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 속으로
                                            윤   석   희

신을 향한 절규인가. 서럽도록 푸르기만 한 하늘에다 포탈라(티벳의 궁전)가 스카이라인을 선명하게 그린다. 인간의 의지를 응결시켜 놓은 절묘함, 라사 (티벳의 수도)에 들어가면 백궁의 신비스러운 얼굴이 한눈에 들어온다. 허나 티벳인들의 열망으로 쌓아 올린 하얀 궁전은 차라리 슬픔이다. 가파른 언덕에서 마른 가슴을 펼치고 있다. 나리 잃은 자. 가난한 자. 다 안아 들이겠다고. 그러나 주인 (달라이 라마)잃은 포탈라는 속을음을 삼키고 있다.
 티벳인들은 생에 한번만이라도 라사를 찾고 싶어한다. 영적 심장부인 조캉사원을 그리는 것이다. 사원앞 바코르에는 오체투지하는 사람들로 틈이 없다. 때절은 옷 속에 그들의 남루한 삶이 있다. 그러나 나무껍질보다 더 버석거리는 육신의 행렬이 경건하다. 고통의 순례 길에서 내면을 깊숙이 응시하고 있다. 땅바닥에 말라버린 육신을 내어놓고 구원을 향한 끝없는 여정에 들었다. 영혼을 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깊게 패인 주름위로 그들의 고뇌가 번진다. 이 땅의 청정함을 닮은 미소가 되어 나온다. 보잘 것 없는 살덩이를 새의 먹이로 내어주고 영혼은 훌훌 날고 있는 것일까? 마니차를 쉼없이 돌리며 카르마(업)을 다스리고 있다. 가슴 가득 물기를 채웠음이다.

 꺼얼무에서 출발한 버스는 1,115km 청장 공로를 달렸다. 이는 중국에서 티벳으로 여행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육로다. 여행허가서 등의 까다로운 절차가 짓밟힌 땅의 설움을 말해준다. 강렬한 태양은 분노처럼 습기를 태우고 대지를 목마르게 하고 있다. 더러 호수도 보이고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식물도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파란 하늘과 황토빛 광야의 정적이 황량함을 더해준다.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헐벗은 땅. 무념(無念)하나로 절제되고 수렴되는 빈 공간이었다.
 사십 시간이 넘게 공허지대를 달려왔다. 이 길의 평균고도가 사천미터를 넘는 고원지대다. 세계의 지붕에 오르는 기대감으로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던 감흥은 사라지고 긴장 할 수 밖에 없었다. 고도 삼천 미터가 넘는 도시 꺼얼무에서부터 이미 숨은 차오르기 시작했다. 활량한 고원의 무인지대를 얼마나 달려왔을까? 다 낡아빠진 미니버스가 쿤룬산맥을 용케도 넘어 오천미터가 넘는 탕글라 고개를 오른다. 차도 힘이 소진되어 비실대는 것 같다.
 탕글라 정상에서 차가 멎었다. 차밖에 세상은 내가 체험한 최초의 우주였다. 아폴로 우주선 비행사들이 이랬던 것 같다. 한 걸음씩 내디뎌도 발은 땅에 닿지못하고 헛발질이 된다. 공기 중에 부유하고 있는 듯하다. 무게를 벗고 드 넓은 우주 속을 자유롭게 떠간다.
 토악질하고 배설하며 소란을 떨어도 탈초들만 바람에 통곡할 뿐 성스러운 땅은 무심한 듯 말이 없다. 쏟아져 내리는 별빛에 괴괴함만 더한다. 고도에 따른 기온하강은 숨까지 얼어붙게 한다. 침입자에 대한 마지막 경고인가. 몰아치는 바람으로 몸이 바로 세워지지 않는다. 두려움이 고통을 극으로 몰고 간다.
 고소증이라고 했다. 안내인 죽지는 않는다며 견디어 내기를 주문한다. 이렇게 높은 곳에 올랐던 적이 있었던가. 감히 순수의 땅을 밟아 보려 한다. 하늘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왜 두려워하는가. 경외감에 떨고있다. 아마도 티벳의 신은 정(淨)하지 않은 자들의 출입을 달가워 하지않는가보다. 엄청난 고통으로 시험에 들게 한다. 아래 세상에서 더러워진 몸과 마음을 씻게 함이다. 오만과 오물을 다 훑어내고서만 오르게 한다.
 호흡이 거칠어진다. 숨을 쉴 수가 없다. 내 안에 쌓인 꿈의 파편들이 울부짖고 있는가. 조각난 꿈들이 똬리를 틀고 있다 용트림하며 일어난다. 그 많던 슬픔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가슴을 할퀴어 대는 것 같다. 통렬한 아픔으로 정신이 혼미해진다. 후회되었다. 그만 내려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단지 숨 쉬는 것만으로도 축복임을 비로소 깨우친다. 그러나 모질게 이어지는 삶처럼 끊어질듯하면서도 심장 박동은 멎지 않는다. 청심환을 삼켰다. 허무의 조각들을 다 뜯어 버릴 테다. 밖으로 몰아내 버릴 테다. 그래서 비워진 곳을 신선한 일상으로 채울 테다.
 머리가 깨어진다. 바위에 눌린 듯 소리마저 잦아들었다. 눈조차 떠지지 않는다. 세상이 저만치 미끄러져가고 있었다. 마지막이다. 희박한 산소 때문이라 했나. 뇌세포 구석구석까지 후비개로 쑤셔댄다. 아집과 편견으로 썩고 짓무른 상처들이 갈라지고 터진다. 극심한 통증은 정신을 놓아버리게 한다. 무화(無化)되어 백지 상태가 된다. 다 비워내었음이다. 맑고 깨끗한 생각으로 채우려 함인가. 산소통의 연결 줄을 콧속에 질러놓고 신선한 공기를 마신다.
 매슥거린다. 무엇이 거슬려서 속조차 뒤집어지려는가. 끝내 구토가 시작된다. 한번 두 번 세 번---. 여덟 번씩이나 이어졌다. 넣어서는 안 되는 것들로 가득 채워서인가. 꽉 매워져 출구조차 찾지 못했던 것은 허망한 욕심과 욕망이다. 쓰디쓴 위액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모조리 쏟아 내야 했다. 이뇨제 다이아녹스도 먹었다. 이제 무욕의 물 한 모금으로 속을 씻어내야겠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갔다. 이제 더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공허가 되었다. 그러나 한결 가볍고 맑아진 느낌이다. 비로소 라사로 가는 길이 열린 것이다. 함부로 법접할 수 없는 경외의 땅, 풍요를 모르는 불모의 땅에 든 것이다.
 라사는 나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합당하지 않은 것들을 벗어 내기에 내가 애를 썼을 뿐이다. 혹독한 자연에 순응하는 사람들이 바람처럼 사는 곳, 고립의 외로움 속에서 처절한 삶을 모질게 이어가는 곳. 무심한 채로 황량한 채로 거기 그렇게 있었다. 결핍에서 오는 고난도. 침략으로 받은 상처도 치유하지 못한 채 잊혀지고 있었다. 거대한 중국 속으로 침몰되고 있었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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