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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희 수필19] '천국과 지옥'윤석희:수필가/시인/신곡문학상수상/수필집「바람이어라」,「찌륵소」펴냄·눌산 시창작교실 수료

                         천국과 지옥
                                               
 
윤      석     희

 하늘과 땅이 영원히 마주보며 만날 것 같지 않아 보이는데 수평선이나 지평선에서 보면 그게 아니다. 아니 하나가 된다. 천국과 지옥이 상반된 개념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일상 속에서 하나이기도 한다. 내 마음 속에서도 하루에 몇 번씩 두 곳을 오르내리며 극과 극을 체험한다. 평상심을 잃고 허적거릴 때는 지옥에 발을 내딛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마음이 고요로워 지기만 하면 어느새 세상은 아름다운 낙원이 되어 준다. 모든 것이 한 뼘도 되지 않는 마음 속 조화가 아니던가.
 열나흘 장마당에 나서니 정월 대보름이 널려있다 수수며 조 콩, 팥 등의 각종 잡곡이 펼쳐져 있고 고구마 줄기, 호박 ,가지, 아주까리 잎 ,취 말린 것 등 나물거리들이 풍성하다;. 땅콩, 호두, 잣, 엿. 어린것들은 제 마음에 드는 부름거리를 달라고 보채고 어미들의 발걸음은 부산하고 바쁘다. 언제보아도 시장풍경은 활기차다. 우리 네 세상살이 냄새가 진하게 베어나고 고단한 삶의 애환이 배경처럼 깔린다. 휘적휘적 구경만 다녀도 지루하지 않다.
 전문 장사꾼들은 물론이려니와 대목장이려니 촌 아낙들과 할멈들이 집안에 있는 소소한 것들을 꾸려 모두들 나섰나 보다. 발 디딜 틈이 없다. 살려는 사람이나 팔려는 사람의 수가 막상 막하다. 넉넉하게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내어 놓고 필요한 것들을 마련하려고 애써 마음먹고 나선 듯하다.
 아이를 업은 앳되어 보이는 새댁이 양동이를 들이밀며 할멈 들 속으로 파고든다. 옆의 할멈이 양은 양동이를 밀어 제친다. 어림도 없다는 단호한 기세다. 얼굴이 붉어진 새댁도 비적비적 기어드는 폼이 물러 설 기미가 아니다.
 “좋은 말 할 때 비켜 나거래이 오이.” 할멈이 고함을 내지른다. “함께 먹고 살아야지 이 땅이 죄다 할멈 거 아니 잖여 ”맞받아친다. 드디어 난장이다 양동이 속의 흙 묻은 무들이 대굴대굴 굴러가고 비닐봉지의 토란줄기가 내장을 드러냈다. 할멈은 젊은 것이 말대꾸 한다고 악다구 쓰고  새댁은 할멈이 노망났다고 아우성이다.
 드디어 육두문자가 난무하고 육박전에 돌입이다. 영문도 모르는 채 등에 업힌 아이는 울어 제키고 관객들이 모여들고 장면은 치열하게 전개된다. 원래 영화 속이든 일상 속이든 클라이 막스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게 아니겠는가.
  세상엔 으레 현자가 있기 마련이다. 해결사다. 구경꾼만 다가서지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눈치 빠른 상인이 수습을 해야 할 밖에. 또 다른 할멈이 손을 털면서 펼쳐놓았던 보자기를 아무 린다. 젊은 새댁에게 나무라듯
 “내물거리를 팔려거든 부지런히 쪼깨 일찍 나설 것이지. 쌔끼까지 들쳐 업구서리. 장 다 파핳 때 나와 가기고 서리. 내는 다음에 벌어 써도 괜찮다 내 대신 니 안거라.”자기 자리를 내어주고 일어선다. 언성을 높이던 할멈에게도 장사 잘하고 가라고 어깨를 두드리며 깍듯이 인사를 한다. 목에 핏줄을 새우던 할멈의 얼굴이 금시 미륵보살로 바뀐다. 삭정이처럼 마른 체구의 면적을 최대로 줄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새댁의 엉덩이를 수습해준다. 새댁도 수즙은 듯 여린 아낙의 모습을 찾으며 조심스럽게 자리에 않는다. 양쪽에서 물러서는 할멈의 보따리를 슬며시 잡아당기며 환하게 웃는다. 못이기는 척 할멈도 비좁은 흙바닥에  다시 끼어든다. 정월 대보름 큰 달이 장마당에 살포시 내려앉은 듯 모두의 얼굴이 밝게 피어난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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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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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상철시인 2020-03-28 08:34:31

    언제 읽어봐도 윤석희 수필가님의 글은 싱싱한 삶의 거울입니다. 행복하게 읽었습니다.느긋한 미소 머금고 갑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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