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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수필: 박찬정] 해당화박찬정:2015년《계간수필》/2016년《수필과 비평》등단/계간수필천료작가모임계수회원/계룡수필문학회 /눌산윤일광문예창작교실수료

머뭇거리기만 하고 말을 못 했다. 꺾꽂이할 가장 귀 하나 얻고 싶어서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열린 대문으로 안마당을 기웃거렸다. 올봄에도 때를 놓쳤다. 그 집의 안마당에는 봄부터 연이어 꽃이 핀다. 이른 봄 수선화가 피었다 지고 나면 튜립이 피고, 연산홍이 질 무렵 철쭉이 흐드러진다. 늦봄 넝쿨 장미가 피었다 지고 난 뒤 낮은 담장 한쪽에 해당화가 피는 걸 몇 해 전부터 눈여겨보았다. 올해도 훔쳐보는 것으로 끝낼 성 싶다.

해당화 한 그루 심고 싶다는 말에 남편은 가시가 많아서 마당에 심기에 적당치 않다고 일축했다. 그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해당화 한 그루 심고 싶은 아주 오래된 기억을 남편이 알 리 만무하다. 이태 전 칠월 일본 북단 왓카나이와 그 주위 섬 례분도와 이시리도를 여행했다. 북위 45도와 46도 사이에 걸려 있는 왓카나이 구릉지에는 해당화가 무리 지어 피어있다. 오호츠크해에서 불어오는 차갑고 거센 바람탓에 키가 크지 못하고 서로 엉켜 자란다. 바람이 사정없이 흔들어 대도해당화 홑꽃잎은 파르르 떨기만 할 뿐 꽃잎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오랜
세월 그 환경에 놓이면 감당하면서 살게 되는 모양이다. 그곳 토산품 코너에서 해당화 씨앗 한 봉지를 샀다. 마당 한쪽에 심었으나 싹 틔우지 못했다. 잘 키워 꽃 피면 왓카나이에서 거제도에 건너온 아름다운 이야기하나 그려보려던 꿈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나는 해당화 한 그루 심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하고 많은 꽃 중에 유별나게 해당화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꽃과 나무 가꾸는 일에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해당화 한 그루 심을 땅이 이 나이 되어서야 마련되었을 뿐이다. 열여섯 살 먹던 해 기억이 두고두고 회한으로 남아 언젠
가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의 한가지였다. 그때 아버지의 연세보다 지금 내 나이가 훨씬 많다. 이제야 아버지의 마음과 형편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입학하고 한 달 후 식목일이다. 학교에서는 해마다 식목일에 나무 심기 행사를 한다. 운동장과 이웃 학교 경계 언덕에 심는다. 학교에서 준비하는 묘목 외에도 개인적으로 묘목을 가져와 기념식수 하기도 한다. 학교에 기념식수 하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식목일 아침, 우리 집에 있는 해당화 나무 밑동에서 포기 나눔을 해서 가지는 짤막하게 잘라내고 신문에 둘둘 말아 주셨다. 우리 집 마당에는 돌배나무, 흰 철쭉, 장미나무도 여러 그루 있었는데 하필 가시 막대기 같은 해당화 나무를 주시는지 불만스러웠다. 차마 아버지에게 투정을 부리지 못 하고 가지고 갔다.

그 당시는 고교 입시가 있던 때였다. 내가 입학한 학교는 전국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모이는 학교다. 신입생의 기념식수는 일류 고교에 입학한 선민의식의 표현이며 자긍심을 심어주는데 큰 의미를 두었다. 신입생 모두가 묘목을 가져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묘목은 대부분 화원에서 사 온 관상수다. 뿌리 쪽을 동그스름하게 새끼줄로 감았거나 마포로 싸여있다. 신문으로 둘둘 말아 노끈으로 질끈 묶은 해당화와는 겉보기부터 차이가 났다. 안 가지고 온 애들도 많은데 괜히 가져왔다고 후회했다.

언덕 끄트머리에 춘향이 그네라고 불리는 큰 그네가 있다. 그 뒤편 후미진 곳에 구덩이를 파고 심었다. 각자 심은 나무에 ㅇㅇㅇㅇ년 ㅇㅇㅇ 기념식수라고 팻말을 박아 놓는데 나는 그것마저 하지 않았다. 내가 심은나무가 볼품없고 부끄러워서 나무 심기가 빨리 끝나기만 바랬다. 그리고 해당화를 심은 일조차 잊었다. 다음 해 유월, 우연히 그 근처에 갔다가 후미진 곳에 화사한 분홍빛 꽃이 핀 것을 발견했다. 다가가 보니 지난해 내가 심은 해당화였다. 그 척박한 곳에서 살아 있는 것만도 대견한데 두어 송이 꽃을 피우다니. 나는 가시는 아랑곳하지 않고 해당화 나무를 덥석 끌어안았다. 볼품없는 묘목을 주셨다고 아버지를 원망한 일, 심고 돌보기는커녕 잊고 있었던 일들이 눈물 나도록 미안했다. 생물 선생님을 모시고 가서 보여드리고 꽃이 진 후 옮겨 심은 곳이 교사 뒤편 화단 끝이다. 몇 년 후 학교에 가보았더니 해당화 둥치가 굵어지고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있었다. 꽃이 피면 얼마나 화사할까 궁금하지만 나는 지금 너무 멀리 와 있다. 상상으로 떠올려 본다.

다섯이나 되는 자식들을 차별 없이 섬세하게 이해하는 아버지가 열여섯 살 먹은 딸에게 짤막한 가시 막대기처럼 묘목을 해 주신 까닭은 무엇일까? 장미나 철쭉에서 포기 나눔을 해주실 수도 있는데 굳이 해당화 나무를 주신 까닭도 궁금하다.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데 이미 먼 길 가신지 오래다. 내 나름대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해당화는 말이다. 까다롭지 않단다. 척박한 땅이나 바람에도 잘 견디지. 예전에는 해안가 마을의 방풍림으로 심었단다. 꽃은 한번 자지러지게 폈다가 지고 마는 것이 아니라 피고 지길 여러 번 하는구나. 잔가시가 있어서 아무나 함부로 대하지 않고 빨갛게 익은 열매는 약성도 있으니 좀 좋으냐? 그리고 말이다. 곁가지가 많으면 새로운 땅에 뿌리 내리기에 힘 겹단다. 낯선 땅 적응하려면 제 몸집을 줄여야 하거든. 네가 세상 살아봐도 그렇지 않더냐?’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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