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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인자 수필27]'술을 품다'심인자:수필가/수필과비평 작가회 전 거제지부장/수필과비평작가상수상

                            술을 품다
                                                      심 인 자

나는 애주가다. 남들이 뭐라 할지라도 자칭 술을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항간에는 술을 악마라고 하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술에 대한 나쁜 기억이 나에겐 없다. 소주잔으로 한 잔이 나의 주량이다. 어떤 경우에도 그 이상을 넘기지 않는다. 주량이 한 잔이라서 애주가 자격이 안 된다면 반박할 여지가 없지만 어쨌든 난 술을 즐긴다.
  하여 술을 담는다. 작은 방엔 큰 병, 작은 병, 둥근 병, 길쭉한 병에 재료들을 달리한 담금 주가 여럿 놓여있다. 야생과일주도 있고, 초근목피로 담근 약주도 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담근 것도 아니고 비싼 재료를 쓴 것도 아니다. 산에서 혹은 들에서 채취한 식용 가능한 나무뿌리, 풀뿌리가 주를 이룬다.
  이 술들을 좋아한다.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씩 작은 술잔에 따라 쭉 들이킨다. 술꾼처럼 “카” 소리를 내보기도 한다. 하지만 딱 한 잔뿐이다. 더 마신다면 난리가 아니다. 얼굴이 뜨거워지면서 그 열기가 온 몸에 서서히 퍼지기 시작한다. 거기에서 그친다면 뭔 걱정이겠는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벌레가 기어가는 것처럼 가려워 견딜 수가 없다. 정신없이 벅벅 긁어대다 보면 결국 피를 보고 만다. 한 시간 가량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싹 가라 않지만 후유증으로 몇 번 낭패를 보고선 한 잔으로 아예 못을 박았다.
  많은 양을 마셔서 술꾼이 아니라 간간히 즐겨서 술꾼이다. 한 잔의 술은 목을 타고 넘어가 조화를 부린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술을 마시면 가장 먼저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위축되고 긴장됐던 몸이 서서히 이완되는 것 같고 그에 따라 민감한 마음도 풀어진다.
  한 잔의 술은 나를 추억하게 한다. 오래 전에 가신 친정아버지를 떠올리게 하고, 시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며 지인을 생각나게 한다. 잊고 있었던 유년의 내 모습이 보이고 아버지와의 추억도 고스란히 뇌리를 스친다.
  아버진 술을 즐기셨다. 두어 잔에 취하신 걸 보면 주량이 센 편은 아니었다. 광을 자주 들락거리면 어머니께 들킬세라 대접으로 포도주를 떠다 드렸다. 조금씩 나눠 마셨다면 별 무리가 없었을 텐데. 거나하게 취한 아버지의 고함소리는 담장을 넘었다. 어머니께 되게 혼쭐났지만 마음에 두지 않았다. 어머니의 꾸중보다도 아버지의 간곡함을 뿌리치기가 힘들어서였다. 아버지가 취하는 날은 어린 나에게 명절이었다. 온 식구들 불러 모아 잔치를 벌였다. 과자며, 과일이며 맛난 것을 내오게 하여 다섯 자식에게 골고루 먹이셨으니. 그래서 일부러 술을 드린 건 아니다. 다른 형제들이 아버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아 결국 나에게까지 이른 것이다. 좀 더 오래 사셨더라면 아버지의 따뜻했던 마음을 알아차렸을 건데. 술에 아버지의 사랑이 녹아있었다. 지금도 아버지의 술이 나는 싫지 않다.
  나의 추억은 어느 사이 새댁 시절의 한 귀퉁이에서 맴돌고 있다. 아버님도 역시 술을 좋아하셨다. 시댁에 머무는 것은 고작해야 사나흘이었다. 이튿날부터 아버님은 술에 취하셨다. 아들내외가 받아온 한됫병 술을 조금씩 마시다보니 어느 사이 한 방울도 남지 않았다. 툇간 구석에 숨겨져 있는 빈병을 들고 나온 어머님은 나에게 지청구를 하셨다. 그래도 시댁에 가는 날 내 손에는 소주 한 되가 들려져 있었다.
  평소 아버님은 내게 딱 두 마디만 하셨다. “오는가? 조심히 가거라.” 하지만 술을 드신 날은 달랐다. 자리끼를 떠 아버님 방에 가면 인기척에 깨어 나를 불러 앉히셨다. 얼마나 많은 말씀을 하는지. 아이들 안부부터 시작하여 길게는 친척들 근황에 텔레비전의 주요 뉴스거리까지 끝이 없었다. 그런데도 싫지가 않았다. 솔직한 아버님의 마음을 보았던 것이다. 거짓으로 하시는 게 아니라 평소 마음에 두셨던 자식 걱정, 손주 사랑, 친척들의 근황을 술의 힘으로 알려주신 것이다. 술은 아버님과 나를 이어주는 소통의 통로가 되었다. 어머님의 극구 만류에도 아버님의 술 한 병을 챙기는 일은 끊어지지 않았다.
  술 하면 또 한 분이 떠오른다. 라대곤 선생님. 가신 지 한 해가 흘렀다.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호방하고 기백이 넘친 목소리로 나를 부르실 것만 같다. 십오 년 전, 신인상을 받았다. 햇병아리 수필가로 등단하면서 선생님으로부터 패를 받고 악수도 나눴다. 백발의 머리와 굵직한 얼굴선이 인상에 남았지만 근접하기 힘든 분일 거라는 생각만 했다. 우연히 당신이 내신 ‘취해서 50년’이란 수필집을 접하면서 악수를 나눈 분이 선생님임을 알았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술 얘기가 평범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첫 장을 펼치게 했고, 과연 그랬다. 동질감을 느꼈다. 간간히 여자인 나로서는 생각지 못한 남자의 세계가 있어 당황하기도 했지만 일부러 숨기려는 의도가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아름답게 수식하려거나 과장스런 문구도 보이지 않았다. 때론 해학적이고 때론 인간적인 면이 이웃집 아저씨처럼 털털했다. 한 마디로 술에 대하여 당당했다. 비싼 술을 좋아하고 격이 있는 곳에서 술을 대하는 게 아니어서 좋았다. 대폿집에서 막걸리 한 잔과 털털한 안주를 친구 삼아 마시는 부담 없는 술이어서 정이 갔다. 어느 때는 비 온 뒤 흐르는 하천의 물소리에 반해 세느 강변이라 여기며 한껏 기분을 돋우는 멋스러움이 숨어있었다. 헤어졌던 여인을 술의 힘으로 다시 재회하여 결혼한 것도 멋있고, 책머리에 늘 부인에게 감사하다는 사랑의 표현에 감동받았다. 선생님의 펜이 되었다. 소설이며 수필집을 단 번에 읽어나갔고, 선생님의 사인을 어김없이 받아두었다.
  언젠가 선생님을 뵙고 아직 시판되지 않은 술 두 병을 드린 적이 있다. 비싼 것은 아니지만 대접하고 싶었다. 며칠 뒤 대나무로 만든 술병이 부쳐져왔다. 역시 선생님이셨다.
  이제 더 이상 선생님을 뵐 수가 없다. 내가 담근 술 한 병을 드릴 수 없다는 것에 안타까움이 인다. 짓궂은 병마는 선생님과 앞으로 나올 모든 작품을 차단해버렸다. 선생님을 뵈려면 이제는 읽었던 책을 다시 추억하는 수밖에 없다.
  추억하는 이 시간이 즐겁다. 그래서 나의 술사랑은 지금껏 이어져오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한 잔이 주량이지만 술을 싫어한 적 없고 늘 담담히 즐기니 난 분명 애주가임에 틀림없다.
  오늘, 한 잔의 술을 품는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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