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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희 수필21] '춤을 추면서'윤석희:수필가/시인/신곡문학상수상/수필집「바람이어라」,「찌륵소」펴냄·눌산 시창작교실 수료

             춤을 추면서
                                    윤  석  희

춤을 추어야겠다. 언제부터였을까. 내면에 고여 있는 나만의 언어, 한번도 드러내 본 적 없는 절실한 말들을 몸으로 표현해 보고 싶었다. 적절한 표정과 유연한 몸짓으로 꿈의 파편들을 털어 내 버리고 가벼워지고 싶다. 몸의 언어로 비상을 꿈꾸어 본다.

터어키에서 카파도키아의 밤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민속춤. 혼례의식춤. 벨리댄스. 세마등 여러 종류의 춤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세마가 마음에 닿았다. 영혼의 자유를 갈구하는 방랑 회교 승려들의 승무다. 그 중에도 고뇌와 탈속을 표출한 대목이 단연 압권이었다. 하얀 고깔에 흰 옷자락을 날리며 돌고 도는 동작이 속진을 털어 낸 정화된 영혼을 보는 것 같아 신비스럽고 후련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정작 나를 감동시킨 것은 그 행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 순서였다. 일본의 키 작은 아저씨도 노르웨이의 백발 할머니도 미국의 민머리 청년도 그리고 나도 함께한 춤판이었다. 참가자들 각 나라 민속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했다. 실내 무대에서 흥을 돋은 참가자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너른 마당으로 나갔다. 서로 손을 맞잡고 원을 돌았다. 모두가 참여하고 모두가 흥분하고 모두가 환호했다. 신명이 나서 여러 나라에서 모인 사람들이 화합했다. 타오르는 모닥불을 보며 국가도 인종도 종교도 넘어 하나로 어우러지며 즐거웠다.

물론 처음부터 끼어 들은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무대로 몰려 나갈 때만 해도 용기가 전혀 나지 않았다. 혼자 앉아 있는 것이 어색하여 쭈뼛거리고 있는데 아리랑이 연주되고 코리언을 찾는 게 아닌가. 입장할 때 국적을 적어 내었다. 춤 출 자신은 없었지만 한국인임을 부인할 수는 없지 않는가. 생전 처음이라면 거짓말이 될까. 대중 앞에서 악단에 맞춰 아리랑이라니.

내면의 절규를 몸으로 드러내는 방식. 얼마나 솔직하고 담백한가. 번거롭고 위험한 말이 아니다. 부끄럽고 무거운 글이 아니다. 보다 자유스럽고 활달한 표현 양식. 춤의 언어에 귀 기울인다. 몸은 말보다 실제적이고 정직하고 구체적이다. 글보다 꾸밈이 없고 이해하기 쉽다. 현장감이 있어 생생하고 직설적이다. 그리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다.

여학교 때 무용 시간이 제일 마땅치 않았다.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향 때문에 몸은 언제나 굳어 있었다. 유연하지 않은 몸이 말하는 언어는 딱딱하게 뭉쳐 있었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 내 춤이 소나무 트위스트 같다 하여 무용실이 웃음바다가 된 적이 있었다. 힘을 빼라고 했다. 그 말의 망령이 따라 붙어서 몸은 더욱 굳어만 갔다. 웃음거리가 되기 싫었다. 그러나 잘해 보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힘이 들어갔다. 자연스럽지 못한 흔들림이 나무토막의 움직임처럼 뻣뻣했으리라.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부드러움이라곤 없는 불상 사나운 몸동작을 두고 한 말이다.

우리 리듬에 빠져서 사물놀이를 배우려고 해봤다. 고전무용도 곁들여 지도를 받아야 했다. 흥을 표현하는 어깨 춤사위며 날아갈 듯 사뿐한 발동작이 도저히 되지 않았다. “굳어 있는 마음을 푸셔야죠. 풀려야 동작이 유연해 지지요. 생각 따윈 던져 버리세요. 몸이 말하게 내버려 두시고요. 그래야 저절로 흥이 납니다.” 이십 년이 지나서도 똑같은 주문을 받았다. 무안해서 주저앉고 말았다.

사실 나무토막인 것은 몸이 아니었다. 마음이 딱딱하여 몸이 어색했던 것이다. 단단한 껍질 속에서 세상을 두려워하고 타인을 경계했다. 이는 나의 열등감이고 외로움이며 타고난 수줍음이다. 나약하게 자란 막내였다. 자신감이 결여된 탓도 있으리라. 결혼 후엔 세상과 떨어져 스스로 고립의 벽을 쌓았다. 뒤늦게 치열한 삶의 현장에 들어서니 세상사에 어둡고 서툴 기만하다. 두려워서 더욱 무장 하게 된다. 여린 심성을 강인해 보이기에 안간힘을 썼다.헛 기운이 들어가 근육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두려움과 아집과 편견으로 응집된 내면을 움켜쥐고 방어벽이 무너질세라 조바심 내고 있었음이다.

진정한 부드러움은 당당한 자신감이고 강함의 역설적 표현이다. 의지를 드러냄이고 흡인력과 포용력을 상징한다. 따뜻함도 있고 물기도 흐른다. 여유도 생기고 여백의 공간도 만들어진다. 너그러움의 표상이다. 뻣뻣함은 나약함이고 부끄러움이고 왜소함이다. 다른 것과 섞이고 화합 할 가능성이 배제  되 있다. 끝내 단절을 초래한다. 소통의 여지가 없는 경직은 졸렬하고 옹색하다. 이제 이 나이쯤 왔으면 저절로 부드러워 질 때도 되었으련만, 겨울 덕장에서 얼고 있는 동태처럼 매양 뻣뻣하기만 하다. 자연 낯가림이 심하고 마음의 문도 닫혀있다.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고 함께 사는 식구들마저도 답답하지 않겠는가.

굳어 있는 옹이를 풀어야겠다. 안으로만 파고드는 편협함을 버리고 투명한 표정으로 정직해질 것이다. 활짝 열어 젖혀야 한다. 유연한 몸짓으로 마음의 내부를 훤히 들여다보이게 드러내고 부드러워지리라. 세상의 모든 것들과 소통하고 하나 될 터이다. 훌훌 춤을 추면서.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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