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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거제시조選②]이덕재- '부음'▲이덕재:2017년'현대시조'등단/거제문협,한국문협회원/거제시조문학회부회장/시조집'개똥벌레’

[금요거제시조選]

          부 음 

 

 

 

 

 

 

     이   덕   재
고향마을 이장님의 새해 첫 메시지는
아들네에 삼년 머문 동수어른 부음인데
대문간 삐죽이 나온
담쟁이가 떠오른다.

설날에 세배하고 받은 돈이 생각나서
입었던 양복 속에 넣어둔 돈 만져보니
쉰여덟 나이에 받은 이만 원이 새롭다.

수백 명  살던 마을이 이제는 마흔 가구
새마을운동을 한 많았던 어른들 중
마지막 지킴이였던
그 어른도 떠나고.

귀촌은 늘어나도 마을은 졸아든다
우편물 쌓여가던 그 집 문간 담쟁이의
발그레 물들던 모습
이제 볼 수 없겠지.!

이덕재 상세 프로필
1959년 거제동부출생/한국방송통신대학교(농학과) 졸업/K-water 퇴직/구천골(농장) 운영/능곡시조교실 수강/2017년 '현대시조'로 등단/거제문협, 한국문협 회원/거제시조문학회 부회장/시조집 '개똥벌레'

◎ 시조(時調)라는 말의 내력

 시조는 그것이 지어지기 시작된 고려중기 또는 말기부터 조선의 거의 말기까지 오랜 동안 고유한 이름이 없이 지나 왔다. 그러다가 조선 영조 때 문신 신광수(申光洙)의 문집인 석북집(石北集)에 처음으로 나타난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이때의 ‘시조’는 창곡의 이름이지 시가의 이름이 아니었다.
 그 이전에는, 특히 시가로서는 독립된 명칭 없이 그저 ‘―가(歌)’니 ‘―곡(曲)’이니 ‘―요(謠)’니 하여 어떤 말 끝에 그저 노래라는 뜻의 접미자를 붙여 쓰다가 뒤에 ‘단가(短歌)’라는 말이 많이 쓰이었다.
 고려 때에도 정몽주(鄭夢周)의 단심가(丹心歌)니 이방원(李芳遠)의 하여가(何如歌)니 하여 비록 후세의 호칭이기는 하나 ‘―가’를 많이 썼고, 조선의 대표적 시조 작가인 정철(鄭澈)은 훈민가(訓民歌)를 지었고 윤선도(尹善道)는 오우가(五友歌)와 산중신곡(山中新曲), 그중에 하우요(夏雨謠) 등을 지었다.
 심지어 시조집의 이름에조차도 청구영언(靑丘永言)이니 해동가요(海東歌謠)니 가곡원류(歌曲源流)니 하여 시조란 말은 전혀 없었다.
 ‘시조’라는 이름이 처음 공식화한 것은 최남선(崔南善)이 편찬한 〈시조유취(時調類聚)·1928〉일 것이다. 최남선은 그가 일본 동경에서 발행한 〈대한유학생회보·1907〉에서도 시조를 중국의 〈시전(詩傳)〉식으로 ‘국풍(國風)’이라했지 시조란 말을 쓰지 않았고, 그가 최초로 발행한 자신의 창작 시조집인 〈백팔번뇌(百八煩惱)·1926〉에도 없던 명칭이다.
 그러나 시조라는 이름이 시조창에서는 일반화한 것 같으니 최남선이 시조유취를 엮을 때도 문학 작품으로서의 시조가 아니라 창을 위한 자료집으로 전래 시조를 수집하여 내용따라 분류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시가로서의 시조집은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이은상,1932〉이 그 효시(嚆矢)가 아니었을까 한다.(이후 다음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
현대시조 발행인

이덕재 시인은 늦깍이(58세)로 2017년 〈현대시조〉가을호로 등단했다. 하지만 2019년 12월에 〈개똥벌레〉라 題한 시조집을 상재하였으니 시조시인으로서의 저력을 가늠할 수 있다. 시인은 K-water에 근무하다 작년말 정년퇴임 한 것으로 안다.

자연과 함께 하는 어성매 같은 농군 /밭으로 또 숲으로 바람따라 노니면서/ 시조와 늘 벗하는 그런 사람이고 싶습니다/ 는 〈개똥벌레〉의 ‘시인의 말’에 나오는 글로 ‘어성매’는 막 코뚜레를 한 길들지 아니한 암소를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 시인은 농군이 되었다.

글쓰기에서 맨 먼저 갖추어야 할 조건이라면 맑은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시력일 것이다. 이 시력은 정직한 마음가짐에서만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정직함은 글쓰기에서 갖가지 결점을 상쇄하는 미덕이 될 수 있다.

글쓰기에서 가장 큰 결점은 바로 ‘거짓’이라고 말한다. 글을 쓰면서 자기가 알고 느끼는 것들에 대해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면 작품도 그렇지만 그 작가적 수명도 오래 가지 못한다. 시인은 정직한 마음가짐에서 비롯되는 시력을 지녔기에 그의 시엔 거짓과 꾸밈이 없다.

시조 〈부음〉은 4수 연작으로 이루어졌다.

첫 수는 “노환으로 고향을 떠나 아들네에 삼년 머문 동수어른 부음”에서 출발하여
“대문간 삐죽이 나온 담쟁이”를 떠올리며, 둘째 수엔 “동수어른이 고향을 떠나기 전 세배 가서 받아 간직하고 있는 세뱃돈을 기억하고 확인해본다” “쉰여덟에 받은 이만 원”이 새롭게 만져지고, 셋째 수엔 “새마을운동을 한 어른들 중 마지막 지킴이어른도 떠난 아쉬움”을, 넷째 수엔 “귀촌은 늘어나도 폐가 또한 늘어나는 고향마을, 우편물만 쌓여가는 그 집 문간 발그레 물들던 담쟁이”를 다시는 못 볼 안타까운 심사를 읊었다.

시조를 창작해본 사람이면 4수 연작(連作)이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유장한 호흡을 유지하기가 어렵기에 “생각을 엿가락처럼 늘여 낸다고 하여 다 연작 시조가 되는 것도 아니고, 이말 저말 아무렇게나 끌어다 놓는다고 하여 그 말들이 모두 조화되거나 통일을 이룬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인근 고성출신 서벌(徐伐) 시인은 그 어려움을 토로했다.

감동을 주는 시를 쓰려면 각자의 체험이 중요한 몫을 한다. 시조 〈부음〉은 노환으로 고향마을을 떠나 아들네 집에 삼년 머물다 돌아가신 동수어른에 대한 추억을 무리 없이 그려낸 수작이다.담쟁이를 시적 오브제로 참여시키고 있는 솜씨가 예사롭지 아니하다. 공자가 말했다. 하나의 체험에는 반드시 하나의 지혜가 따른다고.... -<능곡 이성보 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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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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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하지기 2020-03-27 09:37:56

    금요거제시조가 고단했던 한 주를 정돈해주는 느낌입니다. 맑은 눈으로 사물을 대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해야겠다는 다짐까지 해 봅니다~~~^^   삭제

    • 허원영 2020-03-27 08:18:19

      비내리는 금요일 아침 진솔한 시조 한편으로 시작합니다. 시인의 시조 속에서 추억과 경험을 공유 합니다. 봄이되니 저 역시 아버지 산소에 한번 가봐야 겠습니다.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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