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해설)

아이러니와 역설, 自我回復의 詩

               고영조 (시인, 전 경남문화예술진흥원장)

  양재성 시인의 이번 시집 『뚫림』에 실린 시들은 대체로 무겁다. 그것은 그의 시가 우리 사회가 처한 부조리와 모순, 소외와 단절을 주제로 하여 아이러니, 반어, 역설 등의 기법으로 써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시작 방법은 우리가 시에서 전통적으로 추구했던 서정성보다는 상대적으로 비판과 조롱, 야유를 속성으로 한다. 이와 같이 현대적 특성을 잘 반영하는 역설적 시 쓰기는 주제를 차별화하거나 시적 표현이 효과적이기 때문에 많은 시인들이 즐겨 쓰는 방법이기도 하다.

  아이러니는 겉으로 드러난 말과 실질적 의미사이에 괴리가 생긴 결과이다. 겉으로 하는 말이 내용적으로 의도된 뜻과 다르거나 정반대의 경우에 이 아이러니가 생겨난다. 양 시인은 이 아이러니와 역설로 평면적인 시적 의미를 입체적으로 전도시키려 하고 있다. 패러디 역시 그가 즐겨 쓰는 방식이다. 현대 비평가들은 아이러니를 내포하는 문학이 그렇지 않는 문학보다도 표현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아이러니가 인생의 체험을 한 면만 보지 않고 그 정반대의 면도 동시에 보고 동시에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양 시인은 그의 시집 1부와 3부에서는 현대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아이러니와 역설로 신랄하게 꼬집고 비판하는 시를, 2부와 4부에서는 분열에서 자아회복으로 가고자 하는 서정적인 시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흑표범처럼 어둠이 웅크린 지붕 위의
이슬 맺히는 소리를 듣던 귀
상사의 질책 같은 환청을 밀쳐내고
야수의 울음 덮인 하루를 접는 밤이면
소리의 잔해가 쌓인 귓속을 파고들어
숨은 달팽이를 물어뜯으며
변조된 교란전파를 발사하는 벌 떼
귓전의 달콤한 속삭임에 젖어
쓴 소리 외면하고 살아온 벌
꿀벌 말벌을 구분 못한 벌
이순에야 찾아 낸 귓속의 벌

오래전부터 둥지를 튼
벌, 그 지독한 벌      「시-이명, 전문」

  이명(耳鳴)은 귓속에서 잉잉거리는 소리가 울리는 현상이다. 이 병은 스트레스가 쌓여서 생기는 난치성 질환이라고 한다. 이명이 되고서야 돌아보는 자신, 벌(蜂)과 벌(罰)의 동음이의, 병치은유를 쓰고 있다. 「귓속에 둥지를 튼 벌(蜂), 그 지독한 벌(罰)」의 병치은유는 신랄하다. 벌과 벌을 나란히 두고 대립과 갈등을 비교하는 이 은유는 서로 다른 의미의 언어가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 시적 효과를 더욱 상승시킨다. 또한 벌과 벌의 병치, 이질적이고 비유사적인 언어를 결합하는 상반된 결구(結句)는 일상적 언어의식의 독자에게 시를 더욱 낯설게 느끼도록 하고 있다.

  벌과 벌은 아무런 유사성도 연관성도 없다. 다만 동음이의어일 뿐이다. 이러한 병치은유의 폭력적 결합은 형이상학시의 한 특질이기도 하다. 귓속에서 잉잉대는 벌 소리로 무절제한 행동에 대한 벌이라고 말하는 시인의 말은 은근히 우리를 미소 짓게 한다. 술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고, 사람 좋다고 정평 난 시인이 뒤늦게 벌 때문에 반성한다니 그 罰 또한 심술궂지만 미소 지을 만하지 않는가.

 「기억의 저편」은 제주 4.3사건으로 희생된 가족사를 시화한 것이다. 이 시는 4.3사건을 채용하는 시사적(topical) 인유(引喩) 형식을 취하고 있다.

-략
짧은 청춘의 남정은  
두개골에 구멍 뚫린 유해로 돌아오고
통곡하던 제주의 피바람마저
빈 허벅에 멍에만 지워 육지로 내몰았던
4.3의 젊은 청상과 서러운 오누이

-략
성긴 머리카락
삼단처럼 질긴 세월의 물레질도 멎고
간신히 부여잡은 기억마저도 삭아 
-략
볼 부비는 자식들이 점점 낯설어지는
기다림마저 잃은 시선들     「시-기억의 저편, 부분」

  ‘짧은 청춘의 남정은 두개골에 구멍 뚫린 유해로 돌아오고, 통곡하던 제주의 피바람마저 빈 허벅에 멍에만 지워 육지로 내몰았던, 4.3의 젊은 청상과 서러운 오누이....’
  오래전에 남편을 잃고 청상으로 살아온 할머니, 두개골에 구멍이 뚫린 유골로 돌아온 할아버지에 대한 묘사는 실로 가슴 아프다. 이 서러운 민족사를 어찌한단 말인가. 이런 비극을 당한 가족들의 슬픔과 비애는 또 어찌할 것인가. 민족사의 비극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닌데 시를 읽는 마음이 그저 먹먹하고 새삼 가슴이 아플 뿐이다.

  우리 현대시에는 이 시사적 인유를 채용한 시가 다수 있다.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 외에도 4.19, 5.18 등에 관련된 시가 그것이다. 또 정치를 패러디한 시나 역사적, 사회적 사건을 참조한 시사적 인유도 현대시의 한 유형을 이루고 있다. 이런 유형의 시를 볼 때마다 나는 시 이전에 인유된 시적 현실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인유를 채용한 시「기억의 저 편」외에도「청문회」,「말씀」,「껍데기론」,「패러독스」같은 정치를 인유, 패러디한 시가 이번 시집에서 다수 보이고 있다.

  그리고 「아포칼립토」는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시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의 영화 ‘아포칼립토’는 남아메리카 원시족이 포로를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영화화 한 것으로 특히 광기어린 군중의 열광하는 모습에 온몸이 오싹해진다.
  그러나 시 「이름」은 「아포칼립토」와 대비된다. 「아포칼립토」는 광기에 찬 군중의 모습에서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잠재된 폭력성과 잔인성을 드러낸 것이라면, 「이름」은 칼국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쓴 시다. 밀가루를 반죽해서 칼국수를 만드는 과정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따스하고 정겹다. 소박한 칼국수 장인의 영혼이 맑게 울려 들리는 듯하다. 이런 소시민의 모습을 시로 제시하고 돌아보는 시인은 그가 평소 바라는 삶의 가치관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시집 2부의 「쇠똥구리」,「벌새」,「할미꽃」 등에서 나타나고 있듯 평범한 일상을 제재로 삼는 시인의 예리한 관찰력과 소박하면서도 참된 삶의 정의도 함께 담담하게 울려온다.

칼국수라는 쫄깃하고 따뜻한 이름은
밀가루 반죽 덩어리가
오랜 짓이김과 날카로운 칼질
온갖 소문들이 들끓는 가마솥에서
뼈처럼 하얗게 우러났을 때
비로소 얻어지는 것임을

얼마쯤 오랜 시련 흘러야
고로에 남은 유골처럼 가벼움 되어
허기진 영혼을 채울 수 있을까
길 잃은 낙타처럼 사막을 떠도는
그 이름 석 자

허기에 들어선 분식집
주방장의 달인 같은 손놀림에서     「시- 이름, 전문」

  「나사못」은 고관절 골절상을 입은 어머니의 수술과정을 묘사한 시다.
엑스레이 사진 속에 촘촘히 드러난 나사못, 뼈를 뚫고 박힌 그 형상의 의외성에 시인도 놀라고 독자도 덩달아 놀란다.

날카롭게 증폭되는 소용돌이로
-략
훈장처럼 팬 열십자의 낙인

허리를 파고드는 가시철조망을
송진으로 버무려 감싸며
모질게 버텨 온 울타리 노송처럼

예순을 넘어 헐거워진 고관절에
-략
나사못을 듬성듬성 심는 외과수술실      「시- 나사못, 부분」

‘허리를 파고드는 가시철조망을 송진으로 감싸며 모질게 버텨 온 노송처럼‘ 어머니를 대비시킨다.
 일제의 핍박과 6.25전쟁을 겪으며 살아온 우리들 어머니의 모진 삶은 그랬다. 뼈가 아니면 심장에 대못이 박히며 살아온 그들이었다. 굽어진 허리와 다리, 그 모습으로 논밭에 엎디어 살아온 어머니, 종내에는 쇠붙이와 기계에 의존하여 마지막 생을 의탁하여야 하는 어머니의 잔영은 가슴 아프다. 이 시 「나사못」은 고향과 부모를 떠나 살고 있는 우리 스스로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시다.

우리가 힘을 합쳐 저 인간을 없애버리세
내가 잠입해 털 난 양심에 다이너마이트를 박아 폭파 시키겠네
그러면 그동안 받아먹은 것, 훔쳐 먹은 것, 숨겨둔 것들까지 모두 게워 올릴 테니
그 때 자네는 눈과 귀를 틀어막고 기억 파일을 전부 삭제해 버리게
그러다 쓰러지면 지갑은 물론 뒤틀린 생각과 반항심마저 털어 버리는 거야
다음날은 엄처시하 지하 취조실에서 끔찍한 고문을 당할 테고
아마 첫사랑이나 숨겨둔 로맨스까지 남김없이 실토하게 될 걸세
그리곤 초주검으로 쫓겨나 노숙이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겠지
오늘밤에 확실히 보내버리게 최고로 강한 폭탄을 만들어 봄세
  
-카스와 참이슬의 SNS에서-       「시-테러음모, 전문」

  시 「테러음모」는 우선 발상이 기발하고 재미있다. 성인 남자라면 폭탄주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터이고 폭탄주 제조를 한 번쯤 안 해 본 사람도 드물 것이다. 누가 처음으로 맥주와 소주를 섞어 만든 칵테일을 폭탄주로 명명했을까. 이런 메타포를 처음 쓴 사람은 분명 뛰어난 시인이리라.
  거품이 부글부글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폭탄 같다고 했을까. 마시면 그냥 취하는 술, 취해서 일제히 쓰러지는 술 그래서 폭탄일까. 아무튼 이 시는 비유와 화법이 싱그럽다. 「그동안 훔쳐 먹은 것, 뒷돈 받아먹은 것, 숨겨둔 것」을 토해내는 폭탄주의 형상, 죄를 실토하게 하는 고문, 초주검으로 취하게 하는 폭탄주! 이런 인유적 비유가 현란하다.
 
  남자들의 허세와 기세가 점철되는, 소시민의 고된 삶을 한꺼번에 날려버릴 것 같은 폭탄주, 우리는 왜 이렇게 폭탄주를 마시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는가. 폭탄을 안고 달려들어 폭사하는 자살특공대 같은 호기어린 남자들의 목소리를 이 시에서 듣는다.
  폭탄주의 폭탄이라는 말의 상징이 「누군가를 없애버리는 음모로, 뒷돈 먹고, 훔쳐 먹은 사람들」로 구체화되고 대상화되어 부조리하고 탐욕으로 가득 찬 현대사회를 패러디하고 알레고리화 한 것이다. 그리고 첫사랑의 로맨스까지 실토하는 것에 이르면 고소를 금할 수 없다. 만취하면 첫사랑의 고백도, 새 사랑의 고백도 줄줄 쏟아 놓게 되니까 삼가 조심할 일이다.

모기에 물리거나 원유를 뽑거나
쥐가 벽을 갉거나 터널을 뚫거나
하여간 구멍을 내는 일
무언가가 어딘가의 틈새를 벌려
깊이와 넓이의 공간을 만들고
무엇인가가 드나들기 위한 것
무언가의 날카로움은 유사하며
어딘가는 도처에 다양하며   
무엇인가는 무언가에 관심조차 없고
들러붙은 모기와 시추선과
쥐구멍과 터널은 뿌리를 같이 하며
벽과 자존심과 하늘은 뚫림의 대상
붕괴와 손상을 수반하며
빛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어둠              「시-뚫림, 전문」

‘-모기에 물리거나 원유를 뽑거나 -쥐가 벽을 갉거나 터널을 뚫거나-하여간 구멍을 내는 일’
  이 시는 이렇게 시작되어 모든 ‘뚫림’이 같은 이치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뚫림은 삶의 수단으로서, 숨 쉬는 공간을 만들면서 깊이와 넓이를 확장하는 언어이다.  ‘뚫림’이라는 언어가 명명하는 이 개시성은 놀랍도록 많은 의미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모기가 피를 빨고, 쥐가 구멍을 뚫고, 캄캄한 지하에서 터널을 뚫는- 이 구멍을 내는 일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는 것을 찾고 뚫림이 붕괴로 이어지는 현상에서는 역설적으로 빛에서 어둠을 찾으려고 한다. 이 시는 본래적으로 존재론적이다.

  ‘뚫림’ 이라는 시어가 말하는 것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뚫림이 아니라 일상성을 벗어던지며 새롭게 태어나는 언어로서의 ‘뚫림’을 말한다. 또 어디가 뚫릴 것인가. 하늘일까 땅일까. 마그마의 폭발일까. 천둥일까. ‘뚫림’이라는 말의 지평이 이 시를 통해서 세계를 향해 아득히 열리고 있는 것을 본다.

  시집 2부에서는 전술한 대로 「쇠똥구리」,「벌새」,「지네」,「반딧불」,「보름달」,「사슴」,「할미꽃」,「감자」 같은 자연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결코 만만한 시가 아니다. 평범한 소재를 관찰력과 직관으로 의인화하여 우리의 일상을 따스하게 뒤돌아보게 하는 은근한 솜씨가 그렇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쇠똥을 구르며 살아가는 「쇠똥구리」, 쉴 새 없는 날개 짓으로 꿀을 모으는「벌새」 등이 그런 시다. 「지네」는 지네의 형상인 독니와 무수한 발을 마치 움직이는 듯 시각화 한 것으로 실험적 개성이 돋보인다.

너무 꽉 차서 버겁다
아쉬움만 남은
일요일 저녁 같아서

상현달 정도가 좋다
기다림이 있는
금요일 저녁 같아서

반 쯤 찬
부담 없는 술잔처럼     「시-보름달, 전문」

  시 「반딧불」은 단순히 여름밤의 서정을 그리고 있지만, 이 「보름달」은 짧지만 시인의 詩觀이 잘 드러나 있다.
‘-너무 꽉 차서 버겁다-상현달 정도가 좋다-반 쯤 찬 부담 없는 술잔처럼’
  뭐든 곽 차면 더 갈 곳이 없다. 반 쯤-그래 반쯤이면 족하다. 그렇게 욕심내고 살 일이 아니다. 조금 부족한 곳에 숨 쉴 틈이 있고 삶의 부드러움이 있다. 양 시인도 그렇다. 늘 겸양하는 그의 인품이 잘 드러난 시다. 『-형님 부족하지만 시집 권두에 한 말씀 해 주이소!』 그런 사람이다. 달도 차면 기운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리고 「할미꽃」은 거듭 읽고 싶은 시다.

허리 굽었다고 타박치 마라
평생 입 닫고 들어만 온지라
생각이 많아져 고개를 숙인 게야

뛰는 가슴을 보여주랴
아직 붉은 단심 가득하거늘
이름만 할미일 뿐
마음은 청춘이여

먹지도 못하는
꽃은 왜 심는 담
아까운 땅에…

아, 생전 우리 할미 혼자말씀     「시- 할미꽃, 전문」

‘-허리 굽었다고 타박치 마라-평생 입 닫고 들어만 온지라-먹지도 못하는 꽃은 왜 심는 담-아까운 땅에…’
  이미 떠나신- 우리들 할머니는 다 그렇다. 꽃보다 삶이다. 꽃을 보는 일보다 목숨을 부지하는 일이 더 시급하고 귀하다. 그만큼 질곡의 세월을 살아오신 분들이 할머니다. 더구나 시인의 할머니는 4.3사건으로 남편을 여의고 청상으로 평생을 눈 감고 입 닫고 고개 숙이고 살아 왔다. 그 분에게 꽃을 말하는 것은 호사다. 할머니는 살아남아야 하고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 절대 절명의 시대를 살아왔다.
「-먹지도 못하는 꽃은 왜 심는 담-이 아까운 땅에.」 그렇다 먹어야 산다. 빈손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자식을 키우는 모진 삶이야말로 투쟁 그 자체였을 것이다. 시인의 할머니가 눈에 선하다.

  양재성은 1부와 3부에서 부조리한 현실을 아이러니와 역설, 인유로 회초리를 들었지만 시 「할미꽃」처럼 따스한 세상을 꿈꾸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도도한 새침때기 가시나가 살짝 떨어뜨리고 간 손수건 같은」 시 「수선화」는 아련한 세월의 저 쪽에 서 있는 사춘기 소년 양 시인을 떠올리게 한다. 누구에게나 사춘기는 참 순진무구한 때가 아니었던가. 알면서도 모르는 척 슬쩍 속아주던 그 마음이 얼비치는 시다.  아름다웠던 그 순간을 고즈넉이 함께 생각해 보는 아침이다.

  시 「설거지」는 대단히 은유적이다. 「내 마음이 버선목이라  뒤집어 보여 줄 수도 없고」 하는 말이 있듯 「뒤집어진 고무장갑처럼 -내 속을 뒤집어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누구한테? 이제 다 갑년이 지나가는데 그러나 시인은 언제나 소년이다. 소녀가 떨어뜨린 손수건을 집어 드는 마음처럼 내 속을 고무장갑처럼 뒤집어 보여주고자 하는 만년소년이다. 그런 소년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고자하는 것이 시인이 아니고 누구랴. 시는 소년의 마음과 같아야 영롱하고 영원할 것이다.

연은
그저 바람을 잘 만나
뜨는 게 아니란다

뼈 깎고 살 바르고
살얼음 같은 가슴까지 도려
꿈보다 더 가벼워져야
비로소 세상 위로 뜨는 것

다만
한창 바람타고 힘 넘칠 때
다 접고 내려와야 한단다

그 때가
줄이 끊어지기 직전이므로      「시-바람의 말, 전문」

  이 시 「바람의 말」을 읽으며 나는 밥 딜런 노래 ‘Blowing in the wind’를 생각한다. -바람의 말 -바람의 대답, 밥 딜런은 전쟁으로 인한 무고한 죽음과 평화에 대해 노래하며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다고 했다.
  양 시인이 듣는 바람의 말은 소박하다.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다.
 「-연은 꿈보다 더 가벼워져야 비로소 세상위로 뜬다.」 고 했다. 그리고 「힘 넘칠 때 내려와야 한다」고 바람의 말을 들려준다. ‘넘치면-줄이 끊어지므로’, 그는 이 시에서 인간의 내적 욕망에 대해서 얘기한다. 절반이거나, 반쯤이거나 상현달을 말한다.

  연은 무엇인가. 욕망의 다른 이름이다. 결핍욕망이다. 결핍을 뛰어넘어야 세상위로 뜬다고 했다. 「-꿈보다 더 가벼워야 뜬다.」 고 했다. 결핍욕망을 넘어 생성하고 창조하는 욕망으로 바꾸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3부의 시 「청문회」,「껍데기론」,「패러독스」 등은 정치를 주제로 하여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현대에 와서 정치를 패러디한 시가 성행한 때가 있었다. 그것은 시대적 환경이 그런 풍자시를 낳게 한 원인이기도 했다.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기에 번지르르한 말로써 국민을 속이던 때의 이야기다. 그러나 아직도 진행형이다. 우리 사회에서 믿을 수 없는 대상이 정치요, 정치인임은 변함이 없다. 뽑아 놓고 믿을 수 없어 붉으락푸르락 하는 모순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런 정치를 비꼬는 시는 풍자적이며 패러디적일 수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시 「말씀」은 표면상으로는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파 난다」 라고 하고 있으나 실상 그 말의 의미를 뒤집으려 하는 역설에서 이 시는 출발한다. 이 뒤집기는 우리가 진리라고 생각했던 것들, 당연하고 불변할 것 같은 의미를 희화화(戱畵化)하여 전혀 상반되는 의미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콩을 심었는데 팥이 나지 않고
팥을 심었는데 콩이 나지 않는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씀

심는다고 모두 싹이 트지 않는다
싹 튼다고 모두 꽃이 피지는 않고
꽃 핀다고 모두 열매를 맺지는 않는다

뿌린 대로 거둘 수는 없다는
참으로 편리하신 말씀     「시-말씀, 전문」

  이 시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라는 말은 전후 문맥을 통하여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말은 바르고 뜻은 반대인 것을 말하고 있다. 모순적이며 역설적이다. 『C. Brooks』는 시의 언어는 역설의 언어라고 했다. 역설은 이렇게 모순을 통해서 진리의 발견에 기여하게 하는 시적 장치이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씀」은 「뿌린 대로 거둘 수도 없다는 말씀」의 역설적인 모순구조다. 이 역설은 모순된 세계를 드러내는 가장 효과적인 인식 방법이다.
  양 시인은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부조리와 불합리를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에 따라 시작 방법도 아이러니이거나 패러디, 「말씀」과 같이 모순적인 역설로 되어 있다. 그는 현대시가 이미 서정적으로 다 말할 수 없는 시적 상황에 처해있음을 절감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껍데기는 가라고
알맹이만 남으란 말씀이신지
애초 껍데기 없는 알맹이가 어디 있으랴

가을걷이를 하다보면
알맹이보다 껍데기가 많기도 하거늘
모진 계절일수록 껍데기는 두꺼워지는 법

소라게의 꿈은
단단한 고둥껍데기를 갖는 것
더는 껍질을 껍데기라 홀대치 말게     「시-껍데기론, 전문」

  이 시 「껍데기론」도 역설적이다. 「알맹이와 껍데기」 『껍데기는 가라』는 시행에 빗대어 「껍데기 없는 알맹이는 없다」라고 말한다. 가을걷이를 하면서 느끼는 표의성, 껍데기와 허물 속에서 태어나는 생명들에 대한 의미를 역설적으로 들려준다. 오랫동안 우리는 껍데기의 허위성을 믿어 왔다. 이제는 이 말이 진리가 아님을 깨달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한다.
 「껍데기론」을  읽으면서 보이는 것만 보고 들리는 것만 들으려고 하는 세태를 생각한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지만 엄연히 실제 하는 것, 그것이 존재가 아니겠는가. 문학은, 시는 우리가 보는 것 아는 것 밖에 존재하는 지평선의 저 쪽으로 새 길을 열고 가는 것, 그러한 믿음으로 그는 우리의 시선을 부지런히 지평선 밖으로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더는 나올 게 없을 줄 알면서도
짜면 아쉬울 만큼은 내주는 
찌든 살림에 남매들 들러붙어
짜고 또 쥐어 짜 껍데기만 남은
야윈 젖가슴처럼

버릴 요량으로
납작해진 치약 껍데기를 찢다 베인
손가락의 핏방울

무엇이든 아껴야 한다던
잠언 같은 목소리가 아린 손끝에서
선홍색으로 배어나는 아침   「시-다 쓴 치약, 전문」

  시 「다 쓴 치약」, 가난했던 시절의 유년을 되돌아보게 하는 이 시는 그 이미지가 너무나 선명하다. 아끼고 절약하다 못해 마지막으로 쥐어짜는 심상으로서의 「다 쓴 치약」 납작 할대로 납작해진 치약의 빈 튜브, 가난한 살림살이를 나타내는 이만한 상징이 또 있겠는가. 찢겨진 튜브에 손가락을 베던 놀라움과 선홍색 핏방울, 나는 평소 소박하고 검약한 시인의 모습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이 시를 통해 그 발단을 본다.  『아우야 참 아프지?』  나는 손가락 베인 그의 왼손을 잡는다.  가난했던 우리들의 유년-참 많은 세월이 흘러갔다. 동병상련일까 아련히 가슴을 적신다.

꽃병 속의 물은 평온이다
네가 꽁꽁 얼면 병은 깨진다
내 가슴처럼
내가 부글부글 끓어도 병은 깨진다
네 마음처럼

사라지는 너의 꽃
사라지는 나의 꽃병     「시-꽃병, 전문」

찰나의 눈금이 길게 새겨진
권력의 저울대에 매달려
곡학하거나 아첨하지 말지니
욕망의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너의 비중과 힘은 더 커질 터
흔들리는 저울대에
누구를 매달지도 말고
매달리지도 아니할 일

저울에 대한 경외심은 
치우침 없는 평형일지니      「시-저울추, 전문」

  시 「꽃병」과 「저울추」, 지금까지 부조리한 현실에 회초리를 들었던 아이러니와 패러디는 이 시에서 모두 스며들고 흔적으로만 남아 있다. 이 두 편의 시는 짧지만 시인의 시정신이 함축된 시다. 「꽁꽁 얼거나 부글부글 끓어도 병은 깨진다.」 는 인식과 「곡학하거나 아첨하지 말지니-치우침 없는 평형일지니」 같이 어디에도 기울지 않는 평형심, 어떤 일에도 욕심내지 않는 투명한 평상심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법학도로서 이 저울추와 같은 균형의식을 평생의 가치로 살아왔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양 시인이 「꽃병」,「이름」,「바람의 말」,「뚫림」 등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 같이 시적회상을 통하여 부조리하고 분열된 현대사회를 극복하면서 자기회복을 꾀하고 있는 것에 주목한다. 

  회상과 기억은 나를 돌아보는 정신작용이다. 시인은 기억과 회상을 통하여 자아동일성의 시적 공간을 창조한다. 특히,「다 쓴 치약」,「할미꽃」,「기억의 저 편」,「쇠똥구리」 같은 시적 체험은 모두 유년의 회상이다. 유년의 기억은 분열되지 않은 자아, 때 묻지 않은 순진무구한 동심의 세계 그 자체다. 그런 순진무구의 세계는 그가 돌아가고자 하는 자아회복의 모티브다. 부조리한 현실과 대결하고 대립하는 긴장된 마음을 다 벗어던지고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영원히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그 희구와 열망의 자리에 서정적 자아로서 그의 시가 있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