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에서
                                                    우  광   미

사진을 찍다 보면 피사체의 배경이 문제 될 때가 있다. 꽃이 화려하게 피어 있는 곳에서 모델로 서는 경우다. 자신의 미모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해도 자연의 미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점이 있기 마련이다. 아름다운 꽃도 살리고 인물도 드러내려는 욕구를 가지고 촬영을 하다보면 사람을 돋보이게 할 수 없다. 그래서 슬기로운 사진사는 배경을 슬쩍 밀어놓고 인물을 드러나게 배려해 준다. 배경과의 호응이 피사체의 미를 극대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은 주위 배경을 유념하지 않아도 사진발이 잘 받는 사람도 있다. 지영이는 그런 친구였다. 한창 때는 미인대회에서 상을 거머쥘 정도로 아름답던 그녀의 출현에 언제나 주위 환경이 맞춰 주는 듯했다. 그런 그녀가 삶의 차단기를 내리려다 미수에 그쳤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쉽게 와 닿지 않았다. 언제나 훨씬 앞에서 질주해 갈 것이라 생각했었다. 삶은 보는 자의 것이 아니라 겪는 자의 몫이라 했던가. 어떤 시간들이 지나갔는지 모두 알 수는 없다. 내가 사는 섬으로 들어와 잠시 쉬고 싶다는 말을 했기에, 그녀를 태우고 마련해 둔 숙소를 향해 가는 길이었다.  
  어느새 어둠이 내려 희뿌연 하늘빛이 비라도 뿌릴 기세라, 속히 도착하는 길을 골랐다. 산을 가로질러 가기에 지름길이 되는 셈이었다. 일기가 좋지 않은 날은 운전기사들도 기피하는 길이다. 산허리를 돌아 고갯길로 들어서자 짙은 안개가 길을 막았다. 
  굽이굽이 고갯길을 따라 넘어가는데 안개는 줄기차게 달라붙었다. 찐득거리며 놓아주지 않던 한여름 밤의 갯가 냄새처럼 안개는 우리가 탄 차를 놓아 주지 않았다. 그 속에 있는 우리는 완전 불확실한 존재였다. 실체는 있다 해도 그 실체를 확신할 수 없는 그런 모호한 것이었다. 원근과 소실점을 상실한 시야는 우리를 세상과 분리시켰다. 불확실의 웅덩이로 추락하여 끝없는 낙하만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우리를 엄습해왔다. 내부에서는 아무것도 제어할 수 없기에 안개등을 켜고 서행했다. 오로지 동물적 감각으로 차를 몰았다.
  안개 속은 한때 내가 살았던 세계고, 누구나 만날 수 있는 세계였다. 이와 같은 안개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문제였다. 맑은 날만을 만난다면야 무슨 문제가 되랴마는 세상살이가 그런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우리는 이 길을 헤쳐가야 하고 그곳에서 최선을 다해야 했다. 차 안에서는 무슨 방도를 모색하든 차창 밖의 세상은 바라볼 수가 없었다. 문제의 한가운데를 벗어나야 겨우 세상의 이치를 조금씩 읽어낼 수 있듯이 우리는 적극적으로 벗어나려했으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문득 지영이의 살아온 배경에 생각이 머문다. 그동안 그녀가 걸어온 세월이 너무 맑은 날만의 연속이 아니었을까. 오늘과 같이 안개 짙은 길도 운행해야 하는 이치를 깨닫지 못한 데서 온 좌절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이 순간 자연의 이치가 우리에게 짙은 안개를 내려준 까닭은 무엇일까. 삶을 포기하려고까지 했던 지영에게 이 안개 길은 어떤 배경으로 작용할까. 짙은 안개는 결코 끝이 날 것 같지 않았다. 점점 더 심하게 달려들며 차창을 막아선다.
  고개를 넘고 힘들게 하던 안개를 벗어나 뒤돌아보니 지난 날 한치 앞을 볼 수 없던 안개 속에서 불확실성에 발을 동동 구르던 나의 모습도 그곳에 있었다. 안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 하는데 그녀가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뒤편으로 짙은 안개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지나갔다. 안개를 배경으로 서 있는 그녀의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분위기 있는 사진이었다. 그녀가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일 아침에 차분한 마음이 되었을 때, 넌지시 넘겨주려는 마음이었다. 안개는 여전히 우리를 놓아 주지 않았다.
  삶이 불가사의하고 진실은 저 너머에 있음을 안개 속에 갇힘으로 알게 된다. 끝이 없을 것 같은 길도 어느새 목적지까지 도착했다. 한사코 혼자 있기를 원해 펜션에 내려놓고 온 후, 나는 그녀가 다른 생각을 할까 봐 밤새 불안에 시달렸다.
  아침 일찍 카메라를 메고 지영이에게 가기 위해 손전화기를 집어 들자 그녀의 긴 문자가 숨을 몰아쉬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야겠어안개속을두시간이나걸어서터미널에도착했어이젠할일을찾아봐야지지금버스탔어고마웠어
  유리창에는 안개가 와서 아직도 버티고 있다. 그 안개는 더 짙은 의미를 가지고 내 가슴으로 파고든다. 저 짙은 안개 속에서 지영이가 질주해 가고 있다. 마당 저편에서 장미꽃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나의 허전한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지영의 얼굴이 노르스름하게 내 의식의 저편에서 다가온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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