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유람기
                                                       심 인 자

유난히 가을을 탄다. 차차 나아지겠거니 하면서도 지천명에 이른 지금까지 그 마음이 사라지지 않으니 예사가 아니다. 청명한 가을 하늘에 높게 뜬 구름 한 점에도 울컥 서러운 마음이 들고, 길가에 핀 코스모스의 흔들림에도 어린아이처럼 유년시절로 돌아가 있다. 오래 전에 헤어진 옆집 숙이 꿈을 꾼 날은 슬며시 고향의 선착장을 찾아가 그리움에 빠져들기도 한다.
  가을이 짙어 가면 내 마음은 계절병으로 한동안 몸살을 앓는다. 마음이 허하다.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인다. 밤차에 몸을 싣고 여명이 찾아들면 시골의 작은 역에 내려 기찻길 옆으로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를 보고 싶다. 붉은 옷으로 단장한 숲길을 걸으며 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만끽하고 싶다. 그래서 가슴에 뚫린 허허로움을 단단히 채우고 싶다.
  가을 병에 걸린 나의 여린 감성을 달래줄 돌파구가 필요하다. 주섬주섬 가방을 꾸려놓고도 선뜻 일어서지를 못한다. 여기가 걸리고 저기가 못미더워서 결국 행장을 내려놓고 만다. 그래서 병은 커가고 아쉬움만 잔뜩 남는다.
  그즈음 기회가 왔다. 집만 맴돌던 나에게 여행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마음뿐이었던 행장을 꾸려 집을 나설 때의 가벼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여행은 애타는 목마름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주었다. 계룡수필 모임이 시작되면서 동인지를 만든 기념으로 문학기행을 떠나게 되었다.
  여행은 만남이다. 대전회원과 거제회원의 공식적인 만남은 곧 여행으로 이어진다. 얼굴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각도 다른 여럿이 모였어도 각기 개성을 가진 우리들이 공유하고 일치하는 게 있었다. 수필을 좋아하는 모임이라는 것이다. 그 공통점이 지금까지 우리들을 엮어왔다. 글을 잘 쓰든 못 쓰든 문제될 것은 없었다. 수필을 사랑하고 그 속에 진솔한 마음들을 쏟아 부으면 되었기 때문이다.
  거제 회원들과 대전 회원들이 각기 계룡산의 정기를 이어받아 나날이 번창하고 있다. 하얀 백지를 빼곡히 채워나가고, 그렇게 다져진 문우들은 줄을 이어 신인상을 받으며 수필가로 인정받고 있다.
  올해로 계룡 수필문학회가 열 살이 되었다. 그동안 개인 수필집을 출간한 회원이 여럿이다. 또 몇 몇 분들이 문학상을 수상했고, 신인 문우들도 등단하여 수필가로서 빛을 내고 있다. 오랜 시간 계룡 수필문학회가 변함없이 지속되어온 것은 우리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한결 같게 글을 써 온 덕분이 아닌가 싶다.
  매년 설렘 속에 이유 있는 행장을 꾸린다.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기대감으로 또 잠을 설치며 뜬 눈일지 모른다.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이번 문학기행에선 어떤 것을 받아들이고 무엇으로 가슴을 채울까.
  몇 해 전엔 아름다운 삼천궁녀가 몸을 던진 낙화암을 다녀왔다. 암자, 고란사에서 약수 한 잔으로 흐려진 마음을 씻고 나니 얼마나 개운하던지. 아름드리 은행나무 아래 무수히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감회에 젖기도 했다.
  지난 여행길에선 우람한 은행나무 아래서 기념 촬영을 하다 발등에 떨어진 노란 은행잎 한 장을 징표로 가져왔다. 자주 보는 책갈피에 끼워놓고 눈인사를 한다.
  이번 여행길에도 무언가 하나 데려올 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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