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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인자 수필23]'소년'심인자:수필가/수필과비평 작가회 전 거제지부장/수필과비평작가상수상

                            소   년
                                                         심 인 자    

아이가 입원을 했다. 축구하다 다리를 다쳐서이다. 상처가 깊어 삼 주 정도 진단이 나왔다. 봉합한 부위가 붙지 않으면 피부이식도 감안해야한다는 말에 겁을 먹었다. 안정을 취해야한다는 의사의 지시대로 사람이 많지 않은 병실을 택했다.
  거기서 한 소년을 만났다. 문을 밀치는 순간부터 소년의 수다가 들려왔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자들과 소년의 재잘거림은 신경이 곤두서있는 내 귀를 자극했다. 다쳐서 가뜩이나 겁먹고 있는 아이를 잠재우려했는데, 그 생각은 소년을 만나면서 바로 깨졌다.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비로소 소년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아이임에도 갑자기 왜 ‘빨강머리 앤’이 떠올랐을까. 재잘거리는 수다스러움과 하얀 피부에 드러난 주근깨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소년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꾀죄죄해 보였다. 군데군데 흉이 드러난 빡빡 머리도 그렇고, 얼굴생김새도 세련되고 귀티를 풍기는 요즘 아이 같지 않게 촌스러웠다. 황급히 자식 키우는 부모입장에 별 생각 다하는 나 자신을 나무랐다. 미안함을 느껴 첫인상을 지우려는데 소년이 말을 걸어왔다. 보통아이라면 수줍어할 터인데 당당했다. 우리 아이가 왜 입원을 하게 되었는지, 몇 살이며, 집은 어디인지, 어느 학교의 몇 학년인지 물어왔다. 잠시 전의 마음과 달리 궁금증에 대해 답해주었다. 학교가 다르더라도 학년이 같다는 것에 친밀감을 가지는 것 같았다. 잠시 자고 일어난 내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내게서 이미 알아놓고 직접 또 묻는다. 병실의 두 소년은 빠른 속도로 가까워갔다.
  소년은 병원에서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유명인 같았다. 사람들이 습관처럼 우리 병실을 드나들었다. 이름말고도 만득이, 복덕이 등 병원환자들이 붙여준 별명도 여러 개나 되었다. 별명과 이름을 혼용해서 부르면 정확히 자신의 성과 이름을 한자로 풀이하고, 깊은 뜻이 담겨있다고 야무지게 말하는 것이었다.  
  소년은 교통사고로 장기간 입원한 환자였다. 아니, 잠시 퇴원했다가 다시 들어온 지 일주일 된 환자였다. 작년 여름 자전거를 타고 가다 차와 부딪쳤는데 그 때 머리를 많이 다쳤던 모양이다. 골절된 다리는 문제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 붙겠지만 사고 당시 안면 근육마비로 얼굴이 뒤틀린 데다 한쪽 눈의 시력이 위기까지 갔다가 회복된 상태라고 한다. 다른 병원에서 오래 치료를 받다가 어느 정도 나아지면서 집과 가까운 이곳으로 옮겨왔다는 것이다.
  흉 진 머리도 그 때문이었다. 눈썹 위에 패인 상처도 앞 전 사고 때 난 거였다. 소년은 자전거와 좋은 연이 아니었다. 퇴원해서 얼마 안 되어 자전거 사고로 다리가 골절되어 다시 입원한 거였으니 말이다.
  두 계절을 병원에서 보낸 소년의 얼굴에 그늘이 없었다. 짜증이 섞여있을 법한데 내내 생글거렸다. 밝은 성격에 긍정적이었다. 자신의 생각을 바르게 얘기하는 똑똑한 아이였다. 예의도 바르고 반듯했다. 공부도 잘 하는 모양이다. 가져 온 책을 금세 다 읽었다. 집에 다녀올 때마다 나는 책을 챙겨다주고 소년은 그 때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꼬박꼬박했다. 나중에는 어떤 책이 있는지 물어보고 이것저것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다. 읽다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질문을 해서라도 알고자했고 나도 아는 대로 가르쳐주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사흘을 보내는 동안 소년의 보호자를 한번도 보지 못한 거였다. 우리 아이도 그렇긴 하지만 꼼짝 못하고 누워있는 소년에게 사실 보호자가 더 절실했다. 그래서 난 선뜻 소년의 보호자가 되어주었다. 내 아인 휠체어를 탈 수 있어서 그나마 수월했어도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소년 때문에 오히려 병실을 더 지켜야 했다.
  잠시 외출 한 사이 소년의 어머니가 와 있었다. 나흘 만이었다. 한 눈에도 불편해 보였다. 아이 수발을 들기보다 걱정되어 보러 온 것이었다. 한쪽 팔과 다리가 불편한 그녀는 식판 드는 것도 버거워했다. 어눌하여 말을 흘리는 어머니 옆에서 활달한 목소리로 당신의 뜻을 다시 들려주었다.
  생활환경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닌 모양이다. 소년의 아버지가 가정을 돌보지 않는 데다 어머니마저 몸이 불편하여 생활보호 수급자로 살아간다고 했다. 물어보지 않았는데 자신의 얘길 털어놓으니 오히려 내가 편했다. 이런저런 얘길 들으면서 이웃사람들이 그들을 돌보아준다는 거에 참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소년이 좋아졌다. 밉상이 아니었다. 내게 심부름도 곧잘 시키고 종달새처럼 재잘거리지만 싫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소년의 눈이 나를 끌었다. 맑고 깨끗했다. 순하고 어진 티가 두 눈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런 눈을 가진 아이가 하마터면 큰 일 날 뻔했다.
  소년의 어머니가 내게 비밀스러운 듯 말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아이 때문이라고. 제 할 일 알아서 다하고 학원 한번 보내지 않아도 한글 깨우쳐서 책도 잘 읽더라는 얘기가 자못 자랑스럽다. 여느 부모인들 자식 사랑은 매 마찬가지겠지만 그녀에게서 들은 한마디는 참 특별하고 귀한 말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럴 만했다. 아이는 부모, 특히 어머니에 대한 엄청난 사랑과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조금은 어눌하고 불편한 어머니더라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들의 마음이 참 고마웠다. 장애를 가진 어머니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볼을 비비는 모습 또한 예쁘고 고와 보였다. 그게 내가 소년을 좋아하는 이유였다. 어른스러우면서도 넘치지 않고, 또 잘못한 부분을 잘 받아들이는 성격이 소년을 바르게 살아가도록 하는 밑거름이 되었던 것 같다.
  이십여 일 동안 난 소년에게 빠져있었다. 마치 내 자식 마냥 닦여주고 거두어 먹였다. 한번은 내 아이에게 먹여주고 닦아주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게 마음에 걸렸다. 다 큰 아이가 제 혼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왜 그렇게 다 해 주느냐고 물어왔다. 중학생이 되면 해주고 싶어도 못하기 때문에 그러는 거라고 했다. 그게 부모 마음이라고. 그러는 것 또한 힘든 것이 아니라 즐겁다고 말해 주었다. 소년의 어머니도 늘 그런 마음으로 살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만약 소년이 부모에 대해, 혹은 자신에 대한 정체성으로 잠시 길을 잃고 방황한다면 어떻게 하나. 별일 없이 지금 이대로만 자라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사실 염려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쓸데없는 기우였다. 퇴원하던 날 소년이 내 손에 뭔가를 쥐어주었다. 극구 말리는데도 굳이 가져가랬다. 꼭 드리고 싶어서라고 했다. 오렌지주스 한 병이었다.
  소년에 대한 걱정이 사라졌다. 저렇듯 따뜻한 마음을 가진 소년에겐 사춘기의 열풍도 너끈히 잠재울 거라는 믿음이 갔다. 당연 과도기도 정체성도 없을 것이라 확신하며 병실 문을 나서는 나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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