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왼쪽
오른쪽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칼럼 원순련교육칼럼
[원순련교육칼럼⑨]'내 자녀의 자존심은 어머니가 키운다 '원순련/거제대학교 겸임교수

⑨ 내 자녀의 자존심은 어머니가 키운다 

 

살아가면서 매 순간마다 친정어머님의 생각이 난다.
  이런 생각은 아마  모든 딸 들이 다 갖고 있는 생각일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날 때마다 친정어머니가 어떻게 대처하셨던가? 그리고 뒷수습은 어떤 방법으로 하셨던가를 생각하면서 내게 일어난 일을 처리하면 틀림없이 뒤탈이 없다. 그만큼 어머님은 사려가 깊으셨고 아무리 급해도 서두르는 일이 없으셨다.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은 속도에 관련됨이 아니고 생각의 차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어머님은
  “너희들에게 재물은 물러줄 수는 없지만 ‘생각’하는 사람이 되는 법을 알려 줄 테니 살아    가면서 필요한 때가 있으면 꺼내어 생각하며 살아라.”

  그 땐 정말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어머님의 이런 말씀은 하루 종일 비가 와서 밭일 논일을 나가지 못하는 날이면 관련 된 고사성어와 함께 사람이 왜 생각을 먼저 하고 일에 대처해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는 법과 함께 빠지지 않고 들려주신 말씀이 또 하나 있다.
  “부모가 재물을 물러주면 도둑이 훔쳐가기도 하고, 지키기도 어렵지만 너희들 머리에 지    혜를 물러주면 아무도 뺏어가지 못한다. 지혜에 속하는 것은 너무나 많단다.”
하고 말씀하시어 어머니께서 ‘생각하는 사람’ 이야기가 나오면 끝까지 듣기가 지루해 내가  ‘머리속에 넣어준 지혜는 아무도 뺏어가지 못 한다’하고 내가 먼저  뒷이야기를 해 버려 어머님께서 웃으시던 모습도 떠나지 않는다.

  이런 ‘생각하는 사람’ 이야기 중 또 빼 놓을 수 없는 교훈이 바로 자존감에 관련 된 이야기다. 그 땐 그 이야기가 자존감과 관련 된 이야기인지도 몰랐다. 단지 무슨 일이든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나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먼저하고 일을 하면 틀림없이 잘 하게 된다는 말씀으로만 알았다. 그래서 나는 정말 겁도 없이 자랐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무슨 일이든지 시키면 내가 하겠다고 덤볐다. 그 일을 전혀 해 보지 않고도 그냥 할 수 있을 것이란 어머니 말씀만 믿고 겁도 없이 내가 하겠다고 나선 것이 얼마나 대책 없는 일인가? 그래서 가난하게 살아도 늘 학교생활이 당당했다. 어머님께서 나에게 불어넣어 주신 당당함이 일곱 형제 중 아마 내가 가장 흡수력이 강했던가 보다,

  그 당시 시골에서 돈을 만질 수 있는 길은 오로지 나무를 해서 읍내에 팔러가는 일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그 날도 수업을 마치고 신작로를 걸어서 하교를 하던 길이었다. 동네 아주머니들과 어머니께서 읍내로 나무를 팔러 오시다가 도중에서 나뭇단을 내려놓고 쉬고 계셨다. 다른 어머님들은 다시 나무를 머리에 이고 장터로 가시는 데, 왜소하신 친정어머님은 몹시 힘이 드셨든가보다. 날 보고 그 나뭇단을 이고 읍내까지 가자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 결정의 순간에 서게 되었다. 어머님께서 힘들어 하시니 어머님의 나뭇단을 이고 장터까지 가져다주는 것이 당연한 딸의 도리임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러나 그 순간 내 머리엔 그 생각보다 부끄러움이 앞섰다. 지금쯤 하교를 하고 있을 남학생들을 만날 텐데 그 순간을 어떻게 하나 생각하니 어머님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어머님은 나의 거절에 괜찮다며 말없이 나뭇단을 머리에 이고 일어서셨다. 나는 못 본 척 하고 돌아서는데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어머니께 내 책가방을 맡겼다. 그리고 나뭇단을 이고 장으로 가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생각했던 대로 남학생들이 내 코앞까지 다가와  짓궃게 놀려대기 시작했다. 못 들은 척하고 시장까지 가서 나뭇단을 내려놓고 교복 위에 내려앉은 검불을 훌훌 털어내고 어머니께 책가방을 건네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 어제 나무 팔러 가더라.”
 칠판에다 분필로 대문짝만하게 내 이름을 적어놓은 것이 아닌가? 순간 어떻게 해야 하나 참으로 창피하고 속상했다. 그 때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스쳐갔다. 생각하고 대처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런 일에 친구들과 언쟁을 하지 말하는 말씀도 분명히 ‘생각’ 속에 들어있겠지 하고 결심하니 부끄러움도 다 달아났다. 나는 아무 말도 않고 그 옆에다 이렇게 썼다.
 “그래. 너희 집 나무를 사게 되면 우리 어머님 나무를 좀 사 주렴.”
이렇게 적어놓고 내려왔는데 누군가도 생각도 나지 않지만 친구 한 명이 얼른 나가서 칠판의 글을 다 지워버렸다.

  내가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난 후, 이 나뭇단 사건은 늘 나를 따라 다녔다. 그 때, 내가 그 나뭇단을 이고 가는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우리 반 아이들 앞에서 부모님에 대한 효도를 감히 자신 있게 지도할 수 있었을까?

  친정어머님의 ‘생각하는 사람들’은 평생 내 삶의 언덕이 되어준다. 그리고 내가 만든 평생교육연구소의 간판이 되어 그 속에 넣어주셨던 아무도 훔쳐가지 못하는 지혜가 되어 지금도 나의 자존감이 되어주고, 나를 지켜주고 있다. 학부모들이 그렇게 바라는 내 아이 자존감은 바로 부모님이 만들어 주는 것이다.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춘광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