘게 쏟아 내었다. 어미는 아이들의 일상을 양푼 가득 주워 담는 것이다.  딸네 집의 오후 행사는 이렇게 계속되었다. 그 집 아저씨가 것절이를 좋아해서 앞마당에서는 배추가 자라고 있었고 딸 네 댁도 김치 버무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부러움으로 바라보는 아들 녀석을 맞아들여 합류 시킨다. 계집아이들만 있는 그림에 사내아이가 끼어드니 구색 맞춘 풍경이 아닌가.
   물론 천성이 따뜻하고 품이 넓은 딸네 댁은 아이들을 무던히도 좋아 했다. 동네 아이들이 지나가는 것만 보아도 먹을 것을 주고 코도 닦아주며 보살폈다. 하지만 우리 아들 녀석 같은 딱 그런 놈 하나 갖는 게 소원 이라 누누이 말했었다. 은근히 부러워하기도 하고 더러는 시샘도 냈다. 그래서인지 자주 업어 주고 씻기고 가끔 새 옷을 입혀 보내기까지 했다. 그 집 딸아이들까지 자상하고 다정한 누나 동생이 되어 아들 녀석의 넋을 빼앗아 갔다. 어디 그뿐인가. 큰 엄마라 부르며 깍듯이 아들 대우를 받고 있었다. 매사에 엄격한 나를 피해 양팔 벌려 품어 주는 둥지를 찾은 것은 아닐까. 내가 옳지 않다고 나무라고 말리는 것들이 무참하게 빛을 잃었다. 마을에 갔다 오는 날이면 물을 많이 들이키곤 했지만 아들 녀석의 표정은 밝고 신명이 나 있었다.
   거기에서 먹고 온 것은 짜고 매운 김치라 아니라 따뜻하고 푸근한 무엇이었다. 화목한 집안의 훈기였을까. 아니 김치이기도 하다. 그 것은 정성과 사랑과 보람으로 버무린 영혼의 양식이 아닌가.
  외딴집에서 사는 아들 녀석은 시끌법석한 사람 냄새가 그리웠던 모양이다. 딸네 댁의 살가운 보살핌도 편안했을 것이다. 돼지우리에서 나오지 않는 엄마가 밉기도 했을 것이고 보채기만 하는 누이동생이 귀찮았을 것이다. 적적하고 썰렁한 분위기에서 도망치고 싶었으리라. 메마른 엄마의 눈길은 냉랭하기만 했으니 다섯 살 베기 여린 마음이 부드러운 데로 쏠린 것이다.
 
  딸 네 댁이 미웠다.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아니 부러웠고 마침내 질투가 났다. 그리고 아이의 가슴 속에 있는 또 하나의 엄마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기였다.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 따져 봐야 했다. 지혜와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다. 하나뿐인 엄마가 되기 위해서.
   생김치를 유난히 좋아하는 녀석이다. 유치원에서 돌아올 시간쯤에  배추를 절여놓고 기다려야겠다. 보는 앞에서 갖은 양념으로 맛깔스럽게 버무릴 참이다. 녀석의 손을 씻게 한 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하리라. 하늘 향해 젖힌 입에 ‘ 이랴 차차차차 자 들어간다 ’. 하며 넣어 줄 것이다. 아니 김치에 묻은 고춧가루를 빨아내어 딸아이 에게도 먹여야지. 그리고 아주 많은 것들을 궤도 수정해야 할 것이다. 아늑하고 푸근한 둥지에 새끼들을 온전하게 품기 위해. 내가 고집하던 많은 것들을 가차 없이 내 던져 버렸다. 이 모든 것들이 딸 네 댁에 대한 질투 때문 이었을까.
   전화가 왔다. 엄마 김치가 먹고 싶다며 서른이 다 되어 가는 녀석이 어리광이다. 허전한 모양이다. 비록 멀리 있어도 오늘은 녀석을 위해 김치를 담아야겠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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