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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광미 수필]<18> '성자할매'우광미/수필가/궤적을 찾다 저자/ 한국 문인협회 회원/2020경남신문신춘문예수필당선자

                        성자할매

두 눈으로는 볼 수 없다. 한 눈을 감아야 한다. 사진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담고 싶어 하고 욕심을 내면서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 인물사진 촬영이다. 대상이 가진 내면의 감정까지도 나타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초상권에 예민하여 촬영 대상에게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거리에서 멋진 인물사진을 찍을 최적의 순간을 포착하고도 놓치거나, 피사체가 긴장하여 자연스러운 표정을 잃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사진을 찍을 때 한쪽 눈을 감는 이유는 마음의 눈을 위해 비워두는 것이다.” 했다. 사진은 찍는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담는 일이다. 가장 좋은 건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의 정서가 일치할 때이다. 내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 성자 할매와의 인연이다. 한자 표기는 그도 나도 모르지만, 나는 성자(聖者) 할매라고 부른다.

  성자할매는 하동 사람이다. 얼마 전 문학관에 몇 달을 머무는 동안 그녀를 만났다. 바지런함이 비길 데 없고 낙천적인 성격이다. 문학관 청소를 도맡아 하고 있는 그녀는 깡마른 체구에서 야무진 손끝이 느껴진다. 그녀는 자신의 일터와 집만을 오간다. 섬진강 십리 길에 떨어지는 꽃잎이 바람의 길 따라가도 여간해서는 마을 밖을 나가지 않는다. 오래 전 한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은 후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 그녀는 나에게 자연도감이다. 지천으로 나 있는 풀과 꽃 이름을 척척 가르쳐 주었다.

  매일 아침이면 심어 놓은 모종이 얼마나 자랐는지 텃밭으로 향했는데 내 발소리가 들렸는지 모종 아래 그녀가 놓고 간 거름이 소복이 덮여 있다. 한나절을 모시 잎 딴다더니 오후엔 내 방문 앞에 놓인 봉지 속에 모시 떡이 얌전히 들어 앉아있다. 뚝배기에 끓고 있는 성자 할매 강된장이 세월의 무게를 담아낸 구수한 냄새를 낸다. 힘든 노동으로 번 돈은 사업 실패로 고향으로 들어온 아들과 손녀들의 차지다. 그런 자식도 대청마루 한구석에 놓인 성주독처럼 보살핀다. 굽은 허리 더 낮게 엎드려 너렁청한 대청마루를 들기름 묻혀 닦으면, 어느새 반지르르 윤기가 난다.

  그녀를 대상으로 셔터를 누를 때 긴장감을 풀어주기 위해 수시로 교감을 나누었다. 마침 그녀가 쉬는 날 친구와 밭일을 할 때 빛의 세기가 알맞고 분위기가 좋아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가는귀가 먹어 자신의 말만 하는 친구는 비료포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눈에 거슬려 아무리 치우려 해도 사력을 다해 움켜쥐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고집이 몹시 센 분이구나 속으로 생각하고 사진을 찍었다. 얼마지 않아 먹장구름이 몰려와 서둘러 작업을 마쳐야 했다.

숙소로 향해 걸어오던 길에, 그 비료포대의 사연을 들었다. 다 키운 자식을 교통사고로 잃고 절망에 빠져 바깥 출입을 하지 않고 지내다 석 달 만에 친구가 밖으로 나왔다 했다. 본다고 해서 다 보이는 게 아닌가 보다. 어쩌면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소망이 친구분의 비료포대에 들어 있지는 않았을까. 어쩌면 나는 마음의 눈을 비워두지 못했나 보다.

  오전 내내 비가 내린다. 외출 후에 돌아와 보니 벗어둔 운동화가 볕 잘 드는 댓돌 위에 놓여있다. 바람이 들이쳐 처마 밑에 둔 운동화가 빗물에 젖은 모양이다. 봄볕이 신발 위로 쏟아지고 있다. 그녀에게서, 검불 냄새나는 머리 수건을 쓰고 정지문 앞에 서있는 우리의 어머니를 본다.

  그녀는 마을을 벗어나지 않는다. 카메라의 정면을 응시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오래 전 시력을 잃은 터여서, 곁에 있는 누구에게라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먼 곳 출입을 삼간단다. 그러나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것을 보기 위해 그녀는 이미 마음의 눈을 비워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이 거슬러 오르는 법이 없듯이 강처럼 흐르는 그녀. 하루치의 노동에 감사하고 만족하며 자연에 순응하는 삶. 정직한 성자할매의 모습에 절로 숙연해진다. 나도 한 눈을 감음으로써 마음의 눈이 밝게 뜨이려나 사진을 찍을 때만이라도 그녀처럼.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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